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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쓰라 (롬 12:13, 히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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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현재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 누리고 있는 행복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래의 행복만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말씀 듣는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운 일이 있습니다. 기도하세요.
한 숨 쉴 일이 있습니다. 찬송하세요.
오늘 겪는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훗날 추억이 될 것입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제목도 훗날 간증거리가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감사하고, 오늘의 행복을 선언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인사합니다. “저는 오늘이 가장 행복합니다.”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대접하기를 힘쓰라

생각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흐뭇한 대접을 받으면/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대접’(待接)은 ‘예를 갖추어 대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과 분위기 좋은 인테리어도 좋지만
자신을 귀족처럼 대접해주는 최고의 서비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분이 스테이크를 사준다고 해서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스테이크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종업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이것은 무엇이고 어떤 고기를 주느냐고 …)
그랬더니 쟁반에 여러 가지 고기를 담아오더니 메뉴판에 설명되어 있는 고기가 이것이고, 저건 어떻고 …  자세히 소개해 주는 그 서비스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은 사람대접 받지 못할 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도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고 했습니다.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힘써야 할 많은 것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 하나가 “나누고 대접하는 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비롯한 많은 초대교회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대접하는 것에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정확한 기록자를 알 수는 없지만 바울로 추측되는 

히브리서 13장 1~2절에도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2) 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창세기 19장에 보면 롯이 그랬습니다. 
(의도가 있어서 나그네를 대접한 것이 아니라 대접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런 놀라운 일을 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돕습니다. 
- 나 정도면 남을 도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특권의식에서 …
- 착한 일을 하면 상급이 있을 것이라는 보상심리에서 …
-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겠다는 동정심에서 …
- 이 일을 통해 ‘나도 무언가를 했다’는 자기 성취감 때문에 …
어려운 사람을 돕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늘 ~ 습관처럼 ~ 
베풀고/나누고/대접하기를 즐겨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던 아브라함과 롯 같은 
은혜의 기회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되도록 노력하시고 그렇게 살만한 넉넉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쓸 것을 공급하라

대접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날씨가 건조해지면 연세 드신 분들은 몸이 가려워집니다. 이상하게 등이 가려우면 꼭 손이 안 닿는 부분이 더 가렵습니다. 
사용할 도구가 없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이 내 등을 긁어주는 것입니다. 
그때 긁어주는 사람은 가려운 사람의 가려운 곳을 찾아 시원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지 않고 가렵지 않은 엉뚱한 곳을 
열정을 다해 피나게 긁어준다면 … 그 도움의 수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알고 도와주고 돌봐주어야 도움을 받는 사람이 감사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Share with God's people who are in need. Practice hospitality.” - NIV
상대방이 필요한 것(쓸 것)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 살펴보고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누라고 / 도우라고 하면 물질에만 국한 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물질 뿐만이 아닙니다. 
물질이 필요한 사람은 물질로 돕지만 …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보살핌으로 돕고 …
격려가 필요한 사람에게 칭찬과 용기를 주며 …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같이 울어주고 …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필요를 따라 돕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는 매주 화요일 오후에 중보기도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누구인지 모르면서 … 교역자들이 적어 드린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놓고 이름 불러 가며 기도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 

이런 영적인 은혜를 나누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어머니가 저를 위해 기도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필요를 채워주고 베푸는 가장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기도해줬다’,‘할머니가 기도해 줬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아버지가 기도해줬다.’,‘할아버지가 기도해줬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에 대해서 남자들은 깊이 생각해야 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에게 가장으로서의 영적권위를 주셨습니다. 
성경에 아버지가 자녀들을 위해 
축복 기도(복을 비는 기도) 해주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7장에 보면,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창세기 48, 49장에 보면, 
야곱은 12아들과 요셉의 아들 손자 므낫세, 에브라임을 위해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가장 중요하게 우선으로 했던 것이 자녀를 위한 축복기도였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건강이 나빠지면 흩어진 자녀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냥 보고 끝나지 마시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손자들이 왔다가 가면 아이들을 붙잡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자녀들에게 전화가 오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도 … 할아버지도 … 자녀를 위해, 손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평생 아버지의 기도를 받고 자란 자녀들은/기도하며 키운 자녀는 …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아버지의 기도 때문에(할아버지의 기도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있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남자들, “아멘.”


대접하고 나눠야 …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울 때,‘베푼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고 나눠야 합니다. 

‘베푼다’와 ‘나눈다’는 말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베푼다’는 의미는, 내가 우월감을 갖고 도와주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은혜를 베푼다’,‘(임금이) 선정을 베푼다’라고 말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할 때는 ‘나눈다’, ‘대접한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나누다’라는 말은, 몫을 분배하거나,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정을 나눈다’,‘인사를 나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내 손에 내 집에 있지만 나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잠시 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내가 벌어서 내가 수고하여 얻은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요 잠시 내가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에게 남는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모자란 사람들에게/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누가 이웃인가? 

어떤 사람에게 나누어야 할까요? 누가복음 10장에,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25) 
그러자 예수님은
“ …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 고 되물으셨습니다. 

율법교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 …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 ” (눅 10:28)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교사가 ‘내 이웃이 누굽니까?’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들과 같은 유대인들만 이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누가 이웃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험한 길에서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습니다. 
옷도 빼앗기고 거의 죽게 될 정도 맞은 채 버려졌습니다. 
그 때 한 제사장이 그곳을 지나가다 강도당한 사람을 보고 피해 지나갔습니다. 
그 뒤에 지나간 레위인도 강도당한 사람을 보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당한 사람을 보고
자기 돈을 들여가며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침략자들과 잡혼을 했다 하여 많은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돕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도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겼지
그 사람이 유대인이냐 아니냐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웃인가를 물었던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제사장/레위인/사마리아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10:37)

보통 사람들은 사랑을 나눌 때, 대상을 따질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한 번이라고 도움을 줬던 사람이냐’,
아니면 ‘내가 도와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하며 나눔의 대상을 가릅니다. 
예수님은 도와줘야 할 대상이 누구이든지 …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 어떤 관계이든지 …
설령 자신과 원수이거나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했던 사람이라도 …
사랑을 나누고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나눔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던 길을 돌이키거나 목적지를 포기했던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름과 포도주를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에 부어 주었습니다.
가던 길에 잠시 주막에 들려 주인에게 돌보아 주라고 부탁하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도운 것도 아닙니다. 
당시 노동자의 이틀 품삯인 두 데나리온을 내 놓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마리아인은 특별히 대단한 사람만이 될 수 있는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나눔은 자신의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평범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선한 사마리아인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월 2~3만원으로 아프리카와 남미의 어린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현재 430명)
2~3만원이면 4인 가족이 밖에 나가 식사하기도 부족한 금액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게 되는 어린이들은 삶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내는 그 돈이 어린이들에게 모두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내는 절차가 아주 복잡합니다.  그래서 비용이 많이 들고 아이들에게는 몇 푼 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연결된 아이는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6.25 직후에 외국 선교사 한 사람과 연결되거나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과 연결되면 
사는 길이 배우는 길이 열렸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크지 않지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삶의 길, 삶의 방법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 돌보아

우리가 나누는 일에 / 손 대접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5장 7~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신 15:7~8) 고 했습니다. 
[꾸어주라 = 빌려주라(쉬운성경)]

하나님께서는 ‘반드시’꼭 도움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힘써 열정적으로 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은 우리가 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4~5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4~5)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살면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돈이나 물건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세다면 연약한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남다른 재능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과 나누세요.
특별한 기술이 있습니까?  돈이 없어서 그 기술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우십시오.

특별한 지혜가 있습니까? 능력이 있습니까? 쓰세요. 
다른 사람보다 노래를 잘합니까? 찬양하세요.
다른 사람보다 더 잘 가르치십니까? 교사로 봉사하세요.
여러분이 잘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들에게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2월말(22일) 「선교의 밤」예배시간에 
김명주 성도가 「사명」이라는 곡에 맞추어 아름다운 무용을 했습니다.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는 것을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런 재능도 묵히면 썩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예쁠 줄 알아요? 자꾸 나누어야 합니다. 
가르치고/보여주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갚아 주시리라

물론 ‘나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누는 자에게 갚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잠언 19장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25장 40절에, 
“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마 25:40) 고 했습니다. 

헐벗은 이웃에게 옷을 입히고 병든 이를 돌보고 갇힌 이를 찾아보는 것은 
주님께 하는 일이며 구원 받은 자의 의무입니다.(마25:35~40)

그리고 디모데전서 3장 2절에 보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사랑으로 나누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에게도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길 때 ‘대접을 잘하는’사람인가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사, 장로로 추천 되는 분들과 면담할 때 
제가 꼭 물어보는 말이 있습니다. ‘살면서 제게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사줄 마음이 없었습니까?’
그러면 ‘목사님이 바쁘실 것 같아서 …’라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아무리 바빠도 하루 밥 세끼는 먹고 삽니다.
대접하고 살라는 뜻입니다. 베풀고 살고, 나누고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만난 적도 없고, 우리를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도와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이고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나에게 원수 짓을 하는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을 돕더라도
예수 이름으로 한 일이라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것입니다.

‘대접하라, 나누라’고 하면 나보다 못한 사람만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운 사람에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손을 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창세기 24:31 - 라반은 아브라함의 종을 대접
- 여호수아 2:1~16 -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군 대접
- 열왕기상 17:10 - 사르밧의 과부는 엘리사에게 대접
- 사도행전 16:14~15 - 루디아는 바울과 실라에게 대접
- 마태복음 10:40~42
40: 복음을 전하는 자를 영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했고
42: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 
상을 잃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삶에서 대접하고 살고, 나누며 살고, 베풀며 살만한 
넉넉한 은총이 여러분의 가정에, 일터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18세기 영국을 변화시켰던 존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벌 수 있을 만큼 벌어라!> 했습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이익을 남기세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유효기간이 지났는데 안지났다고 하거나
썩었는데 안썩었다고 하고, 망가졌는데 안망가졌다고 하면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이익을 많이 남기십시오.
어떤 물건은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몇 천 만원, 몇 억에 팔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고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물건을 만들어서 팔고 열심히 사십시오.
<둘째, 할 수 있을 만큼 저축하라!> 했습니다.
적금도 들고, 투자도 하세요.
<셋째, 줄 수 있을 만큼 주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이웃과 넉넉하게 나누고,
자신도 윤택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인색함으나 억지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기 위해, 자신도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자기만 먹자고,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짐승은 자기 먹고 자기 새끼 먹일 것 외에는 다른 이유로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기술도 배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가 평안하기 위해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하고, 일터가 평안해야 나누고 베풀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을 위해 기도하며 그런 삶을 위해 노력하는 
베풀고 나누고 섬기고 대접하는 일에 앞장서는 
행복의 주인공, 그런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기도하며 노력하고 살고 벌어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며
이웃에게 넉넉히 베풀며 자신도 윤택한 삶을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하는 행복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렇게나 살다 가는 불쌍한 인생,
짐승처럼 자기만 먹고 자식들을 위해서만 사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 세상에 살며 땀 흘려 애써 모은 것 구별하여 드립니다.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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