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감사와 감시

첨부 1


- 김종철 (충남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늘사랑교회)
 
“남편이 나에게 그렇게 잘 해 주는 데에도 난 그런 것 자체가 싫어요.” 시댁 식구들도 잘해 주고 남편도 자기를 끔찍이 위해 준다는 데도, 뭐든지 자기 방식대로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는 남편이 싫어, 아이들 데리고 외국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하는 어느 부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얼마 전에 결혼 후 처음으로 자기 남편이 처자식의 해외여행을 허락해 주었는데, 집을 떠나니까 너무나 홀가분하고 신나서 살맛이 나더란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 불황 속에서도 안정된 직업을 가져 돈을 무척 잘 벌고 사회적 지위도 높고 어느 종교에 심취해 있어 바람피울 걱정도 없는 일류 남편이다. 그런데도 흠잡을 데 없는 남편 옆에 가기도 싫어 그저 그 남편을 떠나는 게 소원이다. 이 중년 여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자리 잡고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아도 돈 걱정 없이 사는 중류 혹은 상류층 여인의 사치스런 푸념만으로 돌릴 수 없는 뭔가가 꼭 있을 것만 같다.

그녀와 단 한 번의 대면이나 대화도 없이 그 여인의 속사정을 지레 짐작한다는 것은 유능하고 노련한 전문가로서도 불가능한 일 일것이다. 더구나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그녀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음(Impossible)’이 분명하다.

‘불가능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Impossible”에서 ’를 첨가하고 띄어쓰기를 한 번만 하면 “I’m possible”이 되어 ‘가능하다’라는 정반대의 뜻을 갖는 가능성을 열어 놓듯이 말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한글 단어 ‘감사’와 ‘감시’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에서 가로 선 하나만 떼면 ‘시’가 되는데, 같은 ‘감’자를 앞에 둔 ‘감사’와 ‘감시’라는 두 단어의 뜻도 꽤나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니 말이다.

부부 사이에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나 성격, 태도, 언행 등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면 서로를 번뜩이는 눈으로 자주 감시하게 될 것이다. 거꾸로 서로 눈에 불을 켜서 감시만 하던 부부 사이의 갈등이 하나씩 해결되면 서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솔솔 생기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스스로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유 희구의 본능이 있는 인간이 감시를 당할 때 그 감시망을 벗어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감시자가 외아들/외동딸에게는 아빠와 엄마라는 네 개의 눈동자가 될 수 있고, 부부에게는 남편/아내라는 두 개의 눈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밤낮 없이 쉬지 않고 흰자위를 번뜩이는 섬뜩한 눈길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떤 수를 쓰든지 그 시야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엄청난 감사를 하게 될 것이다.

화재, 사고, 기상재해, 납치나 유괴, 불치병 등이 발생하게 되면 자기 배우자가 그저 살아 있기만 해달라고 그렇게도 갈망하며 빌어댈 우리들인데도, 부부가 별 탈 없이 일상생활을 같이 하게 되면 서로가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조차 잃어버리곤 할 경우가 많은 것 같다.

TV, 영화, 연극, 책, DVD, 광고 등에서 남녀의 애정 장면을 보거나 길거리에서 섹시한 미녀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성적 흥분이 일어날 때, 그 흥분을 잘 조절하고 다른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하도록 승화할 수 있는 남자가 성숙한 남편일 것이다.

직장이나 길거리에서 한껏 멋을 부린 여인들로부터 색다른 매력과 짜릿한 흥분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도 자기와 오래 살다보면 지금의 아내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아예 그림의 떡을 넘보다 다른 가정을 깰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 아내를 매력 있게 만든 후에 그 아내와의 멋진 밤을 설계하는 게 좋지 않을까.

반대로 저렇게 핸섬하고 매너 좋은 남자의 품에 단 한 번만이라도 안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내가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한류 열풍을 몰아온 겨울 연가의 남자 주연 ‘욘사마’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까지 건너오는 극성을 부리는 일본 여자들처럼 행동하지 말자.

차라리 일상 속에서 자주 남편의 기를 살려 주고 존경하여 자기 남편을 그런 멋진 남자로 만들어 가는 것이 평범한 아내의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일본이나 중국의 열성 여성 팬들이 자기 나라를 방문하는 배용준을 향해 애정 표현을 해대어도, 그의 정식 아내가 되지 않는 한 결국은 배용준의 품을 독차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드라마의 주인공과 현실 속의 한 인간인 한국 탤런트를 혼동하여 자기만의 이상형을 그에게서 찾고자 하는 투사 심리가, 다 컸거나 출가한 자녀들 둔 부인들에게서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배우자가 살아 있다는 것,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나를 떠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함께 살고 싶어 한다는 것, 이런 것만 해도 엄청나게 감격스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자기 배우자에 만족하고 인생길을 동행해 주는 그 존재 자체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둘이 함께 걸어가는 삶 속에서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서로에 대한 감사가 사라진 지 오래된 부부들은 행여나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런 부부들은 매일 독수리 눈과 개 코를 한 채 서로를 감시하느라 쓸데없는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감사할 일이 생겨서 감사하기보다는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감사할 거리와 이유가 더 많아진다는 점을 터득한 부부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감시를 감사로 바꾸는 능동적인 부부가 더 많아지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참 좋겠다.

건강과 생명(www.healthlife.co.kr) 제공.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