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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예배 365-7월 12일] 번지수 틀린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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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어두운 내 눈 밝히사’ 366장(통 485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출애굽기 5장 10∼21절


말씀 : 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할까요. 왕이 그러니 그의 수하에 있는 감독과 기록원도 하나같이 완고하고 악합니다. 왕의 명령이 상식적이지 않으면 상황을 봐가며 이행해도 될 것을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함인지 이스라엘 백성을 가혹하게 대합니다.(10절) 이들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푼 히브리 산파들과 너무 대조됩니다.(출 1:15∼22) 산파들이 받은 왕의 명령은 더욱 가혹하고 혹독했지만 애써 그 명령을 피해 결국 수많은 아이를 살려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감독과 기록원의 행위는 왕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습니다. 호되게 독촉하며 매질까지 합니다.(13∼14절) 긍휼과 배려의 마음을 잃은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벽돌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짚을 구해야 했습니다. 매일 책정된 벽돌 양은 변화가 없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 앞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 자조와 불안, 염려와 탄식이 쏟아집니다. 급기야 그들은 누군가에게 호소하려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백성은 제일 먼저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이 찾아간 쪽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 아주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아닌 바로를 찾아가 호소합니다. 여전히 변할 마음이 없는 그를 부여잡아 보려 한 것입니다.

번지수가 틀리니 결과도 좋지 못합니다. 바로는 오히려 그들에게 더 심각한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게으르다며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며 절기를 지키려 한 것 때문에 이런 사태가 온 것이라 일러줍니다. 지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부르짖거나 모세나 아론에게라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물었으면 좋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자신들이 당하는 것이 마치 모세와 아론 때문인 양 말하며 바로와 그의 신하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며 원망합니다.(21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바로의 작전에 말려들고 있는 겁니다. 더 당혹스러운 건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먼저 묻고 기도해야 할 분도 잊고, 오히려 자신들을 도와줄 동족이자 형제인 지도자를 원망하는 이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우리 가족들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는지 돌아봅시다. 해결하기 힘든 일을 만날 때 문제를 초월하는 하나님께 부르짖기보다 오히려 당장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더욱 의지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하는 어려운 상황이 혹 하나님께 더 부르짖고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날 기회는 아닐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 힘써 부르짖어 봅시다. 또 압니까. 오늘이 바로 그 응답을 받는 날인지.

기도 : 사람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유혹을 벗고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신웅 목사 (예장고신 총회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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