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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사랑은 여전하다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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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랑은 여전하다 (요한복음 21장 9절)


<실패 앞에서 정직하라 >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를 내서 교도소에 갔는데 잘못이 있어 들어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거의 대부분 자기 잘못보다는 더럽게 재수 없어 들어왔다고 했다. 자기 죄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마음의 천국은 이뤄질 수 없다. 천국에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만 있고 지옥은 “하나님! 저는 죄가 하나도 없어요.”라고 하는 사람만 있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죄와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 신앙도 없고 진실도 없고 감격도 없고 마음의 천국도 없다.

 은혜를 받으려면 실패 앞에서 정직하라. 정직이 없으면 치유도 없다. 회개란 자신의 죄와 실패에 대해 정직하고 “나는 예수님이 없으면 길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와 실패에 대해 정직하면 몸과 마음과 영혼에 급속한 치유가 일어난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고 상처를 피하는 길도 없다. 반대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도 없다. 어떤 상처도 예수님 안에서는 치유된다. 그것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전제조건이 실패 앞에서 정직한 것이다.

 자기 실패의 현장에 솔직하게 서서 그 실패의 상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가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상처 치유의 무대를 만들어 그 영혼을 치유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다.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면 크게 일할 수도 없고 건강도 훼손된다. 말기 암 환자를 보면 많은 경우에 그가 약 2-3년 전 쯤 마음의 큰 충격을 받은 사례가 많다고 한다.

 베드로도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의 숯불 현장이 없었더라면 그는 폐인이 되었든지, 만성 위경련에 시달렸든지, 죄책감 때문에 소심하게 되어 떳떳하게 고개도 들지 못하고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숯불만 보면 깜짝 놀라고 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하며 전혀 수제자 역할을 못했을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보고 “저분은 예수님의 수제자야.”라고 해도 베드로 자신은 “나 같은 사람은 무슨 수제자야.”라고 스스로 비하했을 것이다. 과거의 수치와 실패가 앞날의 삶을 붙잡지 않도록 예수님은 숯불 현장을 다시 한번 펼치셨다.

< 주님의 사랑은 여전하다 >

 숯불 위에 무엇이 있었는가? 생선과 떡이 놓여있었다(9절). 주님은 상심하고 피곤한 제자들을 위해 미리 ‘고기 파티’를 준비하셨다. 주님을 배반한 것도 제자들이고 주님을 실망시킨 것도 제자들이므로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 파티를 열어 주님을 위로해드려야 하지만 오히려 주님이 제자들을 위로하려는 듯 '고기 파티'를 열어주셨다. 얼마나 주님의 사랑이 자상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가? 그 사랑을 생각하면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때로 실패가 있어도 그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사랑의 주님을 의지하고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라.

 예전에 교회에 다니는 중 2 여학생이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아버지가 학원 수학 강사인 그 학생의 평소 성적은 전교 1등이었다. 그런데 자살 며칠 전에 수학을 88점 맞아 전교 5등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성적이 떨어진 것도 상상할 수 없는데 아빠에게 야단맞을 생각을 하자 그것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결국 며칠 동안 불안에 떨다 옥상으로 갔다. 더 기막힌 사실은 그 학생의 아버지가 수학 88점을 맞은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이건 우리 딸 성적표가 아니야. 뭐가 잘못된 거야.” 하고 한탄했다는 사실이다.

 자녀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고, 실패에 집착하면 더 큰 비극이 생긴다. 실패를 넉넉하게 대하라. 내 실패에도 넉넉하고 자녀와 배우자의 실패에도 넉넉하라. 실패를 칭찬할 필요는 없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서도록 도와주라. 가장 훌륭한 부모는 아이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 울적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피자집에 가서 ‘피자 파티’를 열어주면서 “이제 얼굴 피자! 앞으로 열심히 해봐!”하고 등을 두드려주는 부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실패의 기억을 딛고 일어서도록 “이제 다시 시작하자!”라는 의미로 고기 파티를 열어주셨다. 결국 베드로는 ‘숯불에서의 상처’를 ‘숯불에서의 주님 사랑’으로 극복하고 그 다음부터는 숯불을 볼 때마다 배반의 상처보다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담대하게 수제자의 사명을 감당했을 것이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나머지 6명의 제자들에게도 디베랴 바닷가 숯불 앞에서의 기억은 그들의 일생에 강렬한 영상을 남기면서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평생 넉넉한 믿음으로 어떤 고난도 극복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때의 예수님의 사랑이 지금도 동일하게 주어지고 있다. 그 사랑을 확신하며 당당하게 살라. 가끔 못난 모습을 보여도 사랑의 주님은 언제나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시며 나와 함께 하신다. 그 사랑을 믿고 과감히 믿음의 모험을 하라. 때로 실패가 있어도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된다. 실패의 현장에서 성공을 만들어내라. 아무리 처참한 실패에서도 사랑이 많고 자상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실패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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