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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 받는 팔복의 사람들

  •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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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고난 받는 팔복의 사람들(1)  


2014-03-30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


Ⅰ. 본문해설


본문은 팔복의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박해를 받으며 살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즉, 팔복의 사람은 세상 나라와는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의 질서가 이루어진 사람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고난을 말한다.

 

Ⅱ. 고난 받는 팔복의 사람들


A. 세상에서 의를 추구함
팔복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살면서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며 산다. 사회적인 의는 법률과 양심을 따라 이루어지지만 하나님 나라의 의는 종교적이고 신앙적이며 복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의로 어느 정도는 사회적인 의와 합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의 나라가 충돌할 때는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팔복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궁극적으로 바라보며 살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힘쓰며 산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인 의에 무관심할 수 없다. 만약 사회적인 불의와 불공평에 대해 항거함이 없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사람이 아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의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을 갖고 있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불법한 일에 대한 침묵하는 것과 심지어 동조하기까지 하는 일은 매우 염려스럽다.


사회적인 의를 통해서 인류의 궁극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평등을 짓밟는 일이 일어날 때 그리스도인들이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의한 일에 분노하고 항거함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서 지금도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B. 하나님 나라를 추구함
팔복의 사람은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통치의 결정적인 특징은 ‘의’이다. 이 ‘의’는 죄인을 벌하고 선한 사람을 상주는 그 이상이다. 사랑을 완성하는 정의이고 정의에 의해서 완성되는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인격은 하나님의 법에 합치한 상태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는 이 일을 이룰 수 없기에 의이신 그리스도를 덧입혀 그 구속을 힘입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시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이루신 그 의를 영적인 방법으로 성취하시려고 세우신 단체가 교회이다. 교회를 통해 각 사람의 마음에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고자 하셨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품질의 나라가 성립되도록 헌신하게끔 만드셨다.


Ⅲ. 예수 닮음과 순례자의 고난


A. “나로 말미암아”
팔복의 사람은 예수 닮은 사람이기에 그는 이 세상에서 순례자로서 고난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너희가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으면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로 하는 복음 전파와 선교뿐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이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기에 핍박을 받는 존재론적인 박해를 의미한다. 한 사람이 팔복의 사람이 되면 곧 예수의 작은 분신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박해와 모욕과 핍박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잘못한 것은 없었으나 예수님을 대할 때마다 빛이신 그분을 보았고 그들은 어두움이였기 때문이다.


B. 팔복의 사람과 그 “의”를 보임
팔복의 사람은 그 의, 곧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다. 신자의 존재 가치는 자기에게 임한, 앞으로 반드시 임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이 세상에 보여주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 팔복의 상태는 저절로 항구적으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팔복의 인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된 영혼을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함께 매일매일 죄와 싸우는 것, 순간순간 세상 나라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 사이에서 치열하게 삶으로 자기의 신앙고백을 현실화시켜야 한다. 복음과 성령으로 영적 변화를 유지함으로써 팔복의 사람됨이 유지된다. 뿐만 아니라 자기와는 다른 불경건하고 악한 사회의 질서와 그 영향력에 대해서 분노하고 항거하며 그 망가진 세상을 부둥켜안고 세상의 불의가 마치 자신의 죄 때문인 것처럼 가슴 아파해야 팔복의 사람 상태가 유지될 수 있다.


Ⅳ. 결론
신자의 최고의 섬김은 자기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두운 밤바다에 빛나는 한줄기 등대요, 무미건조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맛을 낼 수 있는 소금이다. 그리고 빛으로, 소금으로 살 때 예수님은 박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인내와 사랑으로 그 길을 가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들이 되길 빈다.


577.고난 받는 팔복의 사람들(2)  
2014-04-06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


Ⅰ. 본문해설


우리가 ‘그 소금’이시고 ‘그 빛’이신 예수님을 닮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통해 계시된 예수의 사람됨을 닮는 것을 말한다. 예수 닮음의 핵심은 천국의 통치를 받는 것이고, 그 나라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의와 사랑이다. 그러므로 팔복의 인격은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의로운 통치를 받는 사랑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Ⅱ. 신자를 박해하는 세상


A. 예수 때문에 당함
하나님의 자녀가 팔복의 사람이 되면 될수록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산다. 그러나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쏙 빼닮은 사람을 볼 때마다 반감과 거부감, 거절감을 갖는다. 예수를 닮은 성품, 예수를 따라가는 삶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예수님을 박해를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박해한다. 그래서 팔복의 사람이 됨으로써 당하는 박해는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박해이기에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아”라고 말한다.


B. 핍박하는 방식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팔복의 사람을 핍박하는 방식에 대해서 다섯 가지를 말한다. 첫째로 “너희를 욕하고”는 모욕과 창피, 비난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얕잡아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둘째로 “박해하다”는 ‘핍박하다’, ‘ 패주하다’, ‘추격하다’의 의미로 힘으로써 능히 팔복의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세상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든 박해는 정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셋째 “거짓으로” 이루어진다. 팔복의 사람을 박해하는 세상 사람들의 가치는 진실이 아니다. 사실과 진리가 그들 안에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옳지 않는 방식으로 팔복의 사람들을 박해한다. 넷째 방식은 “너희를 거슬러” 곧 신자의 이익에 반하여 박해한다. 다섯째로 세상은 “모든 악한 말”로 박해한다. 이것은 단순히 악한 말이 아니라 저주, 악담, 악한 일을 의미한다. 팔복의 사람들을 향한 불행을 비는 모든 말을 의미한다.


Ⅲ. 하나님의 나라에 반역함


A. 예수 고난을 보여줌
 이러한 모든 박해는 하나님의 나라에 반역하는 것이다. 신자가 팔복의 사람이 되면 될수록 세상으로부터 존경과 칭찬,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그때마다 팔복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모욕과 박해를 받으셨고 거짓 증인에 의해 고발되고 거짓된 판결에 의해서 죽음에 이르셨다. 예수님이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죽으신 이유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도입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싫어하였기 때문이다.


B. 우리 고난을 보여줌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팔복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를 받는 예수님처럼 살고 싶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박해를 받으셨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팔복의 사람이 되는 것이 지상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인 줄 아는 우리가 받는 고난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진리와 선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진리를 참되고 달콤한 것이지만 그 진리를 사모하고 진리의 미각을 가진 자에게만 그러하다. 선은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각이 있는 자들에게만 좋은 것이다. 이 진리와 선의 핵심이 복음적 거룩함이고, 팔복의 사람이 팔복의 사람인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풍성함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며 복음의 빛을 비춰주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미워했고 지독하게 박해했다. 세상은 불결했고 그들은 거룩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세상을 사랑했고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박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경외의 또 다른 표현이다. 박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세상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그리스도인은 폭력을 당하고 욕을 받지만 박해함으로써 세상은 그들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Ⅳ. 결론
신자가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거기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연합의 신비가 있고 고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가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부활의 위대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아는 기쁨이 있다. 이 시대정신에 물든 우리 시대의 교회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던 주님이 지을 수 없도록 하나님의 가슴 속에 칼로 새겨주신 진리는 예수 닮은 사람들에게 핍박은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이기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위해 박해 받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위로와 함께하심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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