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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등의 해결 (행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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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다 보면 개인적인 일, 가정적, 사회적인 일, 또 나라에서도 일이 많습니다. 여러 사람이 살다보면 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릅니다. 잘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들어 하며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일이 있을 때 아무 일도 없는 듯 그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일을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 문제가 되느냐 않느냐는 많은 경우에 그 일 자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사람의 반응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결국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보고 어떤 반응을 일으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도 문제 아닌 것으로 보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로 보면 문제가 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스트레스가 그렇습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사람들은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아주 흥미롭게 또 재미있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일이 생겼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특히 그것을 대하는 사람이 지도자일 경우에는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가장이나 나라나 사회의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이 지도자가 일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이나 사회, 국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현재 우리나라 상황의 문제로 익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한 사람이 되고 평안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사회를 이끌어 갈 수가 있는가를 사도행전 15장에서 하나님은 아주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안디옥교회에 작지 않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구원의 조건이라는 문제 때문에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안디옥의 지도자인 바울과 바나바는 구원의 조건은 단 하나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죄를 지었든 어떤 삶을 살아왔든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어떤 사람들이 와서 그것도 옳지만 거기에다 할례도 받고 율법도 지켜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윤리 도덕 이런 것도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은 믿기만 하면 받는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만 당시는 아직 기독교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므로 교인들에게 상당한 혼란을 가져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도자에게 불평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으면 항상 불평이나 불만을 터트릴 태세가 되어 있는 터에 밖에서 온 사람들, 특히 본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니 교회가 그만 시끄럽게 되고 혼란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초대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아주 아름답고 멋지게 처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심을 통해서 여러분이 아름다운 지도자들이 되어서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평화롭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르치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를 봅니다. 이것은 안디옥 교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우리가 혹은 우리끼리 결정할 문제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은 아무리 우리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일지라도 우리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결정하였는데 이는 참 중요합니다. 우리 가정이나 개인의 문제, 교회의 문제라도 우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해결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것을 알고 있었고 공을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의 중요한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로 넘어가서 이 문제를 의논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혼자 혹은 몇몇 사람이 결정하지 아니하고 지도자 전체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모든 지도자들이 다 모이게 되고 이 문제에 관련 있는 사람을 다 모으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입니다. 아주 겸손한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엎드려 앉은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이 결정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모았습니다. 워낙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할례와 율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들었고 예수를 믿는 것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과 바나바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세례를 베풀었던 베드로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들었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 최고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한참 동안 예루살렘 교회는 최고 지도자가 없이 몇몇 지도자가 함께 공동으로 이끌어 가는 것 같은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야고보 선생이었습니다. 야고보 선생이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책임자를 맡고 있었는데 한참동안은 최고 지도자가 없는 것처럼 그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입은 없고 귀만 있는 것처럼 보고 듣기만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의견을 말하는지 쭉 다 들었는데 끝까지 듣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 듣고 난 뒤에 최고 지도자는 마지막 결정을 짓는 책임을 졌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의견과 성경이 말씀하는 모든 의견을 종합해 보건데 결론은 이렇습니다 라고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멋집니다.

최고 지도자는 이래야 합니다. 최근에 법이 바뀌어서 앞차를 따라 가다가 길이 막힐 때에 신호를 보고 따라왔기 때문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차량은 처벌한다는 법규가 정해졌는데 TV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차량이 꼬리를 물고 헝클어 졌을 때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자 한참 많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빨간 막대기를 둔 경찰이 와서 끊어주니 흐름이 금방 빨라졌습니다. 최고 지도자는 자기가 최고로 잘 알아서 앞에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을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야고보 선생은 이 일을 잘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기의 주장이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의견과 성경의 가르침을 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최고 지도자인 야고보 선생이 결론을 내리니 모든 사람들이 다 승복한 사실입니다. 그동안 그토록 강하게 결론과 다른 주장을 해오던 모든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승복하게 됩니다.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회의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면 내린 결론을 따르겠다는 조건이 희의 참여시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오래 전에 있었던 정치계의 한 일을 떠올렸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당인지 야당인지 모르지만 대통령 후보를 경선하는 일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실컷 경선은 해놓고는 자기가 경선에서 떨어지니 탈당해서 따로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당사자로서는 이런저런 이유가 충분히 있었겠습니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선에 참여했다는 것은 경선의 결과가 나오면 따르겠다는 것을 이미 약속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다가도 결론이 내려지니 아멘하고 만장일치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갈등이나 다툼이나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에 이 모든 일들의 해결의 핵심은 지도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지도자의 지도력이라는 것입니다. 금년에 있는 대통령 선거에 여러분이 잘 뽑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현 대통령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불만을 가질 수는 있으나 너무 많이 불평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누가 뽑았습니까? 내가 찍지는 않았지만 우리 국민이 뽑았습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대통령에 대해서 불만적인 요소가 있을 때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서 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야 할 것이지 불평하고 불만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표를 주지는 않았지만 우리 국민의 다수의 표로 당선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잘 뽑아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뽑아야 합니다.

지도력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가정의 가장이라고 가정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의 CEO도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나라의 최고 책임자도 그렇고 교회의 책임자도 자기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한계를 아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를 봅니다. 지금 안디옥 교회의 문제는 자기들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체적으로 해결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보아하니 이 일을 우리가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는 한 지교회가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빨리 알아야 합니다. 가정의 문제가 내 집만의 문제로 해결할 것인지 온 집안이 모여서 해결할 문제인지, 다른 의견을 모야야 할 것인지,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이런 것들도 한 가정의 가장은 알아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잘했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그동안 여러 의견을 주장했던 당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주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작지 않게 벌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내 의견이 관철되어야 한다고 밀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각도로 표현할 수도 있고 때로는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관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 일이며 잘못된 일인지 모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꼭 옳은 것이 관철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라는 것입니다. 정말 내 의견이 옳으면 내가 지금 양보한다 하더라도 기어이 하나님께서는 옳은 것을 결정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도 믿는 사람이 가질 자세입니다. 때로는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얼마나 믿지 못하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정말로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역사와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실 것인데 뭘 내가 나서서 큰 소리치고 싸우고 다툴 것이 있습니까? 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인데 조금 주장하다가 뒤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사도행전 15장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독교의 본부 격입니다. 어른 중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부라고 해서, 어른 중의 어른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대통령이라고 혼자서 다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담임목사라고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 있는 것이고 교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같이 생각합니다. 겸손한 모습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단지 교통 경찰관처럼 정리해 줄 뿐이지 내 의견을 마음대로 큰소리치며 주장할 것이 아님을 최고 지도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가정의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들이 어느 정도 크면 아들이 비록 틀렸다고 해도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아량도 좀 가져 주어야 합니다. 아들이 비록 틀려도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면 다 압니다. 망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면 됩니다. 저 아들이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잘 챙겨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전부다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셔서 여러분의 가정 일도 나라 일도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의견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지난번에 정말로 이 일에 관하여 큰소리 칠 수 있을 만큼 고넬료의 집에서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계시를 주시기도 하고 베드로에게 계시를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그 당시 최고 지도자는 아니라고 해도 최고 어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난번에 이런 경험을 했었는데 여러분은 이것을 참고로 하십시오 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조금 배웠다고 조금 경험했다고 전부 다 아는 것처럼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좋은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일 년 마다 세대가 바뀐다고 합니다. 옛날에 배운 것 가지고 교회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의견도 많이 들어야 합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능력있는 CEO들은 밑에 있는 후배들의 의견을 잘 듣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을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객관적인 논의과정을 거쳐서 최고 지도자가 결정을 내렸을 때 아멘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먼저 이것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배웁니다. 회사와 나라가 배웁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참 중요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첫 번째 공회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이 결정되었습니까? 구원의 조건이 무엇인가? 구원은 단 하나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어떤 잘못이나 죄가 있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아주 중요한 원리가 여기서 결정되었습니다.

다음에 하나 더 봅니다. 안디옥 교회도 여러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고 불평도 있을 수 있습니다.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항상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정말 내가 세운 나의 종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나님께서 증명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멋지고 좋은 결과입니까? 아니러니 하게도 이 좋은 결과가 무엇으로부터 출발했습니까? 다툼과 갈등,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일이라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따라서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생 살다가 일이 생기고 다툼과 갈등이 생기는 것이 전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부부끼리 가끔은 야간은 다투는 것도 괜찮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냥 덮고 지나가서만 될 일이 아닙니다. 아내와 남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서로 이야기를 해서 이것을 서로 잘 조정해 나가야지 더 멋진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보도를 보면 대선 후보들의 검증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때 야당이나 여당에서 다 검증했더라면 지금 속상해 하며 마음 아파하는 일을 생기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삶의 의미가 없고 무미건조하다는 것입니다. 발전이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있어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예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의 문제를 잘 해결했던 안디옥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 두 사람인 바나바와 바울이 다투는데 심각하게 다투는 문제가 생깁니다. 지난번에 선교여행을 갈 때에 마가를 데리고 갔었는데 이 마가가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한참 가다가 자기 마음대로 혼자서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선교하는데 어려움이 좀 생겼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다시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바나바는 그래도 마가를 한 번 더 데리고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일은 몰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일이 우선이라고 하면서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래서 많이 다투었는데 두 분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심하게 다투었지만 결과는 바나바 선생은 마가를 데리고 가도록 하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다른 쪽으로 갔습니다. 선교 팀이 하나였는데 두 개의 선교 팀이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예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갈등이나 다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인 바나바와 바울도 갈등과 다툼을 일으키지 않은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그 결과로 무엇을 만들어 내느냐에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찬가지로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좋은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인 한스 셀리 박사는 스트레스는 인생의 양념이라고 말했습니다. 양념은 잘만 치면 좋습니다. 일이 생기고 다툼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우리들에게 중요한 일은 누구를 탓하고 다투고 따지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제일 바보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이 일을 가지고 원하시는 바가 무엇일까? 우리가 어떻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실까? 이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겸손하게 우리는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맡기게 되면 갈등이든 다툼이든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최고의 걸작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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