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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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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신명기 33장 12절)


<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

 요즘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발행에 필자가 전체 강해를 집필하는 주필로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도 한 달에 상당한 재정적인 마이너스가 발생한다. 약 200페이지의 책을 한 권에 천 원 받으니까 판매수입은 재정운용에 큰 보탬이 안 된다. 게다가 박스비와 택배비까지 부담하고 <사랑나눔>으로 많은 책을 교정기관과 군대로 보내니까 후원자의 후원금을 포함해도 매달 상당한 마이너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발행권수가 늘어나고 영어로도 번역되어 발행되면 마이너스는 더 커질 것이다. 경제적인 상식으로는 어리석은 일을 한다고 하겠지만 ‘선교’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계산을 초월해서 하는 것이다. 은혜의 역사는 산술적으로만 펼쳐지지 않는다. 계산을 초월해 헌신해야 계산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매월 상당한 마이너스니까 늘 걱정 가운데 지내야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역하고 있다. 그렇게 마이너스가 되면서도 행복하게 사역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는 마음으로 사역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재원을 최대한 동원해 쓰다가 어느 때에 재원이 끊기면 “하나님의 뜻과 시간은 여기까지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시간표에 순종해 언제든지 <월새기> 사역을 끝내도 좋다고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일시적인 마이너스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라면 마이너스가 걱정되겠지만 어차피 마이너스를 기쁨으로 감수하는 것이 바로 ‘선교’다. 최근에 분당 인근에 건축된 교회들을 보면 100억 원이 넘게 든 경우도 많다. 그런 재정 쓰임새와 비교해볼 때 100년 동안 월새기 사역을 하면서 100억 원이 든다면 그것은 큰 마이너스로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사실상 경제적인 인물 한 명만 나와도 그 정도 마이너스는 쉽게 해결된다. 문서선교 동참자 혹은 <월새기>를 통해 은혜 받은 독자 중 100년 내에 그런 인물이 한 명이라도 안 나오겠는가?

 셋째, <월새기> 사역을 통해 무수하게 나타나고 있는 영혼 구원 및 변화의 열매 때문이다. <월새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지만 특히 교정기관의 재소자들로부터 은혜 받았다는 편지를 무수히 받고 있다. 현재 한국에 있는 55개의 전체 교정기관으로 월새기가 기증되는데 그곳에서 온 감사편지들을 받고 <월새기> 사역 팀에게 감동의 눈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재소자들 중에는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열심히 살아서 월새기 후원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은혜의 역사가 있기에 사역을 하면서 기쁨과 보람과 행복이 넘치는 것이다.

 넷째, 월새기 사역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극적으로 위기를 기회를 만들어주시고 부족함을 통해 풍성함을 체험하게 하실 때가 많다. 몇 년 전에 미국에 재정위기가 생겼을 때 선교 후원금이 너무 줄어서 필자가 속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본부에서는 본부 인력도 감축하고 전 세계로 파송한 선교사 몇 십 가정을 불러들여야만 했다. 바로 그때 엄청난 금액의 체크가 날라들었다. 한 무명 성도가 천국에 가면서 상당한 재산을 기증한 것이었다. 그때 교단의 재정 위기를 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월새기> 사역이 하나님의 선한 섭리 하에 진행된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 사역이 지속되도록 이끌어주실 것을 믿고 있다. 어떤 사업이나 어떤 사역도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언제나 위기가 있을 수 있고 부족한 때도 생긴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부족함을 통해 풍성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 성도에게 그런 은혜와 축복을 다양하게 준비해 놓으셨다.

< 담대함과 간절함을 겸비하라 >

 모세는 가나안 땅을 앞두고 죽기 전에 각 지파를 위해 축복 유언을 남겼다. 그 중에 베냐민 지파에게 평생토록 보호하시고 업어주신다는 축복을 약속했다. 그 약속이 큰 안정감을 준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안전을 확신하라. 그러나 안전에 대한 확신 때문에 간절함을 잃으면 안 된다. 간절한 사람은 담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반대로 담대한 사람은 간절하지 못할 때가 많다. 성도는 담대함과 간절함을 겸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종교인은 겁을 한참 준다. “여러분! 이제 종말이 가까이 옵니다. 곧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끔찍한 불구덩이의 고난을 겪습니다.” 그런 말에 두려움에 빠져 정신을 잃으면 그 종교인을 간절히 의지하면서 그 종교인이 하라는 대로 하게 된다. 바치라면 바치고 더 간절히 기도한다고 한다. 그런 불안이 섞인 간절함은 영적 노예가 되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나쁜 종교인은 귀신 얘기, 종말 얘기, 지옥 얘기, 심판 얘기를 자꾸만 더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반면에 참된 목회자는 고난이 있다는 현실은 얘기해도 항상 그 다음에는 믿음의 능력을 상기시켜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해준다. “여러분! 앞으로 극심한 고난을 겪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도는 최후 승리가 보장된 존재입니다. 믿음은 어떤 역경도 극복하게 만듭니다. 종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종말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안심이 되고 평안하다.

 문제는 그렇게 믿음의 원리를 잘 가르침 받아 편안하게 되었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는 간절함이 사라지고 말씀과 기도에 대한 열정도 잃는 것이다. 거짓 종교인이 공포를 조장하고 불안감을 부추길 때는 더 간절히 기도하고 반대로 참된 목회자가 믿음과 평안을 전할 때는 평안하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마음과 기도의 열정을 잃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나님 안에서 안전을 확신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추구하는 열정을 잃지 말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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