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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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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눅13:13-30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세상에 천국이 임했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천국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들어가는 영원한 우리의 본향입니다. 그런데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그 천국이 이 땅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완전하게 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천국의 능력과 은총과 축복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천국이 이 세상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천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 나라를 세워 정권과 영토를 확장해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는 사탄에게 매여 있던 한 영혼을 구원해내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며, 하나님 나라가 그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런 성도들의 모임 속에, 그들의 삶속에,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는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임한 하나님 나라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에 들어가는 나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지금 세상에 임하여 있으며,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인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갈 때 그 성도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틀림없이 당신의 마음속에, 그리고 삶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외면하고 여전히 내 맘대로,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당신의 가정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부모와 자녀들이 다 같이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살아가면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까? 교회만큼 하나님 나라를 확실하고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며 순종할수록, 성령으로 충만할수록 교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하게 임합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과 삶속에, 당신의 가정에,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이루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겨자씨 비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는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을 때, 유대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낸 것이라고 왜곡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셨을 때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죄인들을 용납하시고 그들에 복음을 전하셨을 때는 죄인과 한 패거리라고 치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세상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방해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는 강력하고 놀라운 속도로 확장되어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어떻게 임하며,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를 설명하시기 위해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18-19절)


겨자는 오래 전부터 향신료로 사용되어 왔는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갓과 비슷합니다. 요즘은 겨자 잎을 쌈 채소로 먹기도 합니다. 겨자씨는 기름을 짜거나 갈아서 향신료로 사용합니다. 오늘 우리는 밥상에서 겨자 잎과 겨자 반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사진 : 겨자 꽃, 겨자 씨, 겨자 밭)


유대인들은 가장 작은 것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겨자씨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도 작은 것을 가리킬 때 ‘콩만 하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겨자씨는 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는 한 번 심어 놓으면 싹이 나서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씨앗은 작지만 무려 5m까지도 자란다고 합니다. 보통 일년생 식물에는 새들이 깃들이지 못하는데, 겨자는 새들이 와서 깃들일 정도로 크게 자랍니다. 그 씨앗과 비교해볼 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의 강조점은 그 씨의 억제할 수 없는 생명력과 작은 씨앗이 크게 자란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미미하게 시작되지만, 그래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급속도로 확장되어 온 세상에 퍼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지금 온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없는 시골 마음에 교회를 개척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호기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반감을 나타내거나, 심한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복음을 전하자 믿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썰렁했던 예배당 안에 사람이 가득 찼습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질 때, 믿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우상숭배와 미신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처음 조선 땅에 도착했던 선교사들이 얼마나 막막했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이곳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대로 이 땅에는 하나님 나라가 놀랍도록 확장되어갔고, 이 나라는 은총의 땅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토록 미약하게 시작되었지만, 이 땅에 뿌려진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큰 나무처럼 되었습니다.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양적인 확장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강력한 힘으로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쉬지 말고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선교에 헌신해야 합니다.

 

누룩 비유


예수님께서는 또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기 위해 누룩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20-21절)


누룩은 반죽을 부풀려 빵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사용합니다. 이 누룩은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게 퍼져나갑니다. 가루 서 말은 엄청난 양의 반죽입니다. 여자는 매우 작은 누룩을 가루에 섞어 반죽을 해둡니다. 그러면 하룻밤 사이에 그 누룩이 반죽을 완전히 발효시켜 부풀게 합니다. 이러한 누룩의 보이지 않는 강력한 파급 효과 때문에 성경에서 누룩은 주로 죄를 상징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누룩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어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겨자씨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외적인 성장을 나타낸다면, 누룩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내적인 확장과 파급력을 나타냅니다. 매우 적은 양을 사용하지만, 누룩은 소리 없이 삽시간에 반죽 전체를 발효시켜버립니다. 하나님 나라도 이처럼 미약하고 은밀하게 시작됩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며, 온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켜버립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됩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무엇보다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속에 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우상숭배와 미신을 버리게 되고, 술 담배를 끊게 됩니다. 죄와 부정한 일들을 버리게 됩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사람들을 대할 때 주께 하듯 대하게 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가는 곳은 그 어디나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게 역사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끊임없이 은혜와 성령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힘써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며 성도들과 교제함으로써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며, 마음이 새로워지고 영적인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월요일에 출근할 때마다 지겨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며 내가 가는 곳을 변화시키겠다는 뜨거운 각오와 사명감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가 서 있는 곳에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며 나타내야 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 나라는 더욱 능력 있게 퍼져나며 세상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수많은 마을들을 다니시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22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너무나도 능력 있고 신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우신 능력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23절)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24절)


구원의 문은 왜 좁을까요? 그리고 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많을까요? 구원을 받으려면 지금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깊이 뿌리박고 있는 죄와 자아를 버려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온전히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리 주님을 따라다녀도, 그 말씀을 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형식적인 종교인들이었으며,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알았더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8:19) 그들은 자신들의 외식적인 종교생활과 주장을 고집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따르고 있습니까? 아직도 자신의 고집과 뜻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다가 천국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되지는 않을지 두려워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은 전력투구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힘쓰며, 죄를 버리고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과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며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 고집과 죄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문이 닫힐 때가 온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고, 그 좁은 문도 언제까지나 열려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25절)


지금은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이 닫힐 때가 올 것이며,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는 그 누구도 더 이상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문이 열려 있는 지금 들어가야만 합니다. 문이 닫히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기로 하셨습니다.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고, 누구나 방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고 온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한 번 닫힌 방주의 문은 심판이 지나가기까지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방주가 열려있는 동안에 들어간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멸망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구원의 문은 닫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할 것입니다. 자신도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고 하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지금 이 문이 열려 있을 때 즉시 회개하고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25절은 구원받는 조건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도 구원받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한 것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으로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안다고 말씀하셔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주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만 의지하고 믿음을 지킬 때, 주님께서 나를 찾아와 위로해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께서 나를 찾아와 말씀해주시고 내 마음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주님께서 내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주님께서 나를 안다고 하실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천국을 누리며 살다가 영원한 그 나라에 승리하고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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