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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없는 세대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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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는 세대                          
눅9:37-50


  당신은 예수 믿은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나이가 들어가고 신앙연륜이 쌓여 가는 것처럼 믿음도 성숙하고 견고하게 서가고 있습니까? 이제 어떤 경우에도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주님의 뜻을 따라 맡겨주신 본분과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습니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도 임박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믿음이 견고하지 못해 자주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주님께서 맡겨주신 본분과 사명은 망각한 채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살기에만 바쁘지는 않습니까? 그러다 주님 앞에 서게 되면 무엇을 내놓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아직도 준비되지 못한 제자들


  누가는 9장에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마지막 장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51절)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떠나가신 후에 그들에게 맡겨질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과연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요? 본문에서 누가는 아직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준비되어 있지 못한 제자들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심정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귀신들린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쩔쩔매며 조롱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다시 고난당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아직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엉뚱한 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투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것을 보고 “주님의 제자도 아니면서 어디서 함부로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느냐?”하고 금지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제자들이 아직도 믿음과 영적인 분별력과 겸손과 관용에 있어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제자들을 보시는 주님께서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만한 성숙된 믿음을 갖추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안심하고 사용하실 만한 제자로 서 있습니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변화산의 영광과 산 아래의 무력한 패배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시던 중 영광스럽게 변화되셨습니다. 영광스러운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는데,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는 비참하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37-40절)


  누가는 이 아이가 귀신에게 사로잡혔다고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아이가 심한 간질병을 앓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마17:15) 마가는 이 아이에게 벙어리 귀신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막9:17) 복음서의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이 아이에게 귀신이 들렸는데, 귀신의 역사로 이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한 간질병으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마침 예수님은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오르셨고 아홉 제자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아이를 고쳐달라고 부탁했는데,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마가는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막9:14)  마가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으며, 서기관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와서 자기 아들을 고쳐주시라고 간구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여 조롱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장면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꾸짖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데리고 오라 하시니”(41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우신 능력으로 이적 행하시는 것과 병을 고치시며 귀신 쫓아내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전도하러 갔을 때 그러한 능력을 직접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제자들은 귀신에게 사로잡힌 아이를 고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고치지 못하고 조롱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 아이를 고치지 못했을까요?


  이 일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여쭈었습니다.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19-20)


  마가는 예수님의 대답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8-29) 기도하지 않았다는 말씀과 믿음이 없었다는 말씀은 결국 같은 말씀입니다. 이 능력은 제자들에게는 없었고, 오직 예수님께만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능력으로만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사탄의 세력을 대적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세력을 이기려면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힘입으려면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무력하게 되고 조롱을 당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더욱 힘써 기도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올 때 귀신이 그 아이를 넘어뜨리고 심한 발작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이것은 그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의 발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42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실 때도 열병을 꾸짖으셨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거라사인에게 들어간 군대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셨으며, 이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이 위엄에 놀랐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충만하게 역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


  이 일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반당하시고 고난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44절) 22절에 이어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깊게 듣고 명심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 놀라고 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43하) 사람들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기적들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제자들은 그보다는 예수님께서 장차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이라는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45절) 예수님께서 두 번씩이나 이 말씀을 하셨는데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숨긴 바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것을 가르치시려고 애를 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숨긴 바 되었을까요?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방금도 예수님께서는 놀라우신 권능으로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시고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넘겨지셔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묻기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구속사역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영적인 분별력과 통찰력이 아직 매우 부족했습니다.


    누가 크냐?


  우리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여 조롱을 당한 후 낙심하고 위축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누가 더 크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했습니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46절)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왕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우실 왕국에서 누가 요직을 차지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데려다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니라”(48절)


  예수님께서는 왜 어린 아이를 데려다 세우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까요? 어린 아이들의 겸손과 신뢰, 가식 없고 단순한 특징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하고 단순하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미련한 생각과 계산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높으신 계획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내 생각을 고집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겸손하고 단순하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높아지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더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믿음이 성숙될수록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인정하시고 귀하게 쓰시며 높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과 본분에 충성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높아지기를 구하지 말고 겸손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관용


  제자 중 요한이 예수님께 이런 보고를 드렸습니다.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49절) 아마도 이 사람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었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까지 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 일은 이상하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닌 사람이 함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금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50절)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의 하나가 독선과 편협입니다. 뜨거운 열정과 순결한 믿음을 가지고 열심을 다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 중에도 지나치게 독선적이거나 편협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진리와 구원에 관해서는 어떤 타협과 양보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와 입장과 의견이 다른 사람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부족하거나 맘에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관용을, 모든 일에는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럽게 변화되셨던 산에서 내려오셔서 산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아직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모습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책망하시지는 않겠습니까? 당신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이제는 성숙되고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맡겨주신 본분과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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