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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최일도 <16> “있는 돈 다 내놔” 내 목에 칼 겨눈 행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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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일공동체 ‘나눔의 집’이 마련되면서 그동안 생각으로만 머물던 공동체 생활이 구현되었다. 하지만 삶의 자리가 너무 열악하다 보니 공동체 생활을 희망하는 사람은 나와 두 명의 신학생, 행려자였던 전씨, 칼갈이 아저씨뿐이었다. 공동체 구성원의 자격엔 그 어떤 조건도 걸지 않았다. 왕따를 당하거나 비난받는 사람일수록 받아들이자고 했다.

공동체 식구들은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아침기도를 올리고 봉사자들과 함께 점심밥을 지었다. 봉사자들이 매일 온다는 보장도 없어 음식이 담긴 무거운 통들을 나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매우 기쁜 마음으로 했다.

밥을 함께 먹는 이들은 행려자나 무의탁 노인만이 아니었다. 영세 상인들과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교육도 받아보지 못한 어린이들도 있었다.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밥을 먹도록 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는 봉사자들에게 예수의 ‘예’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봉사자들이 간혹 있었는데, 날 아주 심하게 욕하고 떠났다.

밥 한 그릇에 예수님을 팔지는 말자고, 참사랑을 갖고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면 결국은 예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나를 향해 급진적이라며 질책하고 정죄하는 근본주의자나 율법주의자를 대하는 일이 포주나 조폭을 상대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그럴수록 ‘복음을 입술로 전하진 말자. 삶으로 예수님을 전하자’고 굳게 다짐했다.

가끔 공동체를 비울 때가 있었는데 그 틈을 타고 난감한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행려자였다가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 A씨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용돈을 요구했던 것도 그중 하나다. 봉사자들이 그를 가엾게 여기고 돈을 줬고 A씨는 그 돈으로 늘 술을 마셨다. 문제는 술만 들어가면 폭언을 하고 행패를 부린 것이다. 참다못해 회의 끝에 그를 제명하기로 했다.

그날 밤 섬뜩한 기분이 들어 자다가 눈을 떠 보니 A씨가 부엌칼을 내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그는 “있는 돈 다 내놔. 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기가 막혔다. 길에서 굶어 죽어가던 사람을 데려다 밥 먹이고 잠자리도 제공했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 늘어갔다.

또 다른 구성원인 B씨는 판단력이 흐려 가끔 뜻하지 않은 사고를 몰고 왔다. 밤늦도록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다가 잠들어 화재를 내거나 음식 만들다가 소금이 모자란다고 다른 집에서 소금을 가져와 절도범으로 몰리기도 했다.

다른 세입자들은 우리가 건물에 들어온 것을 못마땅해했다. 일부러 수돗물 공급을 끊기도 했다. 수백 명 분의 밥을 짓는 것도 문제였고, 한여름에 설거지를 못해 잔반이 쉬거나 썩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날은 물이 나오고 있음에도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있는 일이 있었다. 왜 처리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내가 두 번이나 설거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남겨둔 것이라 했다. 죽어가는 사람들 살려보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그랬던 건데 기가 막혀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정기적으로 반복됐다. 하나님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람들과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살을 찢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통해 깨닫게 하셨다.

나같이 모난 곳이 많고 함량 미달인 자를 하나님이 편하게 쓰기에는 멀었다고,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초창기 만난 그분들이야말로 쓸모없는 나를 담금질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은 도구라 여기게 됐다.

정리=이사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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