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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이 필요합니다 (요 04: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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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필요합니다 (요 4:46-54)

1. 광복절을 맞이하며

일본의 식민지 체제로부터 해방된 지 59주년이 되었습니다. 요즘 정치권에서 과거사 청산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중에 친일파 정리 문제로 한동안 여야가 심각한 충돌까지 했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 함께 했던 두 분의 목사님 사이에 논쟁이 있었는데, 한 분은 북한에 대한 증오였고 한 분은 일본에 대한 증오였습니다. 북에 대한 증오를 표하신 분은 북에서 월남해오신 가족의 일원이었고, 일본에 대한 증오를 표하신 분은 일제 시대 공출을 실제로 경험하신 분이었습니다. 전자는 북에 구호를 한다는 것 자체를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이 한국 전쟁시에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시면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후자도 일본의 짓을 도저히 용서 할 수 없고 특히 친일파를 파헤쳐 그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지불케 해야 한다고 성토했습니다. 당시 친일파들이 더 극악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완장을 팔에 두르고는 집집마다 꼬쟁이를 들고 다니며 숨겨둔 곡식을 찾아다니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들 때문에 곡식을 다 빼앗기고 배고팠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운데서 듣던 제 마음에 서러움이 일어났었습니다. 그 누구를 탓하리요. 그 모든 것이 힘이 없던 시절의 우리들의 비극이었던 것을!
제가 터키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확인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왜 초대교회 시절 그렇게도 번성했던 소아시아 교회들이 지금은 다 없어져 버렸는가?’-그것은 초대 교회 이후 박해기에 없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콘스탄티노플은 동방 정교회의 수도였고 1453년 동로마가 멸망하기 전까지 그 곳에 기독교회들이 크게 번성했었습니다. 그런데 오스만 터키에게 동로마가 멸망당하고, 이슬람이 장악하면서 대부분의 교회가 무너졌고, 지난 5백 여년 동안 이슬람 천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을 ‘이슬람의 도시’란 뜻을 가진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렇듯 역사는 우리에게 정치적 군사적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 도시 도처에 붉은 성벽이 남아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로마 시대의 것으로 기독교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힘을 상실한 후 이젠 유물로 남아 있을 뿐인 것입니다.

러시아의 최대 도시인 쌍떼페트라부르그(Saint Peterburg, 성 베드로 시)도 10년 전에는 그 유명한 공산 혁명가 레닌의 이름을 붙인 ‘레닌그라드’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쌍떼페트라부르그가 공산 혁명이 일어나기 전 그 도시의 본래 이름이었습니다. 정치적 힘을 누가 가졌느냐에 따라 도시의 운명이 이렇게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광복절 59돌을 맞으면서 나라가 힘을 잃지 않도록, 아니 강한 힘을 갖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며 위하여 노력하도록 합시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안 창호선생은 울분을 터뜨리며 “민족개조론”을 역설했습니다. 그 분은 중국 상해에서 임시 정부를 세워 임시 정부 국무총리 역을 감당했던 정치가였지만, 그가 가장 힘을 쏟은 것은 미국에서 조직한 흥사단을 중심하여 “민족 개조 운동”이었습니다. 그의 국민 운동 4대 기본 정신은 곧 ‘務實’(진실과 성실을 이루는 것), ‘力行(행동을 일으키는 것)’, ‘忠義’(의로운 일에 충성을 바치는 것), ‘勇敢’(용감하게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智德體의 힘을 키우자”는 것으로 봅니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인권, 자유, 평등 등의 어떤 가치도 힘이 있어야 이룰 수 있고 지킬 수 있습니다. 힘을 가진 자를 성토하거나 원망하면서 ‘힘만 있으면 다냐?“고 하소연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힘이 없으면 주권도 잃고 국토도 잃고 디아스포라가 됩니다. 힘이 없으면 교회도 파괴되고 십자가도 부서지고 도시 이름도 바뀌고 맙니다. 지금 터키를 가면 성경의 지명을 따라 찾아가면 거의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에베소는 셀축으로, 서머나는 이즈미르, 사데는 살리힐리, 빌라델비아는 알라쉐일, 비시디아 안디옥은 알바치 등으로 도시 이름이 모두 바뀌어 있습니다.

역사는 힘을 가진 ‘이긴 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남을 다시 정복하고자 힘을 가지거나 키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힘은 가져야 합니다. 과거 땅만 컸지 정치적 경제적 힘이 없었던 중국이 이제 세계의 열강으로 급부상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역사 왜곡입니다. 역사를 자기 맘대로 바꾸어 서술하고 있습니다. 고구려를 자기들의 변방 속국이었다고, 곧 중국의 한 지방 정권이었다고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힘을 더욱 키워가야 합니다. 자칫하다간 다시 북으로 중국에게, 남으로는 일본에게 웃음거리가 되기 쉽상입니다.

2. 예수님도 때때로 능력(표적과 기사)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지난 번 까지 본 사마리아 성에서의 예수님 행적은 기적없이 이루어진 말씀의 복음화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갈릴리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다 죽어가던 병자를 고치시는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절)

쉽게 이해하려면 이렇습니다. ‘말로 안되니 힘으로 하겠다’는 뜻입니다. 갈릴리 지역의 정서가 말로 설득시키고 대화로 풀고 하는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못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무시당하거나 배척 당하시지 않고, 능력을 행하시어 그들에게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표적’(sign)이란 말은 ‘메시아임을 증거 하는 능력’이란 뜻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힘으로만 표적을 삼으신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최고의 표적은 곧 십자가의 죽으심일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말한 이사야서의 메시아인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죽으심도 부활의 능력으로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세상을 치료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저들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며 거짓으로 가득 찬 생활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의 환난으로 고통받으며 번민하는 상처 입은 불쌍한 영혼들을 고쳐야 합니다. 죄악으로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저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막아 대적하려는 무리들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우리들이 능력있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며 그 분의 이름을 높이는 힘있는 생활을 합시다. 승리의 체험을 가지고 간증자로 세상을 삽시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보고 ‘너희들의 힘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느냐?“고 질문하도록 삽시다.

힘있는 생활은 곧 감사와 기쁨의 생활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총을 충만히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세상에서 패배자처럼 삽니까? 주님의 능력이 지금도 믿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들을 통하여 나타나십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지금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게 합시다.

그런데 이런 역사는 기도 외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지금도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포도나무 가지처럼 나무에 붙어있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즉 성도가 예수님 안에 거하며 예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자로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안에 서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할 모든 능력은 오직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참 능력자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3.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53절)

결국 예수님의 능력 행하심은 병자만 치유된 것이 아니라 그 온 집안이 다 믿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병자의 아버지는 당시 갈릴리 동부 지역을 분활 통치하던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인 헤롯 안디바의 신하였습니다. 이 신하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고 간접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서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일컬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맛(힘, 영향력)을 잃으면 안되고, 빛은 등경 위(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교회는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는 섬기는 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겸손과 섬김은 나약함이나 허술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겸손과 섬김은 힘이 있을 때,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할 때 나오는 가능한 평가입니다. 우리 더욱 열심히 전도합시다, 더욱 열심히 봉사합시다. 그리고 각자 말씀에 순종하여 덕 있는 아름다운 삶을 삽시다. 이런 것이 우리의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이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는 역사 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범어교회는 대구 도성을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았다는 거룩한 청지기 의식이 필요합니다. 외지로부터 들어오는 성도들이 대구 교계를 잠자는 교회들 혹은 죽은 교회들로까지 평가하고 있습니다. 까닭은 아무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함의 결과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 교회가 죽어 있다면 결국 그 사회와 역사도 죽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일어납시다. 힘을 얻읍시다. 능력있게 삽시다. 대구에서 힘있는 교회로 부흥합시다. 대형교회가 아니라 힘있는 교회, 그래서 세상이 무서워하는 교회가 됩시다. 세상이 교회를 따라 올 수 있도록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됩시다. 그러면 우리민족이 다시는 주권을 빼앗겨 고통 당하는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장영일 목사


 (2005-08-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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