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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전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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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역사 왜곡” “고구려 역사” “독도” “일제잔재” 등등 작년부터 시작된 역사에 관련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미와 진실을 알아야한다는 의미에서 과거 역사에 왜곡된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그래서 친일파를 밝힌다는 뜻을 강력하게 발표한 바 있다.

또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수정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부랴부랴 고구려 역사학자들이 고구려 역사를 학문적으로 정리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독도에 관련된 여러 과거 기록에는 “Japan Sea”라고 쓰인 부분들이 있지만 우리는 “동해”라고 하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분명히 하려고 우리 모두는 함께 노력한다.

그리고 이번 5월에 들어 일제 잔재에 대한 상품들의 이름이나 여러 형태의 언어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사용된 여러 언어 수정이 이뤄지게 될 것 같다. 이러한 역사바로잡기 이면에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감정이 깔려 있다.

영국과 프랑스 간에 눈에 드러나는 감정이 과거 역사에서 빚어졌다. 잊을 수 없는 ‘100년 전쟁’ (1337-1453)까지 민족적 감정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영국의 색깔은 적색이었고, 프랑스의 색깔은 청색이었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것은 알렉산더 뒤마 (Alexander Dumas)가 쓴 ‘삼총사’(The Three Musketeers)에서나 최근에 나온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을 보면, 프랑스 군인들은 청색 옷을 입는 것을 볼 것이다.

이에 반해 영국 군인들은 사자왕 리처드이후 적색을 입는다. 멜 깁슨이 감독ㆍ주연한 ‘패트리어트’ (Patriots)라는 영화를 보면, 영국 군인들이 입은 색깔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역사적 감정을 지금까지 내내 갖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그 갈등을 한 국가 안에서 갖고 있는 캐나다를 들 수 있다.

현재 캐나다에는 두 가지 언어를 모두 사용한다. 그래서 캐나다 동부 도시들을 방문할 때 영어를 사용하면 즐겁게 맞이하지 않는다는 것은 방문객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에 가면 프랑스어를 영국에 가면 영어를 사용해야하는 불편을 직면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역사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반드시 언급되고 간과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있다. 역사연구와 편찬에 관한 것이다. 역사연구에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객관적 평가’가 가능 하느냐이다. 과거의 역사기록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주관적 역사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고, 해석하는 자들이 주관적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어용적”(official)일 수밖에 없다.

어느 해석에서라도 모든 사람들이 ‘객관성’(objectivity)을 추구하지만 ‘주관성’(subjectivity)이 없는 역사해석은 있을 수 없다. 단지 주관적 해석을 줄이고 객관적 해석을 늘일 수밖에 없다. 가능하다면 주관적 해석을 조심스럽게 자제하면서 객관적 해석을 확대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대중들은 역사에 관한 관심을 대체적으로 역사물 드라마에서 잘 표현된다. “불멸의 이순신” “제5공화국” 등 여러 역사물이 대중의 인기를 받고 있다. 이러한 역사물 역시 제작진들과 각본을 쓴 사람이나 원작 저자가 보는 역사관이 늘 그 가운데 내재해 있기 때문에 역사적 해석이란 쉽지마는 않다. 과거의 이미지보다도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말 객관적 역사평가나 역사해석이 세상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평가하기 때문에 여러 요구나 필요가 역사해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객관적 역사해석에 꼭 필요한 것은 객관적 역사자료이다. 그런데 절대적 역사자료는 불가능하다. 객관적 역사자료는 없다는 의미이다. 자료가 없다고 해서 객관적 역사해석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객관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에 와서 “맥아더 동상” “인천공항 100주년 기념탑” 등 일제 잔재를 없애려는 운동이 민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단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있는 자료마저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과거이기 때문에 없애버리고 자랑스러운 과거이기 때문에 유지한다는 것만큼 역사적 왜곡이 없을 것이다. 도움이 되는 것만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는 것은 버린다는 식이다.

다시 말하면, 달면 마시고 쓰면 뱉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역사는 있었던 것이다.” 있었던 과거를 없애려고 하는 운동은 또 다시 다른 역사적 왜곡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황과 상황 그리고 요구와 필요에 의해 역사해석과 역사요청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역사해석은 곧 역사관으로 연결되고, 역사관은 가치관과 인생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인의 가치관은 역사해석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광대처럼, 역사를 교묘하게 왜곡하려는 대중적 요구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에 빠진다. 역사적 유물을 그대로 두었으면 한다.

어떤 역사적 유산이라도 우리의 역사이다. 그것이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한다고 해석하여 교훈을 삼고, 그것이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계속하여 지켜 나갈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있는 역사를 없애는 것은 미래를 망각하는 자들이다. 없앤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 자체를 지워버리는 역사적 실수를 범한다. 바라기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여러 역사적 유물을 그대로 두었으면 한다.

성경 역시 역사라는 큰 범주에서 해석할 수 있다. 성경에는 부끄러운 부분들이 있다. 낯이 뜨거운 내용들이 있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수천 년이 내려오면서도 진리 자체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부정적이라 하여 교훈을 받고 긍정적이라 하여 지켜 나가는 것이 올바른 성경해석 방법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다.

이 말씀을 우리의 정황에 따라 해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객관적 해석을 중심으로 주관적 해석을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객관적 해석을 바탕 위에서 주관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객관적 해석을 통해 주관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석들의 도움을 받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해석, 즉 주관적 해석을 점검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매우 염려되는 시기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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