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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홍렬 <12> 나눔은 기쁜 중독… 남 돕는 묘미 끊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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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잘한 일로 손꼽는 것 중 하나가 사회복지기관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홍보대사가 된 지 올해로 20년. 개인 후원을 시작한 것은 32년째를 맞았다. 칭찬을 받으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어쩌다 시작된 나눔이 이렇게 쌓였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는 1986년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재단이 주최하는 소년소녀가장 돕기 행사에 사회자로 초청됐다. 성황리에 행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재단 관계자가 수고했다며 흰 봉투를 건넸다. 수고비를 받고 출연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복지기관 행사이고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자리라 양심상 돈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얼떨결에 돈을 받았다. 입으로는 “괜찮은데”라고 하면서 돈은 어느새 안주머니로 들어왔다.

몹시 후회했다. ‘나도 어렵게 자랐는데’ 하는 생각에 자신을 책망했다.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자리에서 돈을 받아 오다니. 이런 바보 바보.’ 나는 후회하면서 돈을 돌려줄까 고민하다가 이 재단이 뭘 하는 곳인지 찾기 시작했다. 국내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는 곳이었고, 후원회장이 믿을 만한 최불암 선배님이었다. 나는 출연료를 돌려줄 게 아니라 아이들과 일대일 결연을 해 후원자가 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처음엔 강원도 어린이 1명, 제주도 어린이 1명을 후원했다. 이후 숫자가 조금씩 늘었고 대상도 국내외로 넓어졌다. 무엇보다 이렇게 후원하는 일은 재밌었다. 남을 돕는 일의 기쁨과 묘미에 빠져 살다 보니 어느새 30년 넘게 후원하게 됐다.

이홍렬쇼가 한창이던 1998년,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이 단체는 나름 역사가 깊다. 미국이 1948년 CCF(Christian Children’s Fund) 한국 지부를 세워 전쟁고아를 돌보면서 아동복지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자 CCF는 지원을 멈췄다. 이후 이 단체는 국내 순수 민간기관으로 자립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됐다. 나 역시 이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을 수 있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재단 직원들, 후원 모임 사람들은 정말 칭찬받아야 할 분들이다. 이들의 진정한 어린이 사랑은 나눔 봉사활동을 끝낸 뒤 갖는 뒤풀이에서 느낄 수 있다. 뒤풀이에서도 이들은 어린이 돕는 이야기만 한다. 그렇다고 홍보대사로 나선 나보다 칭찬을 많이 듣는 것도 아니다. 이들보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나는 생색만 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분들을 보면 ‘나눔 중독’이란 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처음 홍보대사를 시작할 때는 재단이 나에게 엄청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내가 재단에 무한 감사를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재단을 통해 어린이들을 돕고 나눔의 기쁨을 깨달은 세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가진 것을 나누는 행동은 언제 해도 늦지 않다. 투명성이 확보돼 있고 활발히 활동하는 사회복지기관을 통해 단돈 1만원이라도 후원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연금만 나오게 준비하는 게 노후대책이 아니다. 후원은 처음 시작이 어렵긴 하지만 일단 하면 멈추기도 어렵다. 정년퇴직 없는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작정이다.

정리=구자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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