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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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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416: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 안에 계신 예수님께 왔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깨끗이 고쳐주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깨끗이 쫓아내시고 정결케 하신 후에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 성전 안에서 사람에게 되어지는 역사, 되어지는 질 역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되는 역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성전 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종교행사를 빙자하여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의 행위 속에는 성도의 영원 궁극적인 구원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떠한 종교적인 행위라도 이는 영적 면에서 보면 강도가 틀림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청소를 하고 성전 안에서 저는 자와 소경을 고쳐준 일은 당연한 일인데 그러나 그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그들이 이상한가, 성전 안을 대청소하고 불구자들을 온전케 해 주신 주님이 이상한가?

 

그리고 성전 안에서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지금 구원하소서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구원찬송을 불렀는데 종교지도자들이 화를 낼 것이 무엇이냐? 참말로 속도 좁지!

 

종교지도자들이 육적 세상적 목적적으로 성전 안에서 예복을 입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종처럼 보이지? 여기에 세상적인 지위를 더 가지면 더 거룩한 성자로 보이는 것이지?

 

주님이 그들을 강도라 지적을 하고,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지적을 했는데도 그 때 당시 누가 그 말을 믿어주었느냐? 지금은 더 안 믿어주지! 성육신 주님은 부활 승천해 버렸고, 세례요한은 목베임을 당해 죽었으니까!

 

종교적인 제도와 교파와 교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리워진 강도 같은 그들의 마음을 주님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선지자의 영을 가진 자들은 다 압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특수 목적물로 특수하게 지음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특수하게 자라서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의 역사의 찬미를 부를 자들입니다.(계시록) 그런데 영적인 강도는 내 신앙성장 죽이고, 내 능력성장 죽이고, 내 실력성장 죽이고, 나의 물질성, 나의 시간성, 나의 노력성을 다 빼앗아 갑니다.

 

나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서 몰라서, 알지 못해서 그들의 하는 일에 동참하고 협조하고 참여한 일은 없는가? 나는 주님을 따르는 자인가, 장사꾼인가? 어떻게 믿는 것이 성전 안에서 장사꾼이 되는 것인지 확실하게 나의 신앙노선을 알고 믿자!

 

우리는 어느 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것이냐?

일반 도덕법이냐?

종교생활 법이냐?

성문법이냐? 글자 그대로!

성문 속의 은밀법이냐?

하나님의 은밀법 곧, 의사단일성으로 자기 신앙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자기도 전혀 모르는 사이에 영적 강도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강도는 종교지도자들 중에도 있을 수 있고, 내 속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수가 일반으로 나갈 때에는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모두 영적인 강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나의 몸을 성전으로 하고 계시는데 강도의 굴혈을 만들면 안 됩니다.

 

211722: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당신의 집에 왔지만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으니 하루 밤이라도 묵을 수가 없습니다. 베다니에는 주님 당신의 사랑하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가?

 

이른 아침에 일찍 성안으로 들어오실 때에 무척 시장끼를 느끼셨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로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시지 왜 그냥 나오셨을까?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심일까?

 

성안으로 들어오시면서 보니까 길가에 잎이 무성한 나무가 있기에 열매를 따먹어 볼까하고 가셨는데 열매를 얻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하고 저주를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타락된 인간심리로 보면 예수님께서 열매가 있는 줄 알고 가서 보니까 열매가 없으니 그만 기분이 나빠 가지고 저주를 해 버린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보기 전에 그 길가의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가신 것일까? 예수님께서 다 아시는 것입니다. 아시면서 아침 일찍 나가셔서 그렇게 하신 것은 분명 우리를 깨닫게 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주하시자 마자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 예수님의 저주가 무섭긴 무섭다, 예수로부터 도망을 가긴 다 틀렸다. 저주받아 죽으면 어떻게 하나?’ 그렇게 생각이 안 들까?

 

무화과나무는 누가 만들었느냐? 창조 때 주님이 만들었습니다. 창조 때부터 열매 맺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는 안 열리고 잎만 무성했습니다. 오고 가는 나그네에게 그늘을 지워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새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밤에는 부엉새가 와서 울고 했겠지만 그러나 창조 때부터 주님의 원하심은 맛있게 열리는 열매였습니다.

 

맛있는 열매가 열려서 길가는 오고 가는 나그네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맛을 주도록 했는데 그런데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했습니다. 분명히 햇빛과 비를 주었을 텐데 열매가 있어야 할 나무가 열매가 없다면 그 나무의 존재적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나무의 가치가 상실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특수 피조물이요, 특히 인간 중에서도 영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성장치 못한다면 사람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교회성도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자라는 것이 없다면 성도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언제 주님이 자기에게 신앙열매를 찾으러 오실지 모릅니다. 성전에서 종교지도자들이 강도짓을 하고 있을 때 분명히 오시리라고 믿어집니다.

 

물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당시의 육적 이스라엘 종교말년의 신앙을 보여주면서, 또한 영적 이스라엘 신앙말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종교활동과 종교의식이 활발해서 꼭 성령의 열매가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보통은 그렇게들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열매란 하나님으로 닮은 온전한 성품이요, 그 인격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니 예수님의 정신 사상 마음 소원 목적 취미를 닮은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모두 저주 속으로 들어갑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처럼!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잎사귀만 무성한 교회이거나, 종교활동 종교행사 그것만 보고 들어간다거나, 또 그 가운데 있다면 그는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저주는 심각합니다. 영과 육으로 다 받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디에 있었느냐? 길가에 있었습니다. 물론 나무야 길가에 있기도 하고, 산에 있기도 하고, 냇가에 있기도 하고, 정원수로 심기워지기도 하겠지! 하지만 여기서는 성령의 열매가 없는 육적 이스라엘의 신앙을 말하기 때문에 길가에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꼭 알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길 가운데 심기워질 리는 없지만 주인의 정원에 심기워질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인의 손길의 돌보심의 열매가 열리리라고 보아집니다. 주님의 진리통치와, 주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교훈에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리라고 보는데 길가에 있으니 이것은 주님의 돌봄이 없는 제 멋대로 큰 것입니다.

 

나무는 길 가운데 심기워지지 않지만 그러나 신앙적으로 보면 우리 인간은 진리의 신앙노선 가운데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신앙의 노선을 벗어난 신앙은 그 어떤 열심을 부리고, 보수니 정통이니 하며 교권이 강해도 그런 신앙은 비 진리적 육적 세상적인 신앙노선이니 길가에 심기워진 무화과나무와 같아서 성령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굉장하지! 성령이 불붙은 것처럼 보이지. 날마다 종교행사를 하니까! 그것이 또 주님의 축복이요,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모두 위안제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 줄 압니다.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느냐? 그것 자랑하고, 그것을 알아주는 것을 보니까!

 

지금도 프로그램, 악세서리 자랑하는 교회는 음녀의 악세서리인 줄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도 그 때와 똑 같아서 깨닫지 못하고 신앙의 열매를 어떤 종교적 활동에서 찾으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장하고 가르치던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는데도 말입니다. 영원한 궁극적 심판에 해당되는 사심판에서 즉, 성령의 열매가 없는 자가 받는 자체적인 심판에서 영원히 오그랑 망탱이가 된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저주의 선언 속에는 이 심판의 선언이 들어 있습니다.

 

성화구원의 사상에 둔감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저주에 느낌이 민감해야 됩니다. 무서운 저주입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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