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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받는 3대 자세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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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는 3대 자세 (창세기 9장 20-27절)


1. 절제하는 자세

 홍수 후에 노아가 농사를 시작해 포도나무를 심은 후 거기서 얻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다(20-21절). 그 모습은 당대의 의인 모습이 아니다. 그가 홍수 후에 갑자기 타락했는가? 아니다. 사람의 모습이 원래 그렇다. 노아도 상대적 의미에서 의인일 뿐 역시 죄인이다. 의인이란 ‘행위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이다. 노아가 술을 먹은 것이 죄인가? 죄라는 주장도 있고 죄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술을 먹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취하도록 먹으면 죄라는 주장도 있다.

 엄밀히 말해 포도주를 먹는 것이 꼭 죄는 아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포도주의 유익을 말한다. 사사기 9장 13절에는 포도주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했고 시편 104편 15절에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주셨다고 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고(딤전 5:23), 창세기 27장 28절에는 포도주가 축복의 상징으로 언급되었다.

 잠언 9장 5-6절에는 포도주가 생명과 명철을 준다고 했고 이사야 25장 6절에는 하나님이 마련한 연회에서 오래 저장한 맑은 포도주를 베푸신다고 했다. 예수님은 성찬식 때 포도주를 사용했고 마태복음 26장 29절에는 장래에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가 주님과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신다는 말씀이 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이 첫 기적으로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고 예수님의 별명이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마 11:19)’이었던 것을 보면 실제로 예수님도 포도주를 즐기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약시대에는 하라는 율법 365개와 하지 말라는 율법 248개를 합해 총 613개의 율법이 있었다. 그 수많은 율법 중 술을 정죄하는 율법은 하나도 없었다. 술 취해 싸우고 욕하고 폭행하고 큰소리치고 주정부리는 2차 죄가 없다면 술 먹는 것 자체를 무조건 정죄하는 것은 성경과 주님이 인정하지 않은 속박의 멍에를 지우는 것이 된다. 율법이 금하는 돼지고기도 먹는 데 율법이 금하지도 않는 음주를 무조건 정죄할 필요는 없다.

 다만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하면서 죄와 허물과 병에 노출되기 쉽기에 술은 삼가는 것이 좋다. 또한 술을 안 좋게 보는 사회 인식에서 술을 먹으면 자기도 거리낌이 있고 또한 믿음이 약한 형제가 성도의 술 먹는 모습을 보고 실족할 수도 있기에 삼가는 것이 좋다.   자유를 다 쓰려고 하지 말고 남과 공동체를 위해 절제하라. 어떤 행동은 죄가 안 되니까 괜찮다는 차원에서 살지 말고 그 행동이 아름답고 복되고 유익한 행동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연약한 성도를 위해 사려 깊게 행동하라(고전 10:23-24).

2. 은혜를 아는 자세

 본문 22절에서 함은 아버지 노아의 수치스런 모습을 셈과 야벳에게 알렸다가 저주 받았다. 그 사실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 수군대지 말라는 도전이다. 모르는 남이 비판하고 수군대면 어쩔 수 없지만 가족과 교우와 친구와 동료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 대래서는 더욱 험담을 주의하라. 사람에게 최악의 행동은 배은망덕이다. 지옥에는 100% 배은망덕한 사람만 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불신하는 것은 사실상 가장 큰 배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사람의 은혜도 잊지 말라. 이상과 뜻과 목적이 달라서 자리와 위치를 옮겨도 잠깐이라도 그 자리와 위치를 제공해준 사람에게는 피해를 최대한 입히지 말라. 작은 은혜를 받아도 그것을 배은망덕으로 갚지 말라. 함이 홍수에서 살아난 것은 아버지 노아 때문이었다. 그처럼 자신에게 두 번 생명을 준 인생 최대의 은인인 아버지에 대해 수군대는 것은 큰 죄다. 사람의 가치는 은혜를 알 때 높아진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는 없다. 그때 실망하지 말라.

 하나님도 어떤 뜻이 있어서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금방 원망하고 불평하면 큰 불충과 배은망덕으로서 함처럼 저주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의 은혜를 오래 기억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도리다. 저주는 인간의 기본 도리를 못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징벌적인 성격이 크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나 사역자가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큰 불충이고 배은망덕이다.

 요새는 선교헌금이 많이 줄었다. 옛날에는 선교사의 감동적인 선교 보고를 듣고 눈물 흘리며 선교헌금을 보냈는데 다른 경로로 그 선교사에 관한 부정적인 얘기가 들리면서 선교사의 옥석을 가리는 일이 중요해졌다. 어렵게 모아 보낸 소중한 선교헌금이 잘 쓰여서 어려운 선교지에서 신실하게 열심히 사역하는 선교사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제는 한 거짓 선교사가 저희 선교연맹을 사칭해서 A 나라에서 국제학교를 세운다는 거짓말로 많은 성도의 돈을 떼먹은 얘기를 들었다. 그런 모습이 은혜를 배신하는 함의 모습이다.

 결국 함에 대해 노아를 저주를 선포했다. 그것을 보고 노아가 지나치다고 하지 않는다. 갓난아이를 키울 때 부모가 똥오줌 다 받아내며 큰 사랑을 펼쳤는데 작은 불평거리로 그런 사랑과 은혜를 부정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다. 나의 생명 유지와 영적 성장에는 누군가의 세심한 수고와 눈물과 기도의 배경이 있었다.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라. 작은 은혜도 오래 기억하며 감사하고 더 나아가 은혜를 갚으려고 해야 복된 미래가 펼쳐진다.

3. 덮어주는 자세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 함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았다(24절). 누가 함의 행위를 알려주었는가? 셈과 야벳이 고자질하지 않고 어떻게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험담은 험담 대상의 귀에 들어갈 때가 많다. 때로는 진의가 왜곡된 채 들어간다. 그래서 작은 험담도 주의하고 교회에서는 더 주의하라. 교회에서는 억지로 이간질하고 험담해서가 아니라 “기도해주세요. 기도해줄게요.”라는 식으로 험담이 전파될 때도 많기 때문이다.

 교회생활을 잘하려면 입술을 잘 지키라. 예루살렘 교회 초대 감독으로 교회의 생리를 잘 알았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특히 강조한 말씀이 입술을 지키라는 말씀이었다. 함의 험담을 듣고 노아는 인간의 기본 도리를 못하는 함에 대해 저주를 선포했다(25절). 그때 하나님은 “노아야! 네 말이 너무 심하구나.”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말대로 되게 하셨다. 배은망덕과 수군댐은 큰 잘못이라는 암시다.

 함과 달리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덮어주었다(23절). 남의 사생활적인 수치와 허물을 보면 너무 파헤치려고 하지 말고 가급적이면 그냥 돌아서라. 남의 개인 차원의 허물이 드러났을 때 파헤쳐 알리기보다는 안타깝게 여기며 먼저 덮어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을 낮추고 부끄럽게 하면 내가 반사이익을 받아 올라가기보다는 대개 나도 부끄럽게 된다. 영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남의 허물이 보이면 보지 않으려고 뒤로 돌아서고 남의 허물이 들리면 귀를 막고 더 나아가 사탄의 정죄로 “너는 안 돼! 너는 가망이 없어.”라고 들려오는 내적인 음성도 귀담아 듣지 말라. 사탄의 진입로를 잘 막아야 영혼을 지킬 수 있다. 언뜻 보면 자기가 본 사실을 그대로 말한 함에게 큰 잘못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게 다 드러내어 말하고 따지면서 살면 안 된다. 만약 하나님이 내 죄를 다 드러내고 따지면 아무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

 축복 유무는 대개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함처럼 쓰느냐, 셈과 야벳처럼 쓰느냐가 관건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조금이라도 참을 때 결코 손해가 없다. 입술을 잘 지키고 입술이 바른 사람을 가까이하라. 욕하는 친구를 가까이하면 욕을 배우기 쉽다. 사람은 험담하면서 쾌락을 느낄 때도 많기에 그 험담에 취해 입이 험한 사람과 계속 같이 어울리면 자기도 모르게 입이 험해진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을 사귀되 특히 그 사람의 말을 보고 잘 사귀라.

 한 연립주택의 윗집과 아랫집에서 앵무새를 키웠다. 윗집 주인은 말이 고와서 앵무새도 말이 고왔고 아랫집 주인은 말이 험해서 앵무새도 말이 험했다. 어느 날 윗집 주인은 아랫집 앵무새가 너무 말이 험한 것을 보고 좋은 말을 배우라고 아랫집 주인에게 며칠간 자기 앵무새를 빌려주었다. 며칠 후 윗집 주인은 아랫집 앵무새가 변했겠지 생각하고 아랫집으로 앵무새를 찾으러 가자 자기 앵무새가 옆 앵무새에게 말했다. “야! 주인 새끼 온다.” 욕을 가르치려고 보냈다가 욕을 배운 것이다.

 욕은 안 가르쳐도 잘 배운다.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나쁜 말 쓰는 사람은 힘써 피하라. 입술을 지키려면 귀부터 잘 지키라. 지금도 사탄은 끊임없이 공동체와 영혼을 파괴하려고 좋은 것은 감추고 나쁜 것은 키우고 허물을 드러낸다. 그 작업에 미혹되지 말라. 교회생활을 많이 한 장로나 권사는 나쁜 말이 들리면 즉시 귀를 닫고 그 자리를 피한다. 그 불행한 결말을 많이 겪어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간절히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한다. 인생은 선택이다. 축복도 선택이다. 선택할 때 함의 길이 아닌 셈과 야벳의 길을 선택하라.

<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라 >

 노아가 함에게 어떤 저주를 내리는가? 본문 25절을 보라.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이 저주를 보면 조금 이상하다. 왜 함을 저주하면서 함의 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하는가? 그것이 사실상 더 큰 고통과 저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통보다 자녀의 고통이 부모에게는 훨씬 큰 아픔을 준다. 자기 잘못으로 자녀가 벌을 받는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노아의 저주와 관련해서 셈의 후손인 황인은 영적인 축복을 받아 모든 종교가 동양에서 생겨났고 야벳의 후손인 백인은 번성의 축복을 받아 선진국이 되었고 함의 후손인 흑인은 저주받아 못산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창세기 10장에 있는 세 아들의 계보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은 과거에 백인이 “가나안은 형제의 종이 된다.”는 구절을 내세워 흑인을 노예로 삼는 것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꾸며낸 주장이란 것이 정설이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함의 후손이 은혜의 길에서 멀어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어떤 저주나 저주의 기운도 당대에 단번에 끊을 수 있다. 그것이 복음의 힘이다. 믿음만 진실하면 ‘가계에 흐르는 저주’란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의 죄로 인해 자녀에게 저주스런 환경이 일시적으로 펼쳐질 수는 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은혜를 알고 힘써 갚음으로 불행한 가문의 역사를 내 대에서 온전히 깨뜨리라. 사람의 기본 도리를 잘하는 것은 자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부모의 핵심적인 일이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면 큰 은혜를 잊는 배은망덕으로 불행한 가문의 시조가 되지 말고 작은 은혜도 크게 감사하면서 축복받는 가문의 시조가 되라. 자녀를 교육할 때도 은혜를 알게 하는 교육을 통해 은혜를 아는 삶이 체질화되게 하라.

 아이가 나쁜 성적표를 받으면 어떤 부모는 말한다. “이 자식아! 그것도 성적이야?” 그러면 낙심이 되어 의욕을 더 잃을 수 있다. 그런 교육방법은 자녀의 성적을 혹시 올려도 은혜를 모르는 각박한 인생으로 만들어 더 큰 해를 끼친다. 반면에 그때 어떤 부모는 말한다. “얘야!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 잘하면 된다. 열심히 하면 미래는 네 것이야.” 그리고 그날 외식을 시켜주고 그때부터 자녀를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자녀에게 더 세심한 사랑을 펼친다. 그런 부모의 은혜를 느끼고 배우며 자란 자녀는 은혜를 아는 복된 인생이 된다.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자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침을 깨닫고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긍정적인 말을 하고 비평가의 입술이 아닌 목자의 입술을 가지라. 물론 말을 전혀 안 할 수도 없고 완벽히 할 수도 없기에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의 바탕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의 바탕에서는 남의 뒤에서 하는 얘기가 혹시 있어도 험담과 비판으로 흐르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다. 늘 남의 허물을 덮어주려는 기본 바탕을 가지고 입술을 절제함으로 셈과 야벳처럼 축복받는 가문의 시조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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