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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히스기야의 위기 극복 (사 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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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위기 극복 (사 38:1-8)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선지자 이사야가 왕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선지자의 권면을 들은 왕은 자신의 선한 행위를 근거로 여호와께 간곡하게 호소하며 심히 통곡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 응답으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시는 것과 예루살렘 성을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임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위기를 극복한 히스기야의 모습입니다.

히스기야가 누구입니까? 25세에 유다 왕이 되어 53세에 죽었습니다. 재위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나라를 통치한 왕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성전에서 거룩한 기구들을 취하여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드렸던 악한 왕이었으나, 그의 어머니 아비야는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겼던 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좋은 영향을 받은 히스기야는 다윗 왕 이후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칭함 받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1절). 여기 ‘병들어(할라)’ 는 닳아빠질 대로 닳아서 쓸모없게 된 것을 말합니다. 질병에 걸려 죽음의 고비에 있는 히스기야는 몸의 모든 기능이 극도로 허약해졌고, 환부로 인한 고열과 통증으로 다른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히스기야 왕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분명하였습니다. 첫째는 병고침 받는 것이었고, 둘째는 앗수르의 무서운 공격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기도응답이 되지 않아도 히스기야 왕은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일생일대의 위기 앞에서 히스기야는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렸고, 마침내 위기를 극복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모두 위기 극복의 비결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히스기야가 위기를 이긴 비결은 무엇입니까? 


1. 포기하지 않는 의지 

2-3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

히스기야는 엄청난 위기를 맞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위기 극복의 첫째 비결은 ‘포기하지 않는 의지’ 입니다.  

그의 병은 죽을 병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선지자 이사야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승리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발견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 입니다.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는 보통 사람 같으면 절망했을 극한의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본문 1절은 히스기야의 병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채 죽음을 목전에 둔 다급한 상황에서 급박하게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고 있는 히스기야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1절). 이 말은 문자적으로 ‘너는 네 집을 정리하라’ 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왕으로서 마지막 해야 할 일을 다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의 사후 왕위 계승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도록 후계자를 정해 놓으라는 의미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39세의 젊은 나이의 히스기야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본문 2절은 그가 선지자의 말씀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기도에 전념하였을 보여줍니다. 히스기야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세계 최강 앗수르 조차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의 내용입니다. “포기는 배추 셀 때만 사용한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승리의 비결입니다. 성경에 승리한 사람들은 끝이라고 하는 곳에서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애굽을 벗어나 나온 것만 해도 힘든 과정이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사가 맹렬히 추격해 오는 위기에 봉착합니다. 누가 보아도 끝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끝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이 일하신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때의 모세의 외침을 들어보십시오.

출 14:13-14=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성도 여러분!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 나선 사람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에게서 이 의지를 발견합니다. 쉽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 주시는 믿음의 연단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은 실로 금보다 귀하여 우리의 믿음을 아름답게 가꾸어 줍니다. 

어느 노부부가 아이가 없어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고아원에서 양자를 데려다가 기르기로 하고, 원장의 소개로 한 아이를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버릇없이 무례한 행동을 할 때가 많았고, 양부모는 언젠가는 좋아지리라는 소망을 갖고 살았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먹을 것을 사다 놓기만 하면 통째로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절대로 자기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타이르고 또 타일러 보았지만 소용이 없어 구제불능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 아이가 떠난 후 아이가 쓰던 방을 정리하는 중 장롱을 옮겼을 때 그 노부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동안에 없어졌던 과자들이 쥐 굴속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자를 훔친 범인은 그 아이가 아니라 쥐들이었습니다. 

노부부는 고아원으로 찾아가서 그 아이에게 사과하고 다시 같이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한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서로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쥐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쉽게 포기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 이것이 위기 극복의 비결입니다. 


2. 전심으로 드리는 기도 

3절=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위기 극복의 두 번째 비결은 포기하지 않고 전심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히스기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셨어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작정하셨어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방법이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 

본문의 ‘구하오니’ 에 해당하는 ‘안나’ 는 동사처럼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감탄사입니다. 구약에서 12번 사용된 이 말은 어떠한 간구가 제시되기에 앞서 그 간구가 매우 간절한 것임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매우 간절한 기도였고, 왕의 신분과 체면을 벗어버리고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올린 기도였습니다. 위기 극복에 필요한 것은 전심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두 가지 기도 제목을 모두 응답해주셨습니다. 

5-6절=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생명을 15년간 연장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앗수르 손에서 건져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도 받았습니다. 전심으로 기도하면 응답받습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옛날 서대문 영천 시장은 콩나물 장수가 많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한 아주머니가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매일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의 인생 목표는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자식들을 믿음으로 성장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눈물로 기도합니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아들이 훌륭한 사업가가 됩니다. 회사 이름을 짓고 심벌마크를 결정해야 되는데, 새벽마다 기도하던 어머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회사 심벌마크를 종(鐘)으로 정했습니다. 그 회사가 바로 ‘종근당’ 입니다. 시장에서 콩나물 파시면서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성도 여러분! 전심으로 기도하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는 그 앞에 어떤 거센 파도가 몰려와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남미(South America)와 북미(North America)를 보십시오. 남미는 북미보다 지하자원도 풍부하고 모든 환경이 탁월합니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 미국은 북미에서 나왔습니다. 남미의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국의 로저 밥슨 기자가 아르헨티나의 존경받는 한 정치가를 인터뷰 하는 중에, 그 정치가가 기자에게 도리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북미보다 남미가 지하자원과 물이 풍부하고 환경도 좋습니다. 그런데 기자님은 왜 남미보다 북미가 더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밥슨 기자가 머뭇거리자 그 정치가가 말했습니다. “내가 대답하지요. 남미는 황금을 구하려는 스페인 사람들이 점령했지요. 그러나 북미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기도하는 청교도들이 점령하였지요.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가 방법입니다. 전심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3. 주의 목전에서 행한 선행 

3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히스기야는 두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는 불치병을 고침 받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앗수르의 침범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큰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응답되지 않아도 그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전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 내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3절).  

히스기야는 병들기 전에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였고, 주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부왕 아하스 때 만들어 놓은 우상을 모두 부숴버렸습니다.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가르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였습니다. 온 나라에 영적인 혁명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큰 일도 행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물이 부족하여 성 밖의 기혼 샘으로부터 성 안으로 수로를 팠습니다. 적들이 성을 포위하더라도 성 안의 백성들이 물 부족을 당하지 않도록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히스기야 터널이 남아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일들을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진실과 전심으로 일한 것들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기도 제목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선행이 방법이었습니다. 돈 저축만 저축이 아닙니다. 영적인 저축도 있습니다. 신용만 쌓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도 쌓는 것입니다. 투자한 것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 투자도 찾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가 닥쳐올 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고 더욱 진실해지려면 평소에 주님의 목전에서 선한 일,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간곡히 구하는 바 하나님 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는 말은 단지 자신의 목숨을 연장시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유다를 다시금 신정국가(神政國家)의 면모를 갖춘 나라로 세우도록 기회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뜨거운 열심이 있었고, 그 열심을 가지고 유다를 개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위기가 닥쳐올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전심으로 드리는 기도인데, 이러한 기도를 가능케 하는 것은 평소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 을 기억하옵소서.”   

이것은 히스기야가 아무런 흠결(欠缺)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따라서 이에 근거해서 간구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단지 히스기야의 삶의 중심이 오직 한분 하나님께 있었고, 그의 삶이 진리에 근거한 삶이었으며, 이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고 굳건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주 앞에서’ 또는 ‘주의 목전에서’ 와 같은 표현에서 강조되는 것은 자신의 삶이 완벽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살았다는 점입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간곡한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싶습니까? 평소에 하나님과 가까이 하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매진하십시오. 그리하면 위기의 날에 여러분의 부르짖음이 하늘 보좌를 울리게 될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를 만나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하던 히스기야는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5-6절=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회복을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15년의 수한 연장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히스기야는 평소에 가졌던 믿음에 믿음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새롭게 배운 하나님은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지니신 절대 주권자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앗수르 왕의 손에서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실 것을 표적을 통하여 확증하셨습니다: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8절).  

하나님은 천체에 엄청난 이적을 베푸셔서 해시계의 해그림자를 뒤로 십도나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이적을 통해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인생만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비통한 상황에 처하여 눈물로 간구하는 자들의 간절한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위기는 나의 생각이나 계획과는 관계없이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 전심으로 부르짖는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평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십시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십시오. 특별히 주위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삶을 투자하십시오. 

일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어려운 이들과 버려진 자들을 위해 구제 사업을 감당했던 죠지 뮬러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자신의 시간을 다 포기하고 그 모든 날들을 이처럼 어려운 자들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때 뮬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철저히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죽은 그날 이후부터 나는 오직 주님께만 내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 일하고 힘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내 삶을 이기적으로 나만을 위한 것처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생명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허락하셨고 지금까지 이를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앞으로의 삶도 우리 스스로는 일분 일초도 늘리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에 힘을 다하십시오. 그리하여 복된 삶, 가치 있는 삶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시는 지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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