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야만에서 경외로 돌아서라

첨부 1


- 추태화(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신비하다. 성은 얼마나 신비한 것인가! 성은 생명의 신비에 속하여 인간의 손으로 조작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성을 통해 모든 생명체가 다음 세대를 이어가고 생명을 보전해 간다. 그 과정에서 영적·육적 존재로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 인간의 놀라운 사랑이 성의 신비에 기초하고 있다. 호르몬 작용 이상인 것이다. 그래서 성은 함부로 대해선 안되는 경외스러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희한하다. 우리 사회에 성에 대한 오해와 곡해가 점점 심해져 간다. 인간의 죄로 시작된 미숙함 때문에 성을 오용한 사례가 오랜 과거부터 알려져 있지만 우리 시대의 경우는 정말 참을 수 없는 방만함에 몰락해 있다. 성이 이렇게 무참하게 신음하고 있는 시대는 또 다시 없을 것이다. 성을 경시하고 짓밟다가 드디어는 성을 사고팔고 심지어 시장에 내거는 상품처럼 소비되고 있다.

부끄럽다. 그 결과 어른들이 순진무구한 청소년들에게 성매매와 성추행을 저지르고 직장과 학교 등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아야 하는 어른들의 현실이 마냥 부끄럽다. 그리고 속죄한다. 성폭력으로 희생된 아이들이 보내야 했던 그 공포의 시간에 같은 어른으로서 태평하게 딴청이나 부리지 않았나 머리 숙여 속죄한다.

아무리 ‘열린 시대’ ‘해체의 시대’니 부르짖지만 성을 소비재로,노리개로,욕망의 해소 정도로 생각하는 이 시대의 가치관이 낙망스럽다. 성에 대한 이 시대의 태도는 야성(野性)이 아니라 야만(野蠻)이다. 야만을 미화하지 말라. 지금 인간 영혼이 얼마나 동물적으로 변질되어 있는가. 아니 동물들에게서도 존재하지 않는 성폭력이라는 야만행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다니 개탄스럽다. 과연 그러한 야만성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동물보다 나은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가.

돌아가야 한다. 성은 지배하고 착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성은 보호하고 보전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에 맞게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 자연을 착취한 결과로 자연의 반격,자연의 역습이라는 재앙이 지구촌 곳곳에 들이닥치고 있듯 성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을 두려워해야 할 때이다.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롬 1:28) 더 심각한 위기가 닥쳐오기 전에 성을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상처 입은 성이 가공할 반격을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