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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최일도 <25> 네팔에선 ‘빵퍼’… 매일 결식 초등생 300명 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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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다일공동체(네다일)는 현지인들이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 원장인 부번 팀세나 형제는 한국에 근로자로 와서 일하다가 예수를 만났다.

어느 날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어긋나 청량리역 광장에서 서성이다 배가 고팠던 그는 무료급식소 밥퍼 단골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저 같은 외국인에게도 밥을 주나요”라고 묻자 “당연하지,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밥퍼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울컥한 그는 도대체 누가 이런 선행을 베푸는지 궁금한 마음에 물어물어 다일공동체 교회를 찾아왔고 결국 교회 최초로 외국인 신자가 됐다.

이후 근로계약이 끝나고 본국인 네팔로 돌아갔을 때 그는 종교가 다른 가족들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도리어 예수님을 열심히 전하고 다녔다.

현지 한국 선교사를 통해 그 소식을 듣자마자 팀세나를 한국에 초청해 경기도 가평군 묵안리의 다일 DTS 훈련원에서 철저한 제자도를 교육받게 했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까지 한국으로 데려왔고 온 가족이 훈련받은 후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네팔 형제들 꿀 바드로 목사와 쏘남, 꾸말 형제 등도 제자도를 훈련받고 돌아갔다. 현재 포카라 다일교회 담임인 쿠살 목사 등은 네다일의 소중한 일꾼이자 미래다.

2008년 1월 네팔 카트만두의 도시빈민촌인 마누하르 강변에 천막을 치고 창립예배를 드린 이후 오늘까지 네다일이 걸어온 길은 드라마틱하다. 빈민촌에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밥퍼나눔본부를 지었고, 2009년 이를 본 영화배우 유지태 형제가 나와 함께 현장을 찾아가 ‘지태 다일유치원’을 건립토록 지원했다.

2012년부터 코이카 지원사업으로 대안학교 ‘다일호프스쿨’을 시작했다. 빈민촌 어린이들과 인도 터라이 지방에서 올라온 불가촉천민들에게 교복과 학용품을 지원하며 기초교육을 하고 있다. 그림 그리기, 율동, 게임 등으로 시작해 위생 교육과 네팔어, 수학, 영어 등을 가르친다. 이후 정규 학교로 보내고 있는데 네팔 정부로부터 가장 우수한 NGO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 지원을 받아 네팔 여성들에게 재봉틀 기술을 가르쳐 대안생리대를 만드는 일도 했다. 그 생리대들은 이제 캄보디아, 탄자니아, 우간다 등으로 보내고 있다.

2014년 4월부터는 네팔 포카라 빈민촌에 있는 사하라 초등학교 학생 가운데 결식아동을 대상으로 ‘빵퍼 사역’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매일 300명에게 빵을 나누고 있으며, 현재 빵 공장 건축을 준비 중이다. 포카라 다일교회에서는 현재 어린아이를 포함한 교인 200여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마을 주민 90%가 힌두교 신자임에도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에 절로 눈물이 나온다.

2015년 4월 9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국내 NGO 가운데 가장 먼저 진앙지인 신두팔초크에 도착해 구호활동을 펼쳤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네다일의 현지 스태프와 당시 원장이던 최홍 목사 덕분이다.

그때 무너진 예배당을 복원시켜 달라며 눈물로 간구하는 네팔인 목사들을 만났다. 주님의 계획이라 깨닫고 진앙지 내 여덟 곳에 무너진 예배당을 다시 건축했다. 카트만두와 포카라에도 각각 한 곳씩 교회를 세웠다. 현지 성도들의 순수하고 환한 웃음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올해 안에 신두팔초크 강가 언덕에 ‘기수다일고아원’을 세울 예정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이요, 고아들의 꿈을 키우는 집을 완공해 봉헌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정리=이사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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