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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을 얻는 길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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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는 길                           

눅10:25-37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구원입니다. 당신은 확실히 구원을 받았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다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엄격하고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 어떤 율법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습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25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과 전통에 어긋나는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비난하며 공격했습니다. 이 율법교사도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했습니다.


  율법교사의 질문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영생 얻는 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능통한 이 율법교사에게 이렇게 되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묻는 이 율법교사에게 율법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율법교사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27절) 율법교사는 레위기 19:18과 신명기 6:5을 인용하여 대답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9:18)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이 율법교사는 율법의 핵심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그 계명대로 행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28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율법을 행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정말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구원받는 것은 인간의 행위로는 결코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교사에게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시고, 네가 알고 있는 바대로 계명을 지키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 말씀은 옳습니다. 누구든지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사람은 아무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주셨을까요? 율법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 구원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로 와서 그분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3:24)


  이것이 바로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소망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구원을 이루시고, 누구나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 율법교사는 율법을 다 지켰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교사는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서 심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율법을 다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영생을 얻기에는 부족하다고 절실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겸손하게 그것을 고백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교사는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또 다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29절)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답하시기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초주검이 된 채로 버려졌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30절)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의 거리는 약 27km이며, 경사진 광야길을 지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리고는 해저 250m에 위치해 있으며, 예루살렘은 해발 800m의 산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두 도시의 고도 차이는 무려 1050m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간다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려면 유다 광야를 지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유다 광야는 꼬불꼬불한 경사지와 황량하고 메마른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강도들이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약탈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다 빼앗고 옷도 벗겨갔습니다. 이 사람은 강도들에게 죽을 정도로 맞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가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청중들은 이제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제사장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피하여 지나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31절)


  당시 여리고에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길을 왕래했습니다. 아마도 이 제사장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직무를 마치고 여리고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왜 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갔을까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제사장은 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주다가는 자신도 강도들에게 공격 받을 것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죽은 사람을 만질 경우 부정해지기 때문에 피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 제사장이 죽은 사람을 만진다면 부정하게 되어 일정기간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사장이 죽어가는 사람을 돕지 못한 것을 정당화할 이유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제사장이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지나간 것은 백성을 돌보는 제사장의 본분을 외면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한 레위인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32절) 레위인들은 예물을 관리하고 성전을 깨끗이 하는 일을 했으며, 제사장을 도와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이 레위인도 성전에서의 직무를 마치고 여리고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레위인 역시 특권층에 속했으며, 마땅히 백성의 본이 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레위인도 아마 제사장이 그랬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서둘러서 그곳을 피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청중들은 아마도 이번에는 한 평범한 유대인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말씀하실 것으로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한 사마리아인을 등장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그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33-35절)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오랫동안 원수처럼 반목하며 지내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했으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4:9)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목은 오래되고 뿌리가 깊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을 돕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도왔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자기의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습니다. 이 사라미아인은 밤새도록 그 사람을 지켜보며 간호했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이 사마리아인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이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돈이면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물기에 충분한 비용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사마리아인은 혹 비용이 더 들면 자기가 돌아와서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움이 필요한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예수님께서는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묻는 서기관의 질문에 대답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에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36절)


  서기관은 당연히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웃에 대한 정의를 동족, 즉 같은 종교권에 있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정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은 유대인들에게는 이웃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3-48)
 
    이 이야기의 주제


  사람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누가 진정한 이웃이냐에 관해 교훈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시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 서기관이 예수님께 가지고 온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서기관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서기관은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기록되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다. 그렇게 행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서기관은 자신이 율법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통해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원수로 여기는 사람까지도 사랑해야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이렇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계명을 지켜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그분만 믿으면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의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진정한 믿음은 행위로 나타나며,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일 이러한 사랑이 없다면 믿음이 없는 것이며,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았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반드시 이 구원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만 합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면 성령께서 당신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겸손하고 진지하게 성령님께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힘입어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여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지는 경험하게 될 것이며, 당신의 삶이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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