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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있는 교회 (행 1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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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힘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불의의 힘이 있습니다.
1절에 보면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상 정권으로부터 나온 최초의 핍박입니다. 교회를 향한 핍박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결국 헤롯의 칼에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바로 세베대의 아들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가장 가까운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순교 사건에 관해서는 야고보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그를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절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의의 힘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에는 적어도 세 가지 점을 생각해 본 후에 가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1) 이것이 법에 저촉되는 일인가 생각해 보아야 하고,(2) 이것이 양심이 가책되는 일이 아닌가를 물어 보아야 하고,(3) 이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헤롯은 이러한 것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자기 자신의 기분대로 마구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불의의 힘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마치 미친 사람의 손에 흉기가 들려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도 헤롯의 후예들이 불의 흉기를 멋대로 휘둘러 선량한 사람들이 눈물과 피를 흘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과거 히틀러는 집권 당시에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했고, 스탈린은 생전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3,000만 명의 생명을 희생시켰다고 합니다. 정의가 힘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힘이 정의라고 믿는 자들은 어떤 것도 가리지 아니하고 불의를 자행하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가공할 세력입니다.

2. 신앙의 힘입니다.
야고보의 처형 다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군중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헤롯은 베드로를 또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 날이 아침 유월절이 시작되는 날인지라 절기가 끝나기를 기다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절기 중에는 사람을 처형하지 않는 것이 당시의 규례였습니다.
절기가 다 끝나고 드디어 처형 전날 밤이었습니다. 범인 같으면 그날 밤잠이 올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천사가 그의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할 정도 였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사형 전날 밤이면 부모 걱정, 처자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더욱이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그 밤을 뜬눈으로 새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형 전날 밤,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신앙의 힘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그 자신의 생사와 가족의 생계와 일체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지극히 담대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형 전날 밤에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생사에 대한 걱정, 가족에 대한 염려, 세상에 대한 불안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린 사람에게는 평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127:2절에 보면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의 힘은 이렇게 막강한 것입니다.

첫째로, 신앙의 힘은 생에 대한 모든 염려를 물리칩니다.
마10:29절에 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짐승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하물며 인간의 생명이 사람의 손이나 불의 힘에 의해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사 화복이 다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모든 염려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은 근심 많은 머리에 부드러운 베개가 된다고 스펄죤 목사님은 간증하였습니다.

둘째로, 믿음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물리칩니다.
죽음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안과 공포의 상징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죽음은 생의 종지부가 아니라 영원히 빛나는 천국의 입문이기 때문에 무섭고 불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롭고 복된 일입니다.
시116:15절에 보면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복된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권력이나 칼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비행기를 타든지, 배를 타든지, 자동차를 타든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를 불러 가신다면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때가 되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에스더를 비롯하여 믿음의 영웅들은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념으로 그들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셋째로, 적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권력이란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권력자도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것이므로 두려워할 바가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느브갓네살왕 앞에서도 소신껏 행동하였으며, 풀무 불과 사자 굴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행4:19-20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지들은 적들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41:11절에는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기도의 힘입니다.
4-12절에서는 베드로가 옥에 갇혀 있는 중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사 기적적으로 옥에서 풀려난 사건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12제자 가운데 수제자 였으므로 특수 범으로 여겨서 군인을 넷씩 네 패로 하여 철통 같이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제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베드로 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오히려 베드로를 위해서 열심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을 써서라도 권력자들을 찾아다니며 구명 운동을 벌려야지 꿇어 엎드려 기도나 해 가지고 무슨 해결이 되겠느냐고 조소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설사 돈이 있다 할지라도 그런 구차한 짓은 해서도 안될 것이며, 생각조차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6절에 보면 헤롯이 옥에서 베드로를 끊어 내어 죽이려 하던 전날 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경비는 더욱 삼엄하였습니다. 쇠사슬에 꽁꽁 묶여 있는데 다가 군인들이 좌우에서 지키고 또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철통 같이 지키고 있으니 어떤 특공대를 보내어도 구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구출하기 위해서 하늘의 특공대를 파송하셨습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베드로 곁에 나타났는데 그곳에 광채가 가득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얼마나 편안하게 걱정 없이 잠들었는지 천사가 옆구리를 치는 바람에 깰 정도였습니다. ‘급히 일어나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일어날 때에 그를 묵었던 쇠사슬이 다 풀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8절에 보면 베드로는 천사의 명하는 대로 그저 순종하기만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저 걸어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일어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나가다가는 잡히던가 현장에서 사살 당하던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사의 말을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의심할 정도였지만 그는 끝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천사를 따라가는데 철문은 열리고, 파수꾼들은 허수아비와 같았고 정말 꿈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천사를 따라 거리에 이르렀을 때 천사는 떠나고 베드로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과 같았습니다. 사람이 너무도 뜻밖의 일을 당하면 꿈이나 환상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가 마가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집에 도착해 보니 많은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석방은 바로 성도들의 기도 응답의 역사였습니다.

13-17절에서는 기도하던 성도들이 기도 응답으로 베드로를 만나게 되는 감격스러운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두릴 때 ‘로데’라고 하는 계집아이가 베드로의 음성을 알아듣고 너무도 기뻐서 문을 미처 열지도 아니하고 달려들어가 베드로가 오셨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5절에 보면 웃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는 하였지만 막상 베드로가 돌아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믿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야! 너 미쳤니....’ ‘아니 지금 문 앞에 와 계십니다...참말입니다’ 그 아이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그렇다면 베드로를 지켜 주던 천사가 왔나 보다’라고 하면서 나가 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연약성입니다. 기도할 때는 믿음으로 기도하였는데 막상 응답을 받고서는 우연이겠지...하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기 쉬운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베드로가 계속 문을 두두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나가 보니 정말 베드로였습니다.
아마 그들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열심히 기도는 해 놓고 응답에 대해서는 믿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실로 기도하던 자신들도 믿지 못하리만큼 기도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구한 것 이상으로 주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는 과연 위력적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역사 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최대의 특권입니다.
그러기에 메리 여왕은 죤 낙스의 기도를 가리켜 일개 사단의 병력 보다 더 무섭다고 하며 떨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간한 지식을 가지고 섣불리 기도를 과소 평가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도는 승리를 위한 강장 강력한 교회의 무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얻고자 하는 힘은 어떤 힘입니까 헤롯의 불의의 힘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믿음과 기도의 힘입니까
아직도 어떤 이는 권력을 잡기 위하여 신앙을 버리는 자도 있고, 어떤 이는 금력을 얻기 위해서 양심을 팔아먹는 자도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은 30개에 팔려 스승을 배신했고, 데마는 세상을 따르기 위하여 바울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가롯 유다와 데마의 후예들은 권력 추구하기 위하여 교회를 등지고, 재력에 편승하기 위해서 의를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2:15-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주는 공통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순천 자는 흥하고, 역 천자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의의 힘이 제아무리 막강하다 하더라도, 또 세상의 권력이 한 때 위세를 떨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불의와 사악을 쳐부수고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공의인 것입니다.

하만과 모르드개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볼 수 있고, 다니엘과 그의 정적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부활 사건에서 그 결론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헤롯은 무법자의 대명사요, 포악 자의 대표자이며, 불의의 상징이요, 가공할 세력의 표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헤롯도 얼마 후 하나님의 치심을 받고 충 먹어 죽임을 당하므로 써 그가 박멸하려던 하나님의 교회와 주의 복음은 오히려 날로 더욱 흥왕하였습니다.

지금은 불의가 판을 친다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평안히 가는 것이 아니라 싸우며 갑니다. 그래서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권세와 싸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강력하게 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야말로 정말 힘있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야말로 믿음과 기도로 완전 무장하여 도전해 오는 사탄의 세력을 단번에 쳐 부시고 승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힘있는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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