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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와 잔치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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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잔치                      

눅14:1-14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하여 설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은 마치 잔치와도 같습니다. 누가는 14장 1절부터 24절에서 한 잔치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의 잔치에 초대받아 가셨는데, 그 잔치 자리에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잔치와 관련하여 하나님 백성의 중요한 윤리를 교훈해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잔치에서 서로 상석에 앉으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높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교훈하셨습니다. 또 받기를 기대하고 유력하거나 친한 사람만 잔치에 초대하여 대접할 것이 아니라 갚을 수 없는 약자들을 초대하여 대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도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안식일 잔치에 가신 예수님


  한 바리새인 지도자가 안식일에 예수님을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1절)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한 것은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은 왜 예수님을 초대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잔치에 초대해놓고 엿보고 있었습니다. 엿본다는 말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잔치에 초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잔치 자리에는 수종병 든 한 병자가 있었습니다.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2절) 수종병은 다른 말로 고창병이라고도 합니다. 이 병은 혈액 중의 액체성분이 혈관 벽을 통과하여 신체조직 속이나 조직과 조직사이의 체강에 괸 상태를 말합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얼굴이 부어오르며 손과 발, 다리 등 신체 부위가 크게 부어 살갗이 물러진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 병은 불치병이었으며, 죄에 대한 저주로 생긴 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이 바리새인의 집에 와 있었던 걸까요? 바리새인들이 의도적으로 이 사람을 데려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이런 비참한 병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 병자를 고치시는지 엿보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안식일 계명을 어기셨다고 예수님을 비난하고 공격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공격할 빌미를 잡기 위해 안식일 잔치에 예수님을 초대해놓고, 그 자리에 이 병자를 데려다 놓았던 것입니다.


    안식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언약 중 하나입니다. 안식일은 세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만 지켰습니다. 안식일 지키는 것은 하나님 백성이라는 분명하고 독특한 표시였습니다. 만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은 가장 엄격하게 지켜졌습니다. 안식일에는 모든 일상의 일을 중단하고 안식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며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일에 몰두하다보면 자칫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하나님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며 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본연의 모습을 기억하고 회복하며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식일 지키는 것은 생명과 삶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0-11) 하나님 백성은 안식일에 일상의 일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했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을 섬기며 안식하면서 복을 받는 날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안식일에 하나님께 집중하며 섬김으로써 은혜를 입어 영과 육이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의 원리와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을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이 안식일에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잔치 자리에 예수님을 초대해놓고 수종병 든 사람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고치시는가 엿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고치신다면, 안식일에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 것이 된다고 바리새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수종병자를 고치심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생각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3절)


  율법교사와 서기관들은 율법을 깊이 연구하고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기 위해 보조 조항들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해서는 안 되는데, 어떤 일을 어느 정도로 해서는 안 되는지를 자세히 규정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39가지로 자세히 규정했으며, 그 39가지 규정에도 자세한 해설을 붙여놓았습니다. 그 결과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외적인 준수만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고치시는지 엿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님께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과 의도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대답하시면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3절) 그들은 자기들의 기준과 생각에 따라 “안 된다”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랍비들은 생명이 위태한 환자가 아닌 이상 안식일에 고치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것은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에 그 병자를 고치시면 안 된다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않고 예수님을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율법교사와 바리새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4절)


  그날은 안식일이었는데, 바리새인들이 엿보고 있는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수종병 든 이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그토록 강조해오던 안식일을 예수님께서 부정하고 범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을 완전히 무시하셨다고 생각하여 분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노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5절)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6절)

 
    사랑의 법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세상일에 빠져 안식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면 세상과 일에 시달려 곤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세상에 빠져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너지게 되고, 참된 안식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께만 온전히 집중하여 예배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참된 안식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어려운 계명으로 만들어버렸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조문들을 통해 사람을 정죄하기에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수종병 든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은 사람에게 평안과 안식과 생명과 구원을 주는 날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안식일에 자식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건져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그들의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이것은 안식일에 일하는 것임이 분명했으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처럼 비참하게 고통당하는 병자를 고치신 것을 안식일 범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물론 안식일은 일상의 일을 중단하고 철저히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더욱 힘써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 역시 힘써 해야 합니다. 고통당하는 자,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을 위로하고 돌보는 일은 안식일에 더욱 열심히 해야 할 일들입니다. 안식일은 생명과 평안과 구원과 회복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수종병 든 사람을 고쳐주신 것은 안식일에 가장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매정하고 무서운 정죄의 법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본래 사랑의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며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것입니까? 이것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가르친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사랑의 법이며, 따라서 사랑을 놓쳐버리면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 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봉사와 교제는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사랑으로 순종하며 사랑으로 봉사하고 사랑으로 충성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


  그 날 바리새인 지도자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 지도자들이었으며, 나름대로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잔치 자리에는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앉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가장 귀한 손님은 대개 맨 나중에 도착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상좌에 앉아 대접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날도 이들은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7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비유를 들어 교훈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8-11절)


  초대 받은 자들은 높은 자리에 앉음으로써 자신들의 명예와 권위가 드러나게 되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가 나중에 더 높은 사람이 왔을 때 주인이 자리를 내주라고 하면 부끄러움을 당하고 끝자리로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끝자리에 앉아 있으면 주인이 와서 높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할 것이며, 그 때에 사람들 앞에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명예를 잃지 않는 방법과 진정한 영예를 얻는 처세술을 가르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바리새인들의 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지적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교훈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과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백성은 정반대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잔치에 사람을 초대할 때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잔치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에 대해서 교훈하셨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12-14절)


  사람들은 대개 자기와 친한 사람이나 높은 사람을 초대합니다. 자기와 친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목적을 가진 자리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영향력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초대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에게서 어떤 도움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친지들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정을 나누며 친교하는 것을 금하신 것이 아닙니다. 친한 사람들이나 높은 사람들을 초대하면 그들이 신세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기대하고 초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대가를 바라고 사람을 대접하지 말고, 갚을 길이 없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몸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 이런 사람들은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접하면 복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세를 갚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복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고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며,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축복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백성은 모든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동기를 가지고 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스스로 높아지려 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사랑으로 연약한 형제를 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얼마든지 은혜를 주십니다. 천국에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고, 언제나 사랑으로 행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천국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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