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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배재철 <3> 발성교본 살 돈도 없이 큰형 친구에게 성악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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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이 높아질수록 또래 친구들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자연스레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과 나처럼 예체능에 관심 있는 친구들로 나뉘었다. 나는 고3 때 음대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게 아니면 그룹 사운드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거나 음향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음악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부모님에게 음대에 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내 뜻을 존중해 주셨다. 그러나 문제는 레슨비였다. 음대에 가려면 적어도 개인레슨을 받아 실기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형편상 레슨을 받는 건 무리였다.

다행히 큰형 친구가 도움을 줬다. 음대에서 공부하는 형 친구가 레슨을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찌나 감사한지…. 그런데 형 친구는 첫날 레슨에 앞서 발성교본 책을 사오라고 했다. “책을 살 돈이 없다”고 사실대로 털어놨다. 형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쓰던 책을 줬다.

난생처음 레슨을 받고 집에 와서도 계속 연습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이탈리아·독일 가곡과 발성법인 콩코네를 연습했다. 10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준비했다.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그 시간이 행복해 수험생인 내겐 입시준비가 아니라 즐겁게 노래 부르는 시간이었다. 발성과 호흡하는 방법을 알아가며 비로소 ‘아, 노래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래를 좋아하기만 하던 아이가 노래의 원리를 터득해 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1988년 한양대 음대에 입학했다. ‘콩쿠르’가 뭔지도 모르고 이탈리아·독일 가곡 겨우 두세 곡 연습해 음대에 진학한 나였다. 대학에 입학한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꿈에 그리던 음대에 진학했으니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이 아닌, 강사 선생님 제자로 배정되자 아쉬움에 속이 상했다. 물론 학생마다 개인 실력 차이는 있겠지만 입학하자마자 차별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교수님 제자들은 교수실에서 편히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나처럼 강사 선생님 제자들은 빈 연습실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음대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강사 선생님 제자가 됐다고 탓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빈 연습실을 놀이터 삼아 살았다. 어렸을 때 교회를 놀이터 삼아 지냈던 것처럼…. 그리고 ‘강사 선생님 제자가 1등으로 졸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가끔 제자들이 장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솔직히 조언을 해주는 데 한계가 있다. 어쨌든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좋은지, 절대 포기가 안 되는지…. 나는 목소리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노래가 포기되지 않았다. 노래를 사랑하고 무대를 좋아했기에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분명한 비전과 목적이 있다면 우리는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고 한 사도 바울처럼 주님이 주신 비전을 갖고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 어떤 장애물도,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정리=노희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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