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정예배 365-5월 5일] 어린이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


201805050000_23110923944406_1.jpg
찬송 : ‘예수께서 오실 때에’ 564장(통 29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마가복음 10장 13∼16절

말씀 :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날이 생긴 것은 소파 방정환 선생 덕분입니다. 그는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6년에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며 어린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꾸짖다’는 말은 그 사람의 존재가치나 인격(명예)을 무시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린이들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4절)”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이런 자들)는 누구입니까. 첫째는 어린아이들이요, 둘째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아무도 거부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곁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나주셨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질병유무 사상·이념을 막론하고 예수님은 다 받아주셨습니다. 때로는 다른 이들이 멀리하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셨습니다. 그들의 출신이나 생활양식, 처지는 매우 다양했습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5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아야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은 긍정적인 뜻으로 쓰였습니다.

영국의 계관 시인 워즈워스는 뛰는 가슴으로 무지개를 바라보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위대한 자는 하루 한 번 이상 어린아이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꿈꾸던 어린 시절, 꿈 많던 어린 시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속적인 욕망만 수북 쌓인 모습. 오늘날 어른의 자화상은 아닐는지요. 주어지는 것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신에 무덤덤하게 살아가다 보니 오히려 애만도 못한 어른이 된 것이 아닐는지요.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온 어린이들을 안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안수는 현재의 격려요, 축복은 미래를 열어주는 문입니다. 이 세상에 안수와 축복을 필요로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벽을 쌓습니다. 비록 그 이유가 타당하더라도 이런 태도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존경받는 랍비에게 자녀를 데려가 기도를 받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도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마 19:13)” 그들은 자기 자녀의 영적인 삶을 이렇게 존중했습니다.

기도 : 어린이에게 안수하시며 축복하신 예수님,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어린이입니다. 오늘만이라도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를 가슴에 품고 싶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현진 목사(서울 수도교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