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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의 연습 (딤전 0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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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나비가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꿀을 빨기까지에는 반드시 거쳐야 할 네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애벌레가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나무나 잎에 알을 낳은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애벌레가 알에서 깨어나 식물의 잎사귀를 먹으며 자라나는 단계인데, 어느 정도 자라나면 잎사귀를 녹여 소화시키는 내분비 액체가 더 이상 분비되지 않게 됩니다.
셋째 단계는 애벌레가 가는 잎사귀나 나무에 달라붙어 비단실이 될 액체를 만들고 그 액체로 실을 뽑아 자기 몸을 감싸고 번데기가 되는 단계입니다.
넷째 단계는 얼마 후 껍질을 부드럽게 하는 액체를 바르고 성숙한 나비로 자라나 단단한 번데기 껍질을 깨고 나비가 되어 나오자마자 30분만에 호흡을 시작하고 피가 온 몸에 순환되기 시작하면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한 마리의 나비가 되기까지 계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새롭게 변화해 가야 합니다. 여기에도 피나는 노력으로 부정과 변화를 계속하는 변증법적 성장 논리가 들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나비의 인생이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가 마음에 심겨지는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은 철저한 자기 부정과 그리스도를 향한 자기 변화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성화과정에 필수 조건인 경건 생활 즉 경건이라고 합니다.

경건한 생활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극히 마땅한 생활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이 경건 생활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고급 옷 로비사건 청문회 이후 새로운 유행어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화려한 거짓말'이라는 유행어입니다. 그동안 교회 안에 누적된 세속적인 생활과 부정과 모순들이 수면에 떠오른 증거라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 안에 반드시 흘러야 할 경건 생활의 부재를 확인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젊은 교회 지도자 디모데에게 몇 가지 중요한 말씀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선한 일군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경건한 생활을 연습하라고 합니다. 본문 7절에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I. 경건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경건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세보마이'입니다. 이 말은 두 단어의 복합어인데 '유'라는 말과 '보세이'라는 말이 합쳐진 것입니다. '유'라는 말은 '잘(well), 잘한(well done)'이란 뜻이고, '세보마이' 즉 '세비아'는 '존경이나 경배,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piety toward God, truth that leads to godliness)' 등을 의미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하나님을 향한 바른 생활 혹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바른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경건이라는 말이 믿음이라는 말과 같이 사용되어 뜻도 같습니다. 바른 믿음 생활이 바로 경건 생활입니다. 굳이 구분하다면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요 경건은 그 믿음에서 나오는 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경건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나타난 '연습'이라는 동사는 원래 '벗는다'는 말에서 나왔는데 이는 운동하기 위해서 옷을 벗는다는 뜻입니다. 영어에서 체육관을 Gymnasium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옛 희랍시대에는 올림픽이나 이스무스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했고, 때로는 가혹한 훈련으로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기 연단이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입니다. 결코 안일하게 세상의 정욕과 신화를 따라 살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경건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를 말하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기독교의 덕목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을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건 생활과 경건주의는 서로 다른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경건주의는 성경이 경건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16세기 이후 특히 루터파를 중심으로 처음에는 대단히 좋은 반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광신주의와 금욕주의로 흐르면서 신앙생활의 빛보다 열을 더 강조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실제 생활은 없으면서 열심만 있는, 위선적 경건 생활을 하는 외식하는 자들이 되어 버린 경향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경건주의라고 합니다. 경건주의는 외식입니다. 형식은 있으나 내용이 없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없는 껍데기 교인입니다.

II. 경건의 연습은 무엇에 유익합니까?
본문 8절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연습에 대해선 운동경기를 통해 얻은 신체 단련이라는 견해와 그리스도인의 금욕생활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의 뜻도 육체의 연습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경건의 연습이 더욱 필요함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의 연습은 금생과 내생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장33절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마가복음 10장29절에서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즉 세상이 귀중히 여기는 것을 뒤로 하고 복음적인 경건 생활에 힘쓰면)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던 어떤 히브리 산파들에게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출 1:20-21).''라고 하셨습니다.

칼빈은 그의 책 기독교강요 제2권 2장 20절에서 ''설교를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다. 우리 속에 계시는 스승 곧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길을 열어주셔야 비로소 설교 말씀이 들린다...성령께서 그 분의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 귀를 열어주셔야 들리고, 우리의 마음을 조명해 주셔야 이해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길이 바로 경건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신앙인의 생활 덕목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건이라고 하였습니다. 경건 생활은 신앙생활의 척도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경건한 생활입니다. 성령 충만과 경건 생활은 정비례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면서 방언도 하고, 신유의 은사도 받고 수많은 봉사와 희생을 했다고 할지라도 경건 생활이 없으면 이는 성령 충만한 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경건 생활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경건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아 주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주십니다.

III. 경건의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만 경건에 대한 교훈을 열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디모데전서 2장1절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입니다. 물론 본문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어떤 특정인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생활에 힘쓰되 정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침, 저녁 그리고 식사 시간외에도 꼭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 생활, 이것은 경건 생활의
첫째입니다.

둘째로 디모데전서 6장3절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 생활이요, 말씀 생활은 말씀을 생활로, 인격으로, 그리고 말로서 증거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성경 읽는 것과 전도하는 생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디모데전서 6장6절로 ''지족하는 마음''입니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족은 스스로 만족함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13장5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디모데전서 3장15절로 ''하나님의 집에 충성을 다하는 생활''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여 주님의 주되심을 바르게 인식하는 생활, 그리고 주일을 바르게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임무를 다하는 것이 경건 생활입니다. 물론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싸우거나 다투지 말고, 성질을 내거나 도박하거나 푸닥거리하거나 향락과 미신에 젖지 말아야 경건 생활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연습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훈련이나 연습은 반복하고 쉬지않고 행하므로 그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되고 또한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체육이나 기술연마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거듭하므로 그것이 몸에 배어야 하는 것처럼 경건 생활도 그러합니다. 습관이 계속되면 인격이 되고, 인격이 곧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경건 문화가 교회에 정립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 경건한 문화 즉 정직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약한 자를 돌보아 주는 그러한 기독교적인 경건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건 생활에 힘쓰고 경건의 연습을 거듭하므로 금생과 내생에 축복 받은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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