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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한한 능력 (행 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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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능력 (행 9:11~20)

바울이 에베소에서 말씀을 가르칠 때 비방하는 자도 있었다. 그래도 두란노 서원에서 두 해 동안 가르칠 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 바울은 정말 말씀의 사도였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바울이 이적의 사도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바울의 손을 통해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다. 즉 특별한 기적을 나타내게 하셨다. 이 희한한 능력을 가리켜 개역개정판은 놀라운 능력이라 했고 새 번역에서는 비상한 기적들이라 번역하였다. 영어로 Extra-ordinary Miracle이다. 즉,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떠나가는 치료의 역사였다. 정말 특별한 능력이었다.

우리는 희한한 능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하나님의 능력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첫째, 희한한 능에 대해 시험해 보게 하지 말라. (행19:13上)

행19:13上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바울이 행한 희한한 능으로 인해 악귀가 나간 것을 보게 된 유대인 마술사는 자기 자신도 귀신을 축사하기 위해 시험을 해 본다. 주 예수의 이름을 믿지도 않고 그 이름을 힘입어 죄에서 구원 받지도 못했지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본다. 이런 행위를 백마술이라 부른다. 

마술의 형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흑마술이고 또 하나는 백마술이다. 여기서 흑마술은 악령을 힘입어 악령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다. 그런데 이에 반하여 백마술은 악령을 사용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다. 

오늘날 영적 상황을 보면 귀신 들린 자를 고친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까지 마술의 두 가지 형태인 흑마술과 백마술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마술사들을 경계해야 하고 교회 안에도 이런 영적 무리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환자를 두고 시험적으로 병 낫기를 위해 예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을 예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둘째, 희한한 능을 흉내내지 말라. (행19:13下)

행19:13下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와 빙자하여 흉내내어 전파하는 예수는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그 전파하는 자의 마음 상태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한 사람은 믿는 자로서의 외침이고 다른 한 사람은 흉내내는 자로서의 외침이다. 믿음으로 고백되는 외침 속에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흉내내는 외침은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일 뿐이다.

이적은 그렇게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시험해도 안되지만 이적을 흉내내는 방법으로는 아무 것도 경험할 수 없다.


셋째, 희한한 능은 내가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행19:14)

행19: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마술하는 유대인들을 따라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축사 행위를 흉내내었다. 결국 악귀가 나가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행19:15)하며 공격하고 있다.

귀신은 예수를 안다. 복음서 거라사 귀신도 예수를 알았다. 바울도 안다. 귀신 들린 아주머니가 행16:17에서 바울을 알고 이 사람을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떠들어댄다. 귀신은 정작 예수와 바울은 알지만 그 귀신을 쫓아내려는 자는 예수를 모른다. 예수를 모르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시험하고 흉내내어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니 귀신이 비웃는 것이다. 믿지도 않으면서 이적을 행하려 한다면 망신을 당한다.

행19: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그를 억제하여 이기니...”

마술사와 스게와의 아들들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다. 

학창 시절 귀신 들린 아줌마를 고치려고 기도회를 갖는데 후배(우순태란 학생)가 동참하였다. “형, 나도 같이 해볼께요.” 그래서 함께 기도하고 축사하는데 귀신 들린 아줌마가 외쳤다.

“너는 누구냐? 너는 세례를 안 받지 않았느냐? 너는 누구냐?”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덤벼드는데 후배가 도망을 갔다. 예수의 영, 참 영을 모신 자가 되어야 악령도 두려워 떤다. 진리의 영이 없는 자에겐 악령이 뛰어올라 덤벼드는 망신을 당한다. 축사의 이적을 일으키기 원한다면 예수를 믿는 예수의 사람이 되라. 성령의 사람과 불신자의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다. 병을 고치고 축사가 이루어지는 이적은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기적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희한한 능을 의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고치시고 역사하시는 분임을 인정하자.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사용하여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신뢰하고 받아들이자.

① 하나님은 손을 얹고 기도할 때 치유하신다. (막16:18)
②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치유하신다. (약5:14~16)
③ 하나님은 그림자를 통해서도 치유하신다. (행5:15)
④ 수건을 병든 사람에게 얹을 때 나음을 주시는 것도 성경 속 치유의 원리이다.

접촉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전이된다. 엘리사의 뼈를 보라. 왕하14:20~21에서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다. 그 이듬해 모압 작당이 지경을 범하였을 때 그 사람을 엘리사 묘실에 들어 던진다. 그때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심하여 일어선다. 엘리야의 권능의 영감이 이어진 엘리사의 뼈에는 그 기름부음의 권능이 전이되어 있었다. 그 권능의 기름부음이 접촉을 통해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의 손수건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 손수건이 병자의 몸에 던져질 때 권능의 전이는 일어나는 것이다.

케네스 헤긴 목사의 집회에 어느 여자가 찾아왔다. 그 여자는 39살 난 자기 딸에 관해 말하였다. 딸에게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검사 중에 당뇨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의식 불명에 들어갔을 때 의사들은 그녀의 당뇨를 조절하려고 애쓰고 마침내 세 의사는 그녀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때 이 어머니는 헤긴 목사님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손을 이 손수건에 얹어주시겠습니까?”

그때 헤긴 목사는 손을 얹고 기도하였고 그 어머니는 병원으로 달려가서 딸의 가슴 위에 그 손수건을 올려놓았다. 그때 손수건이 닿는 순간 그녀는 의식을 회복하였다. 그녀는 한 번에 병고침도 받았고 거듭났고 성령 충만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간호원들이 흥분하여 의사를 불렀고 의사는 말하기를 “그 여자가 의식을 회복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녀를 조용히 시켜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잠잠케 하는 주사를 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방언을 계속하면서 “나는 병이 나았다. 나는 병이 나았다.”고 거듭 소리쳤다. 

다음 날 그녀는 검사를 받은 결과 당뇨 증상도 사라졌고 종양도 사라져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정말 희한한 능력은 사도행전만이 아니고 오늘의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다. 

신디 레이콥스의 「초자연적 삶을 살라」는 책을 보면 그의 입고 있던 옷을 아픈 자에게 입게 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쓰러지고 아픈 것이 치유되는 간증이 소개된다. 마치 엘리야의 겉옷을 붙잡고 요단 강을 칠 때 엘리사의 생애 속에 기적이 나타난 것처럼 희한한 능은 우리의 믿음의 세계 속에서 일어난다. 이 특별한 기적을 부인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믿을 때 이적이 나타나고 믿음을 가진 이는 희한한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희한한 능을 경험한 에베소의 유대인과 헬라인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1. 영적인 실제를 알게 되었다. (행19:17)

① 참 능력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②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③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다.

2. 사람들이 믿고 회개하게 되었다. (행19:18)

믿은 사람들이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였다.

3. 마술로 사는 삶을 청산하게 되었다. (행19:19)
마술사들이 책을 모아다가 사람들 앞에서 불살랐다. 은 오만이나 되는 책을 불태웠다.

4. 주의 말씀이 힘이 있게 되었다. (행19:20)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될 것이니 복음이 에베소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희한한 능이 행하여지는 교회는 주의 말씀이 힘이 있다. 회개의 역사와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다 내버리게 된다. 희한한 능이 행하여지는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고 주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된다.

주님의 능력은 심히 크고 그 나타나심이 다양하다. 그 중에도 손수건만 얹어도 나음을 입는 희한한 능력이 내 가정에서, 내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기뻐하자.

스미스 위글스워스 집회에 참석한 한 여인이 1년 후에 암이 발견되었다. 그는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하나님의성회 본부에 연락을 취하여 위글스워스 목사의 주소를 알아내어 편지를 썼다. 그에게 손수건을 보내면서 손수건에 안수해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안수한 손수건이 배달되었는데 그 손수건을 가지고 가슴에 얹었다. 그리고 지시 사항을 읽었다. 

“손수건을 올려놓은 후 모두 그녀의 치유하심을 주장하시오. 그리고 하나님은 찬양하시오.”

그리하여 이 여인은 대답하였다. 

“손수건에서 무엇인가 내게로 흘러들어왔어 그러더니 내 몸을 타고 발끝으로 빠져 나갔어.” 

그러더니 모든 통증과 증상이 사라졌다.

오늘날 치유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불신앙과 의심을 가졌던 것을 내어버리자. 의심하는 자에게는 구경거리 밖에 될 수 없다. 그러나 믿는 자에겐 말씀의 흥왕함이 나타난다.

오늘 치유의 손수건이 내 고통하는 심령을 덮게 하소서.
치유의 앞치마가 내 부끄러운 것을 가리어 회복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기도하면서 희한한 능력을 믿는 자가 되라. 특별한 기적이 이 시간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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