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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에 들지 않는 기도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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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는 기도 (누가복음 22장 39-46절)


< 쉽게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

 어느 날, A 집사가 돌아가신 노모 장례식 문제로 시험에 들었습니다. 담임목사가 자신의 노모 장례예배를 직접 인도하지 않고 부목사를 시켰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가까운 교우가 말했습니다. “집사님! 교회가 크니까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이해하세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일전에 B 집사의 노모 장례식 때는 담임목사님이 직접 장례예배를 인도하셨잖아요?” 그 말을 듣고 그 교우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교회 리더가 사랑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특정 성도를 더 귀히 여길 수는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랑 받고 더 섬기면 더 섬김 받습니다. 그것은 ‘사람 차별’이 아닌 ‘보편 진리’입니다. 그것도 차별로 몰아가면 ‘드리지는 않고 받기만 하려는 이기주의자’란 소리를 듣기 쉽고 ‘자기에게 유리한 측면으로만 정의를 내세우는 외식주의자’란 소리를 듣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 리더가 물질 유무나 외모나 계산을 앞세워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외적으로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들면 누구나 속이 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A 집사가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이 이해는 되지만 그런 일로 시험에 드는 상황까지 가는 것은 속 좁은 지나친 반응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것’과 ‘시험에 드는 것’은 그 개념 차이가 큽니다.

 본문 40절 말씀이 이전에 쓰던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로 되어 있지만 지금 쓰는 <개혁개정 성경>에서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반면 본문 46절 말씀은 두 성경 모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개혁개정 성경>에서는 같은 말을 40절에서는 ‘유혹’으로 표현하고 46절에서는 ‘시험’이라고 달리 표현했을까요?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표현을 통해 유추하면 ‘시험에 드는 것’의 개념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란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험에는 2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사탄이 주는 시험인 ‘유혹(temptation)’과 하나님께서 주는 시험인 ‘테스트(test)’입니다. 사탄은 영혼을 무너뜨리려고 ‘유혹의 시험’을 하고 하나님은 영혼을 강하고 성숙하게 하려고 ‘테스트의 시험’을 합니다. 결국 교회에서 ‘시험에 든다’는 말은 ‘사탄의 유혹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로 마음이 상해도 그 일로 쉽게 시험 들면 안 됩니다. 쉽게 시험에 들면 행복과 축복의 탑을 높이 쌓기가 어렵습니다.

 A 집사의 경우처럼 마음이 상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시험에 드는 상황’으로 빠져들지 말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자기를 성찰한 후 담임목사가 평소에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면 노모 장례예배 문제로 마음이 상했어도 “왜 나를 무시해! 교회가 사람을 차별하면 못써!”라는 생각으로 빠져들지 말고 “목사님의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 평소에 나의 사랑과 헌신이 부족했기에 이런 일로 덜 관심을 끄는 거야. 이 일로 너무 마음 상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잠시 상했던 마음을 극복해내야 합니다.
 
 마음이 상한 상황이 불의하고 심각하고 상습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그 상황의 뿌리 제거에 나설 필요도 있지만 그 상황이 우발적이고 사소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면 쉽게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작은 일로 쉽게 흔들리면 작은 행복과 축복도 얻기 힘들고 큰 인물이 되기는 더욱 힘듭니다. 마음이 상했을 때 ‘쉽게 시험에 드는 것’과 ‘쉽게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은 현저한 축복 차이와 행복 차이와 인생 차이를 만듭니다.

 교인의 장례식은 유족이 원하면 대개 담임목사가 장례예배를 주관하지만 교회가 크면 부목사가 주관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30대의 젊은 부목사가 장례예배를 인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상주는 “아직 삶도 잘 모를 나이에 장례를 주관하게 하느냐? 조문객 보기에 부끄럽다. 교회가 유족을 너무 배려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존심을 내세워 너무 쉽게 시험에 들면 인물이 되기 힘듭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렇게 쉽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시험에 들지 않는 기도 방법 >

 인생의 성패는 기도에 달려있기에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1. 습관을 따라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39절). 그곳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은밀하게 기도하시던 장소였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새벽기도의 습관이 있으셨고(막 1:35), 물려드는 군중들과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는 습관을 가지셨습니다(눅 5:16). 그처럼 기도가 습관이 되게 하십시오. 어떤 일을 하든지 ‘시도’보다 ‘기도’가 우선입니다. 기도 없이 시도하면 좋은 작품 인생이 되기 힘듭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화려한 불티 기도가 아닌 꾸준한 숯불 기도가 진짜 역사를 일으키기에 기도가 습관과 체질이 되게 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은 습관과 체질이 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기뻐하는 삶을 습관과 체질로 만들라는 말씀이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도 기도하는 삶을 습관과 체질로 만들라는 말씀이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도 감사하는 삶을 습관과 체질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그처럼 기도를 습관과 체질로 만들면 시험에 잘 들지 않게 되고 결국 좋은 인생이 펼쳐집니다.

2. 유혹되지 않게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이 다 버리고 도망갈 것을 이미 아시고 그런 모습이 없도록 기도로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40절). 그처럼 기도할 때 “무엇을 달라!”는 기도만 하지 말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도 하십시오. 특히 자기 영광을 구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자기 이름을 날리고 싶다는 유혹을 잘 이겨내십시오. 이름이 저절로 나면 어쩔 수 없지만 늘 소리 없이 큰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문제해결을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문제대비를 위해서도 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긴 후에 기도하면 한 발 늦지만 문제가 생기기 전에 기도하면 한 발 빠르게 됩니다. 한 발 빠른 것이 인생 전체의 성패를 가를 때도 많습니다. 시험이 든 후에 기도하지 말고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십시오.

3.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기도했습니다(41-42절).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반대로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기도하자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더해주셨습니다(43절). 그처럼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늘 십자가를 앞세우는 겸손한 기도로 하나님과 천사의 돕는 손길을 예비하십시오.

 어느 공동체든지 십자가의 삶을 실천하는 리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리더의 자리나 위치가 리더십을 주지 않습니다. 참된 리더십은 십자가를 지는 삶에서 나옵니다. 리더는 공부나 자리로 만들어지는 아니라 십자가의 삶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은혜가 넘치는 천국 교회가 됩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갈 때 쉽게 시험에 들지 않는 영혼이 되고 그 영혼이 속한 공동체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입게 될 것입니다.

4. 간절히 땀 흘려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간절히 땀 흘려 기도했습니다(44절).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는 감정적인 기도가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결단하는 영적인 사투가 반영된 의지적인 기도였습니다. 결국 간절히 땀 흘려 기도하라는 말은 감정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십자가의 사명을 다짐하며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지 못합니까? 외적인 욕심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기도의 몸부림을 치지 말고 욕심을 없애려고 기도의 몸부림을 치십시오.

 욕심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면 대개 기도응답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교회의 숫자적인 성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교회성장의 개념에는 ‘내외적인 영향력의 성장’도 포함되고 ‘바르게 되고 성숙해지는 성장’도 포함되고 ‘훌륭한 인물을 낳는 성장’도 포함되고 ‘찬란한 미래를 준비하는 성장’도 포함됩니다. 그런 교회성장의 수많은 다양한 개념을 외면하고 욕심을 품고 숫자적인 단기간의 성장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기도에 응답하지 않고 사실상 그런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것이 나중에 보면 더 축복입니다.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욕심을 품은 채 교회가 커지면 언젠가는 급격한 하락과 추문과 내분과 병사와 투옥 등으로 명예 이상의 불명예를 안게 됩니다. 왜 교회성장 세미나가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까? 목회자의 특징과 철학과 달란트를 외면하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숫자적인 성장을 꾀했기 때문입니다. 왜 개는 멍멍 짖지만 고양이는 조용합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주신 자기만의 특징과 달란트를 살리지 않고 숫자적인 교회성장을 추구하려고 교회성장 세미나에 간다면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예전에 대학 때 같이 믿음생활을 하던 A 목사님이 인천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몇 년 동안 20명밖에 되지 않아서 고민 끝에 폭발적인 교회성장을 이뤄준다는 한 기도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그 후 그 세미나에서 배운 대로 거의 외출도 하지 않고 매일 강단을 지키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지 40일 기도 후에는 교인이 15명으로 줄었고 3개월 후에는 10명으로 줄었고 1년 후에는 5명으로 줄어서 가족만 남았습니다. 1년 후에 만났을 때 그분은 크게 시험에 들어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원망과 회의만 토로했습니다.

 간절히 땀 흘려 기도하라는 말씀은 자기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십자가의 삶을 다짐하며 기도하라는 말씀이지 외형적인 복을 달라고 떼를 쓰듯이 감정적인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기 뜻을 앞세워 떼를 쓰고 기도하면 자기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시험에 들고 자기 뜻대로 이뤄져도 그 다음의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 인생 전체가 시험에 듭니다. 기도할 때 십자가를 각오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그 기도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십시오 >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이 슬퍼하며 잠들었을 때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45-46절). 기도해야 자기 심령을 지키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와 민족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 받아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만큼 기도로 파수하는 사명은 막중한 사명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사탄의 시험에 빠져 거룩한 꿈과 비전과 목표를 잃게 됩니다. 결국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실제적인 실천원리로서 특별히 2가지를 잘하십시오.

 첫째, ‘받기보다는 드리는 삶’을 잘하십시오. 대개 보면 은혜를 많이 받기만 한 사람이 시험에 잘 듭니다. 교회에서도 받기만 하고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시험에 잘 들지만 드리는 사람은 시험에 잘 들지 않습니다. 10번 목사가 위로하러 성도의 집을 찾은 사람은 시험에 잘 들지만 1번 목사에게 인사하러 찾아오는 사람은 시험에 잘 들지 않고 10번 목사가 식사를 사준 사람은 시험에 잘 들지만 1번 목사에게 식사를 사준 사람이 시험에 잘 들지 않습니다. 받기를 좋아하는 삶은 ‘시험’을 낳지만 드리기를 좋아하는 삶은 ‘충성’을 낳습니다.

 선교사들의 후원에 힘쓰면서 오히려 우리가 얻는 기쁨과 보람과 행복이 얼마나 큽니까? 이번 주 중에 몽골 선교캠프로 우리가 보낸 후원물품이 도착합니다. 보통 가정의 이삿짐보다 많은 후원물품을 보내면서 운송비용도 상당히 들었습니다. 바로 연이어 여승훈 선교사님 차량후원금도 10월 23일까지 모아 10월 24일에 송금할 예정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교회가 저러면 거덜 나겠다.”고 하지만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붙여주셔서 거덜 나지 않게 하십니다. 게다가 드리는 삶을 통해 시험에 잘 들지 않는 신앙의 틀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진짜 복입니다.

 둘째, ‘비전을 품고 기도하는 삶’을 잘하십시오. 거룩한 목표가 뚜렷하면 상처가 시험으로 전락하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며 준비하십시오. 작은 일에 너무 매달리지 마십시오. 상처를 받았다면 상처를 시험에 드는 원인으로 삼지 말고 그 상처로 인해 생긴 낙심 에너지를 낙차 에너지로 삼아서 꿈과 비전의 발전기를 돌리십시오. 비전의 열매가 바로 생기지 않아도 계속 준비하고 계속 기도하면 찬란한 꿈과 비전이 이뤄지는 꿈과 같은 때가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신학대학원 때 많은 영혼을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초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런 꿈을 품고 기독교 선교연맹(C&MA) 사역자로서 귀국해서 동역자나 멘토나 재정도 없이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사역해야 했습니다. 그 후 수많은 대형교회의 폐단을 보고 느끼면서 교회의 외적인 성장에 대한 비전이 저절로 사라졌습니다. 가끔 외형적인 성장 문제로 낙심이 틈타려고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매일 꾸준히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런 말씀들이 쌓여 성경강해 파일들이 하나씩 완성되었습니다.

 성경강해 완성 파일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천년영향력의 비전’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천년영향력이냐고 속으로 비웃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런 준비과정을 통해 마침내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월새기를 통해 영혼구원과 영혼변화에 대한 수많은 소식을 들으면서 <월새기 영어판>을 꿈꾸며 세계를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천년영향력의 비전이 더욱 생생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기도하며 준비하면 이루지 못할 비전이 없습니다. 찬란한 비전을 품고 나가면 시험에 들 가능성은 크게 줄어듭니다. 요새 <월새기 영어판> 사역을 통한 세계선교의 비전까지 가지니까 더 젊어지는 것 같고 상처도 줄어드는 것 같고 상처가 있어도 그 흔적이 쉽게 닦이는 것 같습니다. 상처와 실패와 고난을 ‘시험에 들게 하는 원인’으로 삼지 않고 ‘비전을 이루게 하는 원료’로 삼는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이 되겠습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면서 열심히 비전을 향해 달려가면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시점’은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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