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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데마와 누가 (딤후 0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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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홍콩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홍콩에 살면서 몇 가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입맛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끼는 반드시 한국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중국음식이 더 좋아졌습니다. 어디 가서 며칠만 지나면 중국음식 생각이 납니다.
두 번째는, 더운 것을 못 참게 되었습니다. 가끔 여름에 한국에 가면 친구들이 '홍콩은 무척 더운 나라니까 여기 더위는 더위도 아니겠구나.'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데 할 말이 없습니다. 홍콩이야 가는 데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쌩쌩 불어오니 언제 더위를 느낄 겨를이 있습니까? 음식점 같은데 갈 때는 추워서 겉옷을 가져가야 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안 믿을 것 같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세 번째는, 거리감각이 달라졌습니다. 홍콩에서는 직장하고 집이 한 시간만 떨어져 있어도 '아니 어떻게 그렇게 먼데 사느냐?' 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서울에서 산다고 하면 한 시간 걸려서 출근하면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인데 홍콩에서는 촌에 사는 시골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이렇게 좁은 홍콩에 살다가 가끔 미국에 가서 자동차를 타고 다녀보면 참 넓은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은 밤새도록 사막을 운전한 일이 있었는데 사막 한 가운데서 해가 뜨는 광경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 사막 한 가운데서 자동차가 고장난다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 데 표지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Death Valley (죽음의 계곡)' 아마 서부개척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 사막에서 죽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생각됩니다.

옛날에는 먼길을 떠난다는 것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사도바울이 네 번의 전도여행을 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바울과 바나바와 마가, 이렇게 세 사람이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구브로섬을 거쳐서 비시디아라는 곳까지 갔다 오는 여행이었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터키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훨씬 더 멀리 갔습니다. 이때는 실라와 함께 안디옥을 출발하여 중간에 디모데와 합류해서 마케도니아까지 갔다오는 긴 여행이었습니다. 요즘 지명으로 하면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터키를 거쳐 그리스까지 갔다오는 여행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사도바울 혼자서 안디옥을 떠나 2차 여행 때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 돌아왔습니다.
네 번째는, 자의에 의한 여행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여행이었습니다. 세 번째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도착했을 때 바울은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됩니다. 그래서 당시 세계의 중심지이던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며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행들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다른 교통수단이 없고 오직 걸어서 여행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는 데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후에 이렇게 회상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여름 휴가를 다녀오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불평이 많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지겨워서 혼났다, 잠자리가 불편하고 먹을 것이 입맛에 안 맞아서 힘들었다, 집에 돌아오니까 그래도 내 집이 제일이더라.' 이런 불평들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소리 아예 하지도 마십시오. 사도바울이 네 번의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는가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함께 다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전도여행에 동참했던 마가는 중간에 사라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생 길이 훤한 일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을 떠난 두 번째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데마입니다. 데마는 본래 사도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였습니다. 빌레몬서를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빌레몬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데마는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로 일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4장에서도 바울은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하였습니다. 골로새서도 역시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데마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음에도 변함없이 바울 옆에서 충실하게 일했던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충실한 동역자였던 데마,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어도 조금도 실망치 않고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던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데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오늘 본문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하였습니다. 데마의 마음속에 주님보다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세상'이라는 단어는 무슨 뜻입니까? 요한일서 2장 16절은 세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여기서 정욕이라는 단어는 욕심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욕심이 있어야 공부도 합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무엇이 되겠다는 욕심이 있어야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또 욕심이 있어야 결혼도 합니다. 총각이 나이가 차서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 예쁜 여자를 보아도 소 닭 보듯이 눈만 끔뻑거리고 앉아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저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있어야 장가도 가는 것입니다. 또 욕심이 있어야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래도 무엇인가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있어야 열심히 일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이런 욕심이 지나치면 정욕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위치와 분수를 알고 그 범위 안에서 욕심을 부려야지 그것을 넘으면 정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마는 세상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다가 고생만 하는 것이 내 인생이냐, 나도 한번 세상에서 멋있게 살아보자.' 그래서 바울 곁을 떠났습니다.
또 한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점점 늙고 쇠약해져 갔습니다. 바울 자신도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바울이 죽는다면 그 다음에 바울의 뒤를 이을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데마와 누가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바울이 겪은 고난의 길을 자신이 앞장서서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 로마의 분위기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의 물결이 점차 거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마는 바울을 떠났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한 것도 억울한데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그 길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는 소문난 믿음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의 전도로 인해 도시 전체가 예수를 믿고 대대적인 전도운동이 일어났던 도시입니다. 주후 1세기에 로마에 의해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 로마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떼를 지어 피난 간 곳도 바로 데살로니가입니다.
그러면, 데마가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데마가 믿음의 길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예 믿음을 버리기로 작정했다면 다른 도시로 갔을 텐데 믿음의 도시인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것은 믿음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믿기는 믿되 지금까지의 희생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이 아니라 안일하고 소극적인 믿음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가끔 구역장을 맡은 분들이나 교회의 직책을 맡은 분들이 저를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번에는 좀 쉬려고 합니다. 그러니 구역장을 좀 빼주세요.' 그럽니다. 이때 제가 하는 대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에게 쉬는 것이 필요합니다. 집사 하다가 일년쯤 쉬는 것도 괜찮은 일입니다. 물론 한 해 쉬고 그 다음 해에 다시 집사로 임명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일년쯤 쉬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해에 더 열심히 하기 위해 쉬는 것은 좋습니다. '내가 10년 동안 집사로 일했는데 제대로 한 일이 없다. 그러니 일년동안 쉬면서 더 많이 기도하고 생각하고 계획했다가 다음 해부터는 정말 열심히 해보아야지' 이러면서 일년 쉰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만큼 했으면 됐다. 이제는 내 볼일도 좀 보아야지.' 그래서 쉬는 것은 안됩니다. 그런데 저를 찾아와서 '좀 쉴래요.' 그러는 분은 100% 후자에 해당됩니다. 일년 쉬면 아예 쉴 분들입니다. 그러니 제 대답이 뻔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1620년에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훌라워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오늘의 미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같은 시기에 매스터라는 배를 타고 남미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을 가진 청교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메이훌라워를 탔던 사람들과 매스터를 탔던 사람들의 차이점이 하나있습니다.
메이훌라워를 탔던 청교도들은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 배를 탔습니다.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했습니다. 왕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반대하는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없고, 찬송가도 지정된 것만을 불러야 하고, 모이는 장소와 횟수까지도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메이훌라워라는 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매스터라는 배를 탄 사람들은 물론 같은 청교도들이기는 하지만 목적이 달랐습니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넓은 땅이 있고, 엄청난 자원이 있는 나라, 그 땅에 가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매스터라는 배를 타고 남미로 향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이훌라워를 탔던 사람들은 미국을 세웠습니다. 미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매스터를 탔던 사람들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재물을 모으지도 못했고 신앙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조금은 고생이 되고 바쁘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길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믿음생활입니다. 그리고 나의 유익을 위한 길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사업에 조금 더 정성을 쏟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간을 더 사용하는 길이 있습니다. 소극적인 믿음의 생활입니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여러분의 것입니다.

데마를 보십시오. 데살로니가로 간 데마는 처음에는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입니다. 매일같이 전도하러 다니면서 욕을 먹지 않아도 되고, 갑자기 밤중에 사람들이 쳐들어오는 일도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일날이 되면 교회 뒷자리에 가서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빠져 나와도 아무도 귀찮게 따라붙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데마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이후에 성경 어디에도 데마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문서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의 거리를 걷고 있던 바울, 그 오른편에는 누가가 있었고 왼편에는 데마가 함께 걷고 있었다.' 이렇게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데마, 하지만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간 다음에는 그 이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또 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누가는 끝까지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누가는 직업이 의사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의사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명예와 부귀가 따라오는 직업입니다. 누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데마보다는 훨씬 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세상의 성공을 원치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이름을 얻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바울 곁에 남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누가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인 안디옥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여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그 행적들, 그리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내용들을 자세히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는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데마와 누가, 이 두 사람은 사도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로마의 거리를 걷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서 평범한 믿음생활을 하려고 했던 데마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바울 곁에 남아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던 누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어떤 길을 가시렵니까? 데마의 길을 가시렵니까? 누가의 길을 가시렵니까?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누가의 길을 따라 충성되이 헌신하다가 주님 앞에 서서 면류관 받아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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