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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독교와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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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물길의 흐름을 역류하지 못하는 연어는 이미 죽은 것”

- 추부길 목사 (웰빙교회 담임, 한국가정사역연구소 소장) 

요즘 한국의 정치를 가리쳐 '포퓰리즘(populism)의 극치를 보이는 정권'이라고 말한다. '포퓰리즘'이라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정치행태를 말하는 것으로, 여러가지 허울좋은 수사를 내세우기는 하지만 원칙이나 일관성도 없이 정치를 하는 것을 일컫는다.

기회주의적인 이데올로기라고 말하는 이 포퓰리즘은 그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나라는 없고 인기에만 집착함으로 개혁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가지고, 반시장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책을 펴서 대중을 충동하는 논리를 내세움으로 표에만 집착하는 행태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없고 정권만 유지하려는 추악한 욕심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국고와 재정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이 추락하고 나라 전체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당연히 저성장과 함께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도 보면 포퓰리즘 정권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빌라도 정권일 것이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예수님을 사형시켜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소리를 지르게 되니까 그것을 군중의 소리로 알고 결국은 진리를 학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한마디로 기득권 세력들이다. 시대의 주류라는 것이다. 그들이 여론을 교묘하게 형성하여 마치 그들의 의견이 세상의 전부인양 호도하고 그것을 지고의 선(善)으로 포장한다. 빌라도는 결국 포장된 여론에 기가 질리게 되고 진정한 진리를 포기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결국 이스라엘은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포퓰리즘 정권의 말로이고 역사적 범죄이기도 한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포퓰리즘의 망령이 이 시대의 기독교 안에서도 서서히 자리잡고 있다는 데 있다. '비진리'가 교회 안에 성큼 들어와 있는데도 특정단체나 특정계층의 반발이 두렵기 때문에 감히 발언도 못하고 못본체 해 버린다. 그저 입 다물어 버리는 것이 편해서 그럴 것이다.

인본주의와 뉴에이지적 흐름이 이미 한 발을 들였는데도 시대의 흐름이겠거니 하고 침묵해 버린다.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그들이 주류가 되어 있고, 시대적 가치로 정착되어 가는듯 하다.

심지어는 기독교의 주요 인사들마저도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대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에 눈을 맞추고 자신들의 인기 관리에 급급한다. 그러니 비진리가 판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화되지 않고 시대와 영합하지도 않는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할 때에 진리는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해야만 한다. 자신의 가치관으로 성경을 덧씌우고, 자신이 편리한대로 성경을 적당히 활용한다면 이건 사악함의 극치를 이룬 행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목사라는 자가 북한을 찬양하고 차라리 그때 통일이 되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도 아버지라고 불렀던 하나님의 이름이 왜 이렇게 난도질 당해야 하는 것일까? 남편의 머리됨이라는 구절이 왜 이렇게 수난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미국에 태풍이 불어 닥침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때 왜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생겨날까?

시대가 혼란할수록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 생각을 버리고, 내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 생각으로,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재정립을 해야만 한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덜하면 어떠한가? 언론의 집중을 받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기자들에게 인기가 없으면 또 어떠한가? 결국은 다 부질없는 짓이 아닌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 시대에 당당하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당하는 분들도 있거늘, 어찌 자신의 인기를 위해 포퓰리즘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가?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되찾자! 하나님이 생각으로 돌아가자! 시대의 흐름에 분명하게 맞설 수 있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도한 물길의 흐름을 역류하지 못하는 연어는 이미 죽은 것이다. 미물인 연어도 그러하거늘 우리가 그러지 못한다면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인가? 할 말은 하고 살자! 진리를 말하는 연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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