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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배재철 <10> 수술 중 힘찬 찬송 나오자 “기적”… 감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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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수술을 위해 가장 길고 긴 비행을 했다. 수술 날짜는 2006년 4월 25일. 일본은 아름다웠다. 만개한 벚꽃을 보니 행복했다. 친구 와지마 도타로에게 “이렇게 멋진 꽃도 보고 행복해. 어쩌면 병에 걸린 게 잘된 일인지 몰라. 난 지금이 더 행복해”라고 말했다. 와지마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일본에 오기 전날까지 교인들과 함께 2박3일 기도회에 참석했다. 맨 앞줄에 앉아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는지 모른다. 기도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 저한테 다시 목소리를 주시려거든 전보다 더 좋은 목소리를 주세요.” 이런 기도는 양심에 찔려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무조건 이렇게 기도드렸다. “하나님께 가장 먼저 드리고 사용할게요.”

사실 일본까지 와 수술을 받는 것도 큰일이었다. 독일에선 의료비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일본에선 사정이 달랐다. 게다가 체재비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 걸 책임지겠다”던 와지마는 정말 다 알아서 해줬다. 특히 내 존재를 일본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수술 받기 3일 전 ‘작은 대화형 콘서트’를 열었다. 일본의 여배우들과 함께 낭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는데, 와지마는 콘서트의 입장료와 DVD를 판매해 치료비로 지원했다. 우리의 이런 우정은 일본 아사히신문에도 보도됐다. 왜 하나님께서 와지마를 내게 보내주셨는지, 또 일본에 나를 보내신 이유를 알게 되자 더없이 행복했다.

수술 당일 이시키 박사는 “예전의 소리를 되찾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수술을 한다고 해서 성대가 완전히 복원되는 건 아니다.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술은 4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와지마가 수술실에 같이 들어갔다.

나는 성대복원 수술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내가 어느 정도 높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고 가능하면 이전의 목소리에 가깝게 고음을 낼 수 있도록 성형을 하는 것이다. 부분마취를 하고 있던 내게 이시키 박사는 말을 해보라거나 고음을 내보라고 주문했다. 급기야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문득 “하나님께 가장 먼저 드리고 사용하겠다”고 기도했던 게 떠올랐다. 즐겨 부르던 찬송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불렀다. 음정과 소리가 조금은 힘 있게 나왔다. 내가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이시키 박사는 내가 호흡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며 “마비된 횡경막이 회복되고 있다. 기적”이라고 격려했다. 이후 내 이야기는 일본의 신문과 방송에서 수차례 다뤘다. 특히 일본 NHK에선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송하기도 했다.

난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전처럼은 아니다. 강하고 빛깔이 좋던 목소리는 사라졌다. 고음으로 올라갈 땐 ‘삑’ 소리가 날까 항상 조심스럽다. 예전엔 아무것도 아닌 소리들을 지금은 조심스럽게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행복하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수술하고 2년을 독일에 있으면서 자르브뤼켄 극장엔 복귀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찬양대로 봉사하고 유학생 등을 가르치며 개인적으론 훈련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008년 2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분명한 건 이제부터 진짜 내 인생이 시작됐다는 거다.

정리=노희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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