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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이박사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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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받아놓은건데, 함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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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식 작성자 2009.06.21. 07:50

이병규 목사님

 

이병규 목사 인터뷰(1996년 빛의 소리 5호 발췌)

일제와 공산치하의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장차 오실 주님의 영광을 보며 50여 년간 목회 중, 진리의 영을 사모하시고 영광의 자유함을 이루는, 저 높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서 계시기를 소망하며 묵묵히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계신측 총회장직을 지내셨고 지금까지 독특하고 과감한 목회 방법으로 가는 곳마다 부흥의 물결을 일으켰고 국내외 100여개 교회를 개척 하시는 등 저력 있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신촌 창광교회 이병규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사회자: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 안녕하세요?

사회자: 목사님 지금 연세가 얼마나 되셨지요?

목사님: 73세입니다.

사회자: 제가 뵙기에는 아직도 정정 하신데요. 목회는 몇 년 하셨습니까?

목사님: 48년간 했습니다.

사회자: 50년 가깝게 하셨군요. 근 반세기이군요. 지금 시무하고 계신 창광교회 연혁을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목사님: 1967년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29년간 시무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교세로 보면 국내?외 교회가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목사님: 우리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가 국내외 100여개 됩니다.

(미국11개, 캐나다4개, 일본3개, 호주 1개, 알마타5개, 러시아1개, 우즈베키스탄2개 등)

사회자: 참 많군요. 목사님 어렸을 때 신앙 이야기 좀 듣고 싶은데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까.

목사님: 믿지 않는 가정에서 17살 때 교회에 나갔습니다.

사회자: 네 그럼 고향은 어디이십니까?

목사님: 평북 정주군 고독면 관내동입니다. 거기서 부흥회를 한다고 해서 친구를 따라서 부흥사경회 에 한 주간 참석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셔서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나 갔습니다.

사회자: 평북 정주가 고향이시라면 기독교 박해가 심하던 곳 아니겠습니까? 개신교 선교사인 토마스의 순교의 피가 평안도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싹트게 했는데요. 그때 다인 박해가 어느 정도였는지요.

목사님: 왜정 말 때 나갔기 때문에 그 때 박해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그랬는데 저 는 처음으로 나가서 잘몰랐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목사가 순교당한 순교의 피로 인해서 평 안남북도에는 교회가 많이 부흥이 되고 신앙의 불길이 많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사회자: 17살 때 부흥회에 참석해서 말씀에 사로 잡혀서 주님의 종이 되기를 헌신 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 때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부흥회의 내용은 어떤 내용이었는지요.

목사님: 자세히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 는 것, 또 안 믿으면 죄 값으로 지옥 가는 것, 그런 것을 들은 것 같습니다. 거기서 믿어야 되겠다 작정하고 우리 친구들 몇 명이 믿기로 작정해서 그날부터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 그 때 이후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목사님: 그 이후로는 믿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려고 애를 쏙, 성경을 매일 읽고, 전도하고, 또 밤에는 예배당에 가서 자고 철야기도함네 하면서 기도 좀 하고 자기만 했지만 예배당에 늘 있었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던 것 같네요. 지금은 오래돼서 다 잊어버렸지만.

사회자: 그 때 말씀을 사모하게 되셨는데요. 특별히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 때 당시?

목사님: 이북에서 존경하는 목사님 두 분이 계셨는데 첫째, 이기선 목사님을 많이 존경하고 성경을 이기선 목사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특별히 성경 대,소지를 신,구약성경 다해서 조직적으로 가르쳤고 또 깊은 뜻을 가르쳤고 강경한 신앙의 터 위에 강경한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희웅 목사님이 문산교회에 있었는데 김희웅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30년간 연구 한 목사님이신데 그 목사님에게 요한계시록을 많이 배웠고 배울 뿐만 아니라 우리 본 교회 는 문산교회에서 15리 밖에 있는데 본 교회에 배운 것을 가지고 와서 청년들을 모아놓고 가르치고 특별히 명절날 많이 가르쳤습니다. 명절날 다른 아이들은 다 노는데 우리들은 모여서 성경공부를 늘 하곤 하고 명절 한번 지내면 요한계시록 한권 뗄 때도 있고 또 많은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사회자: 그 이후로 월남은 6.25때 하셨는지요?

목사님: 네, 6.25때 피난을 와서 제주도에 갔다가 부산 고려신학교에 와서 박윤선 목사님의 철저한 성경교리, 칼빈주의 교리에 대해서 많이 배웠고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사회자: 네, 그러셨군요. 만약 지금 통일이 된다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세요?

목사님: 교회를 세우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신학생들 보고도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통일이 되면 전부 이북에 들어가서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준비하고 교회기금도 어떻게 하든지 다 준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고향이 이북이신 만큼 누구보다도 북한에 교회 세우는 일에 아주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북한에서의 뼈아픈 경험으로 주일 성수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실 듯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권면의 말씀 좀 해주십시오.

목사님: 우리는 본래 배우기를 이기선 목사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특별히 십계명을 지켜야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주일날은 생명 내놓고 지켜야 되는 것을 배워서 그 배운대로 우리가 주일날을 생명 내놓고 지키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어떤 날은 주일날 잡혀간 때도 있고, 감옥에 들어간 때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주일날은 생명 내놓고 지켜야 된다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오늘까지 지켜나왔습니다.

사회자: 네! 그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될 줄로 생각이 되는데요, 처음에 말씀해 주신 김희용, 이기선 목사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우시고 목사님이 목회의 길을 가시면서 많은 영향을 받으셨는데 주로 그분들이 주신 말씀 중에 기억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요?

목사님: 이기선 목사님께서는 진리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생명 내놓고 순교의 자세를 가지고 나가서 지켜야한다는 것을 배웠고 김희용 목사님은 주로 요한계시록을 가르쳤는데 예수 생활화하자, 예수 생활화하자는게 목표예요. 그래서 모든 성도가 예수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 그 다름에 고려신학교에서 박윤선 목사님이나 다른 교수들을 통해서는 교리, 장로 교리를 어떻게 하든지 세워 나가야 된다는 것, 그 다음에 아현교회에 있는 김현봉 목사님에게는 수복 이후에 배웠는데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된다, 즉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었는데 얻은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야 되고 또 중생한 영혼이 자라나야 되고 인격을 건설해 나가야 된다, 예수님과 같이 될 목표를 가지고 우리가 모든 도덕적인면에 있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 에베소서 4장 15절에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라고 했으니까 자라나야만 된다는 것, 이런 것을 특별히 많이 배웠습니다.

사회자: 좋은 스승 목회자들을 살아오는 동안 참 많이 만나신 것 같아요. 그 말씀을 이제 목회에 반영하고 계신데요, 목사님께서는 성경 전권 강해서를 집필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어떤 것들이고 또 모두 몇년에 걸친 작업으로 이루어진 것들입니까?

사회자: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 신구약 강해를 다 냈습니다. 신약은 마태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12권으로 되어 있고, 구약은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 1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강해서 28권으로 신구약 강해서를 다 냈는데, 이것은 성경 주석과 같은 것입니다. 20년간 걸려서 된 건데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입니다.

사회자: 그 작업을 하시면서 여러 가지 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힘든 것도 있고 또 기억에 남는 하나님의 역사가 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한 토막 들려주시죠, 목사님.

목사님: 강해서에 있는 것을 다 말하려면 한정이 없는데 특별히 제가 집필한 강해서의 장점이라고 하면 과거 선배들에게서, 좋은 스승들에게서 바로 배운 교리 위에다가 많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깨달은 진리와 주일 설교한 것, 또 기도원 사경회도 했고 그런 체험적인 모든 면을 주로 기록했습니다.

사회자: 강해서 집필하시면서 신앙도 많이 굳어지셨을 것 같습니다. 은혜도 많이 받으시고요.

목사님: 매일 아침 새벽기도 인도하고 연세대 뒷산 기도처에서 오전 11시까지 기도하며, 성경말씀을 연구하며 이렇게 하는 동안에 많은 은혜를 받고 깨달은 진리를 이 성경 강해서에 기록했습니다.

사회자: 부산에 계실 때 포로수용소 전도도 하셨다면서요? 그때 당시 그 상황과 경험을 통해서 목회와 신앙생활의 도움을 얻으셨을 것 같은데요. 피난오신 분으로 고향 생각과 포로들 대부분은 공산당 강요에 못이겨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때 얘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목사님: 6.25 사변 때 포로수용소가 두 곳 있었는데 거제도 거제리라는 데 하나 있었고 또 부산 동래 거제리라고 하는 데하나 있었습니다.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최희선 선교사와 목사님 몇 분이 전도를 약 2년간 했습니다. 그중에 처음엔 다 인민군으로 나왔으니까 믿는다고 하지 못하고 나왔지만 우리가 전도하는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또 성경책도 많이 배부를 했고 수용소 안에 들어가서 성경공부도 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이승만 대통령이 포로 석방할 때 한국에 많이 석방돼서 신학교 하고 목사된 사람도 많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전도한 보람을 느끼고 있고 여자들도 포로가 있었는데 그분들도 석방이 되어서 전도부인(전도사)으로 일하며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회자: 월남하실 때 가족들도 함께 오셨습니까?

목사님: 월남할 때는 청년들만 월남했습니다. 우리 동생, 우리 교회 청년들, 여기 나와서 그분들 다 목사 많이 되었어요. 최낙길 목사, 임세빈 목사하며, 많이 목사가 되어서 지금 각처에서 일하고 있고, 동생은 미국 L.A 동부교회를 설립하고 시무하고 있는데 약 400명 정도 모입니다.

사회자: 월남하시기 전에 이북에서도 목회를 하셨나요?

목사님: 네, 이북에서 목회를 좀 했습니다. 1948년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황해도 금산교회를 좀 보다가 그 다음에는 평북 정주군 갈산교회를 약 2년간 시무하다가 6.25사변이 나서 피난왔습니다.

사회자: 월남하신 후에 목사님의 첫 목회지는 어디셨습니까?

목사님: 부산 송덕교회에서 시무를 좀 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포로수용소 전도하다가 송덕교회를 다니면서 시무한적이 있습니다.

사회자: 그 다음에는 어느 곳을 시무하셨는지요?

목사님: 1953년 정부가 수복하는 때인데 그때 이북에서 같이 신앙생활하던 안희룡 집사가 서울 창경원 옆 명륜동에 있었는데 개척교회를 하자고 해서 무턱대고 빈손 들고 올라왔는데 교회를 할 장소도 없고 해서 사방으로 다니며 예배당 자리 달라고 기도하고 그러는 동안에 어떤 적산건물을 하나 발견하게 됐어요. 적산건물이라는 것은 일본인 소유인데 패전 후 다 내놓고 가서 그것을 한국 사람들이 임대해 사용하던 것인데 그 주인은 없고 다 빈집이고 해서 무조건 그 집에 가서 예배드리자, 그래서 무조건 예배드리고 있었는데 대지는 약 50평 되고 예배당은 약 40평 정도 될 것 같은 집인데 예배를 몇주간 드리며 수리하고 있었는데 임대해서 사용하던 한국인 주인이 나타나서 왜 남의 집에 벽을 허물면서 있느냐,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집인 줄 몰랐는데 예배당하려고 한다, 당신의 요구대로 사라면 사고 나가라면 나갈 것이니 요구가 무엇이냐고 했더니 사라는 것이예요. 권리금만 얼마 내라고 해서 사방에서 얻어다가 그 돈을 주고 사서 임대차 계약을 우리 이름으로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적산건물이고 우리 건물은 아니었어요. 그때 교회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수복하는 단계여서 부산에 피난갔던 사람들이 올라오는 바람에 교회가 많이 부흥이 되었어요. 한 1년 동안에 200여명이 모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한 가지 사고가 생겼는데 그 예배당을 불하맡으라고 했습니다. 불하 맡겠다고 신청을 했는데 조사 나온 사람을 우리가 대접을 좀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조사 나온 사람을 그냥 보냈더니 이 사람들이 불하 맡는 날을 우리에게 통지를 안 해주었어요. 그 바람에 우리가 우선적으로 입찰하는 날짜가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가서 물어보니까 당신들이 오지 않았지 않느냐, 우리는 몰라서 안 왔다, 왜 통지를 안 해주느냐, 관제구법에는 개인에게 통지해 주라는 법이 없고 7일 전에 신문에 공고하라는 법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그럼 어디에 공고냈느냐, 평화신문에 공고했다는 거예요. 그럼 7일 전에 했느냐 했더니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 공개 입찰에서 다른 사람이 많은 돈을 써내서 그 사람에게 넘어갔습니다. 그 불하 맡은 사람이 와서 집을 내라 우리가 산 것이다, 그래서 온 교인들이 기도하고, 철야기도하고 애를 쓰는 가운데 그 7일 전 공고한 신문을 한번 찾아보자, 그래서 평화신문사에 가서 몇 달치 신문을 다 뒤지고, 그때 김성칠 집사가 특별히 많이 노력을 해서 찾아냈어요. 광고를 보니 6일 전에 했어요. 관제구에서는 7일 전에 하라고 법에 되어 있는데 6일 전에 했으니 무효다, 거기서는 7일 전에 신문사에 보냈는데 신문사에서 두었다가 냈기 때문에 6일 전에 낸 것이다, 우리측 변호사가 법에 7일 전에 공고하라고 했느냐, 보내라고 했느냐, 그래서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를 했습니다. 값은 먼젓번 사람이 기록한 그 값으로 사야 한다고 해서 많은 돈을 주고 불하를 맡았습니다. 그 후에 그 옆집도 사서 예배당을 짓고 많이 성장했어요.

사회자: 그리고 부임하신 교회가 지금의 창광교회인가요? 부임하실 때와 지금의 창광교회를 비교하신다면 어떠신지요?

목사님: 부임할 때는 예배당도 없고 교인이 약 4~500명 쯤 됐는데 지금은 예배당도 좋은 곳에 짓고 예배당도 서너 번 증축을 했는데 예배당의 대지가 약 600평 정도 됩니다. 예배장소, 지하실, 2층, 3층 다해서 건평수는 1000평 정도 됩니다.

사회자: 많은 축복을 부어 주셨군요. 목자는 교회가 시험들었을 때, 또 영적 침체의 늪에 빠졌을지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온전히 맡긴다면 오히려 그 어려움을 봉해서 죄를 제거시키고 양심을 씻고 돋는 해처럼 원만한 광명에 이르는 빛을 바라는 목자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목회에서 가장 큰 고비였다면 언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목사님: 목회에서 고비라고 하면 명륜교회에서 예배당 불하맡는 것이 잘못되어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서 그 사람이 매매계약서를 가지고 와서 예배당 내라고 할 때 그때가 제일 고비였던 것 같아요. 교인들이 다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고, 앞이 캄캄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고, 그 후에도 몇 번 큰 시험들이 명륜교회나 창광교회를 시무하는 중에 있었는데 시험이 들어올 때마다 의지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고, 무슨 방법으로 시험을 이겨야 될까 연구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해주셔야지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성경말씀대로만 바로 걸어나가면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는데, 인간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로 오늘까지 붙들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자: 온전히 맡길 때 모든 것을 순조롭게 해결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을 늘 만나셨군요.

목사님: 온전히 맡기는 것, 회개하는 것, 말씀대로 바로 걸어가는 것, 세 가지예요. 그 다음은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이것이 시험을 이기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자: 기도 생활 때문에 곤혹을 치루는 때도 한두 번이 아니셨다는데요, 그 이야기를 드라마로 들어보기로 하지요.

[이병규 목사님은 기도와 정통 말씀의 목자다.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가지 그의 기도에 대한 투자는 남다른데가 있다. 그는 사도 바울과 같이 산에 텐트를 치고 기도하기를 즐겨한다. 그런 그의 기도 생활 때문에 예상치 않던 곤혹을 치르는 대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손들고 꼼짝말고 있어. 김순경!”

“네.”

“내가 저자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을테니까 자네가 저자의 몸을 수색해 봐. 무기를 감추고 있을지 모르니까.”

“네, 경사님!”

“왜들 이러는 기요?”

“가만히 있어, 죽고 싶지 않으면. 수상한 게 분명하구만, 이북 사투리까지 쓰고 있잖아.”

“무기는 없는데요.”

“없어? 그러면 끌고 가자고.”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거요. 양민을 붙들고.”

“잔말 말고 따라와. 당신을 주민들이 신고했어, 수상한 사람으로. 혹시 당신 간첩아니야?”

“아니, 내레 간첩이라구요? 이보라요, 나는 목사예요, 목사.”

“간첩이 아니면 왜 매일 새벽에 이 산을 배회를 해? 누구 접선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보우, 난 매일 새벽 하나님과 접선하려고 기도하러 이곳에 온단 말이요, 정 그렇다면 서에 가서 따져보라우,”

“기도하러 온다구요?”

그는 기도 생활의 중요성을 후배 목사들에게도 어김없이 가르친다. 그는 부교육자들에게 그들은 부름받아 나선 순례자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사도 바울의 정신을 이어받도록 일 년에 두 번 텐트 기도회를 갖도록 한다. 그의 독특한 기도 훈련은 그가 명륜교회의 개척, 시무할 때부터 지금까지 40여년간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여러분! 여러분은 개인 텐트 하나, 침낭, 그리고 일체의 식사 도구를 챙겨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예요, 그리고 혼자서 밥해먹고 기도하고 또 금식할 사람은 금식하고 이렇게 기도 훈련을 쌓아야 경건한 목자, 능력있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중간에 내려가고 싶은 유혹의 고비를 기도로 넘겨야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우는 것이요. 그럼 준비됐으면 올라들 갑시다.”

그는 자신이 70이 넘은 고령인데도 새벽 기도 후 매일 아침 연세대 뒷산에 마련한 기도실에 올라가 11시까지 꼭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쉬지 않는 기도생활을 유지한다. 그는 목회자의 골방의 기도만이 열력을 넓히며 성도들에게 말씀의 생수를 먹일 수 있는 능력이 되었음을 체험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사회자: 목사님 기도는 영력을 넓힌다고 하는데요, 그리스도인의 열력과 영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치유와 기적을 베푸는 능력을 말하는지요?

목사님: 우리가 병을 고친다든지 무슨 큰 희한한 능력을 나타내든지 하는 그것은 아니고 우리가 기도해서 얻는능력이라는 것은 우리 심령 속 깊이 하나님의 감동이 오고 우리 중생한 영이 그 감동을 받아서 영적 심령 속에서부터 새 힘이 나오고 새 생명의 역사가 나와서 새로운 열심히 나오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자, 충성하고자 하는 결심이 나오는 영력을 말합니다.

사회자: 특별히 성도들과 함께 참여하는 어떤 기도 훈련 프로그램을 갖고 계시는지요?

목사님: 전 교회적으로 기도회를 갖는 것은 일 년에 두 번씩 광주 기도원에 가서 집회하는 것이 있습니다. 5월과 8월에 하는데, 그것을 40년간 계속하는데 그 속에서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서 기도하고 새벽이나 낮에는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 기도로서 능력을 얻는 그런 성도들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회자: 여기서 목사님의 목회 철학을 듣고싶습니다.

목사님: 목회 철학이라는 것은 별로 없고, 한 가지 말하라고 하면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 속에서 생명을 얻고, 새 힘을 얻고, 능력을 얻는 것, 기도해야만 이것이 되고 기도 안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 후배들에게는 기도는 매일 2시간씩 하고 성경은 매일 10장씩 읽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일 년에 세 번 읽을 수 있어요. 10년이면 30번, 40년이면 120번 읽을 수 있는데 성경을 우선 많이 읽어야만 된다는 것, 배워야 된다는 것. 아무리 많이 읽어도 한 번 배우는 것이 유리합니다. 나도 많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려고 힘을 쓰고, 그 다음에는 성경을 전할 때에 순수한 말씀만 전해야 한다는 것,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 있는 말씀대로 “우리는 수다한 사람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느니라.” 바울은 하나도 섞지 아니하고 순전한 말씀만 전했다는 것, 이 말씀을 따라서 아무 것도 섞지 않고 말씀 그대로만 전하라는 것, 그리고 영권으로 전하라는 것, 말씀과 영감이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는 것,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신앙이 탈선이 된다는 것, 기도만 하고 말씀을 많이 보지 않으면 신비주의로 기울어지고, 또 기도 안 하고 말씀만 인간의 생각으로 연구하면 신신학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기도와 말씀을 동시에 병행해 나가야만 교회가 건전하게 영적 생명이 자라날 수 있다는 것, 성경을 가감하지 말고 사람 귀에 즐겁게 하려고 하든지 인간의 방법으로 하지 말고 듣든지 말든지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성경 그대로만 전하면 성령으로 깨달아서 그 사람들이 말씀에 바로 설 때에 믿음이 바로 선다고 믿습니다.

사회자: 예, 귀한 말씀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새로운 교단을 조직하시고 후배 목회자들을 기르는 계신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한국교단에 독특한 계약신학교 창설의 업적을 이루셨는데요, 계약신학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시지요.

목사님: 계약신학교는 1969년도에 설립해서 금년 27회 졸업생을 냈습니다. 계약신학교의 특징은 성경을 많이 가르쳐주어야 한다, 또 깊이 가르쳐주어야 한다, 또 성경 어디를 펴도 설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성경의 깊은 진리를 가르쳐주려고 힘을 쓰고 또 조직적으로 가르쳐주려고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사나 조직신학이나 변증학, 신학이며 다 가르쳐주지만 그 중에 제일 많이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은 성경이라는 것을 깨닫고 여기에 많이 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회자: 목사님은 숨은 곳에서 기도하는 목자, 또 철저히 말씀에 서서 알기 쉽게 성경을 가르치는 목자라는 생각이드는데요, 개척하는 곳마다 부흥이 일고 신학교 설립까지 허락을 맡으신 독특한 목회 방향을 어떻게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목사님: 우리는 특별한 방법도 없습니다. 그저 그날그날 하다 보니 오늘까지 나왔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성경 중심, 그리고 기도 중심, 영적 생명을 살려나가는 중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해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학생이 약 400명 졸업했고, 목사 된 사람들이 약 200명 쯤 됩니다. 지금 국내외 각처에서 교회를 하고 있고, 다른 곳으로 간 사람도 더러 있고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사회자: 목사님,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요, 앞으로 남은 여생 중 소망이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목사님: 남은 여생 중 특별히 계획한 것은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날까지 좀 더 하나님 앞에 믿는 일 잘 하고 내가 좀 더 자라나야겠고, 좀 더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인들이나 제가 가르치는 후배들이 건전한 교회를 설립하고, 그 교인들의 생명을 살려나가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으로 나가는 교회, 그래서 몸바쳐서 하나님 앞에 죽도록 충성하는 교인들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고 또 한 가지 선교사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파송해서 이 선교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불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선교를 많이 해서 구소련, 러시아나 알마타, 카자흐스탄공화국이나 중국에도 목사들을 보내서 성경을 가르치고, 구소련에도 두 번 다녀왔어요. 이런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고, 제일 크고 마지막 소원이라는 것은 통일이 되면 이북에 반드시 교회를 세워야 하겠다, 그래서 이북 내 교회 세우는 준비를 하고 있고 통일만 되면 우리 교회에서 몇 명씩이라도 선교사를 보내고 교회를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 재산이 없으면 교역자들이나 교인들의 재산 절반을 내라는 것입니다. 절반씩 하나님 앞에 바쳐서 이북에 교회를 세우고, 과거에 성도들도 많이 있는데 그 생명들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줄 알고 앞장서서 교회를 세워야 하겠다고 소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목사님의 소망을 주님께서 모두 이루어 주시기를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목사님 건강하시고요, 하나님께 더욱더 많은 영광 돌리시는 목사님이 되도록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목사님: 네, 안녕히 계세요.

사회자: 세상과 땅의 것과 타협을 부인하고 진리와 영감이 병행하는 목회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계시는 이병규 목사님! 기도로써 경건의 능력을 입고 영력을 허락받아 성도들에게 생수 같은 말씀을 먹이는 것만이 그 목회의 전부라는 고백을 통해 변질되지 않는 복음과 목사님의 끝없는 열정이 바로 이 땅의 거룩한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능력이라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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