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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에 붙잡혀라

  •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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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붙잡혀라
사도행전 18장 1-11절

  히틀러의 경호원 중에 쿠르트 바그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히틀러를 신(神)처럼 숭배했습니다. 히틀러가 베를린의 한 벙커에서 자살하자 그의 모든 신념과 희망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도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던 중 그의 눈에 성경 한 권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읽었으나 점점 성경에 빠져들었습니다. 바그너는 목사님을 찾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을 평화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에 붙잡힌 바 될 때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기에 독기를 품고 있는 살인마 강도 같은 사람이 회개하고 양과 같은 사람으로 변하게 합니까. 그 말씀 속에는 말씀을 주신 그분의 인격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가운데 자신을 돌이켜 보고 회개하고 새로운 결단을 하고 변화 받고 기뻐하고 용기를 얻는 까닭은 그 말씀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격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은 감동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면 세상 광야에서 티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 사라지는 존재인줄 알았던 사람이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게 아니었구나! 만세 전에 나를 예정하시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를 불러주시고 나의 모든 삶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로구나! 오! 하나님!'하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앞날에 풍성한 것으로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코 변화된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의 계획과 꿈은 분명하고 확신에 차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감동으로 꽉 차있습니다. 또한 '붙잡힌다'는 말은 억압을 받는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끌려가는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이 수반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에는 변화가 뒤따릅니다. 우리의 인생에 여러 만남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다릅니다. 거기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청년 사울이 변하여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합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대적의 훼방이 있을 때 담대합니다. 확신이 있습니다.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수행합니다. 거기에는 주님의 동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자의 삶 속에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과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충만하심과 축복이 들어있습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니까 위대한 사도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붙잡혀서 쓰이기 시작하니까 과거의 사울이라는 청년이 전혀 달라진 것입니다. 가는 장소마다 말씀을 전하면 병든 자들이 일어납니다. 심령들이 회개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온 소아시아에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바울이 예수를 전하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니까 그 때부터 그들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는 인생의 방향 수정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우리는 분명히 방향의 인도를 받습니다. 수없이 많은 비행기가 공중을 납니다. 그러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컴퓨터에 목적지와 방향이 입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동으로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더 정확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고, 우리가 그 말씀에 붙잡히기만 하면 내가 무엇을 하며,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방향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인생의 방향이 수정되었습니다.

둘째는 인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그 사람의 지식이 달라집니다. 생각도 말도, 가치관도, 목적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땅이 산성화되면 열매를 잘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름을 자꾸 주면 점점 알카리성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다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인격적으로 부딪치게 되면 그 말씀이 나를 근본적으로 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에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지만 여호와의 신으로 되게 하는 능력이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렇게 강퍅하고 잔인하고 사특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에 딱 붙잡히니까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언어와 행동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언어가 바뀝니다. 부정적이고, 좌절과 낙심으로 꽉 차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됩니다. 아멘이지요. 가능하죠. 확신합니다. 이렇게 언어와 행동이 바뀝니다. 세상을 향하여 경거망동하는 행동이 고쳐지고 주님 앞에 겸손한 자로서의 행함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영감이 공급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몇 끼만 안 먹어도 힘이 빠집니다. 만사에 의욕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 금방 힘이 생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음식이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음식 자체가 힘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소화가 되면 에너지를 줍니다. 위에서 녹아져서 양분이 들어갈 때 그렇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붙잡히는 순간에 영접인 공급을 받습니다.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힘과 소망을 얻습니다. 전에는 성경을 읽으면 수면제를 먹는 것과 같이 졸음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감격과 눈물과 힘을 얻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깨달음의 에너지가 온 것입니다. 말씀을 읽다가 무릎을 칩니다. 아멘합니다.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됩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영감이 공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나의 주라는 것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교회에 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기가 부끄러웠으나 이제는 입에서 그리스도가 증거됩니다. 담대함이 있습니다. 확신에 차서 권면합니다. 그 증거와 권면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에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힐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믿음의 역사와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살전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입니다.(히4:12) 그러므로 그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 붙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붙잡히게 될 것입니다.

인도와 깨닫게 하시는 성령께 회개하고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에 임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치 못함이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함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붙잡힌 자들을 보면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추한 죄인모습을 보고 통회 자복합니다. 회개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에 붙잡혀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찢는 돌이킴과 죄성을 지닌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우러나오는 탄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주세요 나는 깨닫지도 못하고 장래 일도 잘 모릅니다. 분별력이 없습니다. 담대하지도 못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아실 것입니다.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용기 있게 담대하게 결단을 내리게 될 때에 포기하는 자에게 주시는 승리의 붙잡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아름다움 생을 펼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

한태완 목사 <예화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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