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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들어야 할 말, 듣지 말아야 할 말 (왕상 1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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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야 할 말, 듣지 말아야 할 말 ( 열왕기상 12:6-15)
설교자 : 김형준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남쪽 130Km 지점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제 4호 원자로에서 세계최대의 참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사고로 현장에서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그것보다도 누출된 방사능으로 6년간 발전소 해체작업에 나선 노동자 5,722명과 이 지역에서 소개된 민간인 2,510명이 사망하였고 43만 명이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환경에 잘못된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사고 뒤에 미국의 어느 여행사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방문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서 손님을 모집하였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방사능에 노출되어서 각종 암이나 질병 등을 얻게 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인간과 환경에 얼마나 해로운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지에 대해 충분한 교훈을 얻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사능의 누출보다도 더 심각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입니다. 방사능은 오염된 지역에 가지 않고 피하면 되지만, 말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지역 개념이 없어 피할 수 없습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들리는게 말입니다.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면 상상할 수 없는 큰 창조적인 힘을 가지게 되지만, 나쁜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면 방사능보다도 더 심각한 피해를 주게 됩니다. 일시적인 시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유익이 되는 좋은 말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반대로 나를 병들게 만들고, 사실을 왜곡시키는 말을 듣는 것은 나 자신뿐 아니라 함께하는 다른 사람에게도 고통과 아픔을 주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세상을 떠난 후에 르호보암이라는 아들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솔로몬 당시 강제 동원되었던 일로 지치고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대변해서 여로보암이 왕에게 선처해 줄 것을 부탁하게 됩니다. 이때 르호보암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상의합니다. 연세가 많은 원로들은 백성의 고통을 이해하고 저들의 호소를 들어주어야 된다고 하는 반면에 르호보암 왕과 함께 자란 젊은이들은 백성들을 더욱 혹독하고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조언하였습니다. 이때 르호보암은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어서 더욱 혹독하게 백성들을 다루게 됩니다. 그 결과 12지파 중에 10지파가 반란을 일으키며 북 이스라엘을 세우고 르호보암 왕 곁에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되는, 즉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르호보암 왕 같이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어 불행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라가 나누어지는 것과 같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들어야 할 말을 들어서 복되고 보람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르호보암 왕의 작은 결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습니까? 개인의 삶뿐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를 바꾸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나누는 중요한 갈림길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이 말하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무슨 말을 들었는가’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을 듣는가 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말, 말에 따라 우리 생각과 행동이 변합니다...>

첫째,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과 행동이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13-14절 말씀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왕이 포학한 감정으로 백성에게 더욱 과중한 멍에를 메우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왕이 자기와 함께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의 내용을 보면 르호보암은 마음에 아무런 결정을 내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나누어져 있는 반란군의 지도자였던 여로보암이 애굽으로 도망갔다가 돌아와 르호보암 왕을 만나러 왔습니다. 이때 왕은 삼 일만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고 이들은 돌아갔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르호보암의 시간을 달라하는 요청은 매우 진지했고 설득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삼일 간의 시간 동안, 르호보암 왕은 백성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 원로들의 말보다는 더욱 엄하고 강압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말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1996년 4월 뉴스위크지 사회면에 났었던 어린이의 뇌에 대한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태어날 때 수억 개의 신경 줄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릴 때 듣고 보고 경험한 것에 따라서 회로가 만들어지는데, 지능과 가치관 그리고 습관이 형성되고 언어 감정 음악 수학 등의 재능이 그물망처럼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 하는 가정에 음악 하는 자녀가 나오기 쉽고, 운동하는 부모를 둔 자녀가 운동선수가 될 가능성이 많고, 의사 가정에서 의사가 나올 가능성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한 번 경험할 때 마다 하나의 회로가 생기고, 같은 경험이 반복될 때 마다 회로가 굵어지고 섬세해진다는 것입니다. 가치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것을 보면 좋은 것에 대한 회로가 생기고,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나쁜 것에 대한 회로가 생기면서 결국 그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학에서도 증명되고 있는데, 바로 직전에 무슨 말과 무엇을 보았느냐가 다음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원로들보다 젊은이의 말을 더 선호하고 들었다는 것은, 이미 어릴 때부터 아버지 솔로몬을 통해 백성들을 동원하여 궁궐을 짓는 등 엄하게 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들은 대로 행동합니다.

미국내 한인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언어 교육에 대해 이중부담이 있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아이들은 영어를 쓰고자 하고 부모들은 한국말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학교로 데려다 주면서 하는 친근한 표현으로 ‘다 왔다! 이놈아, 내려라!’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자라는 동안 한국말을 잘 사용하지 않아서 영어 중심의 의사소통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 친구가 미국을 방문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는데 공항에 태워줄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 친구를 공항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공항 가는 길 내내 침묵이 계속 되었고, 그러는 동안 마침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한국말로 다 왔다고 무언가 말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인상적으로 확실하게 남아있는 한국말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저씨를 보고 친절하게 예의를 다해서 웃으면서, ‘다 왔다! 이놈아, 내려라!’

무엇을 말합니까? 무엇을 듣고, 언제 들었고, 얼마나 자주 들었느냐 하는 것이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침을 말해줍니다.

여러분의 하루 일과 중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습니까? 어떤 대화를 가장 많이 합니까? 그것에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움직입니다. 그렇게 행동합니다. 나아가 그것을 보고 자라는 우리의 자녀들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들어야 할 말을 듣고 사는 것 그것이 복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일날 갖는 말씀과 찬양의 시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교제의 모습은 우리의 가치관과 삶과 행동을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하고,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사무엘은 사사 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전환기의 지도자입니다. 사무엘의 생애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바로 기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기도했고 자신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기도에 대한 유산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요? 바로 자기 어머니 한나의 기도하는 삶을 어릴 때부터 보았고, 그 기도하는 음성을 들었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많이 듣습니까? 들리는 대로 듣지 마시고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듣는 것으로 나의 삶에 영향을 받고, 나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 즉, 자녀에게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 그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서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듣는 말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위한 말씀을 준비해주십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주님은 말씀해주시고 평안하고 즐거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어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말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다면, 삶의 놀라운 전환점을 놓치지 않게 되고, 나아가 역사를 바꾸어 놓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르호보암 왕도 선택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원로 신하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젊은 친구들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인가? 여기에서 르호보암은 젊은 친구들의 말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꼭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의 말에 있든 상관 없습니다. 르호보암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충심으로 섬길 경험이 많은 원로신하들을 잃어버렸습니다. 10지파가 떨어져 나가고, 민족이 양분되었습니다. 서로가 죽이고, 죽는 원수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그의 잘못된 선택은 왕으로서 바른 사명을 감당하고 민족을 다시 회복시킬 중요한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 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3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하나님 음성 듣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소리를 듣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면 르호보암 왕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이었을까요? 7절 말씀을 보시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여기에서 왕이 백성의 종이 되어 섬긴다는 말은 여호와 신앙에 입각한 이스라엘의 전통적이고도 이상적인 군주관이 반영된 말입니다. 즉 왕은 백성들에게 봉사할 종으로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솔로몬이 저지른 죄악과 부패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사명을 다시 잘 감당할 기회를 그는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원로 신하들의 말속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면 역사는 바뀌어졌을 것입니다. 그의 생애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을 세우신 온전한 목적을 이루는 주인공이 되었을 것입니다.

에스더는 3일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중요한 말들이 나의 주변을 꽉 채울 때,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내는 시간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평소에 기도와 묵상을 했던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이 얼굴이 상한 이유를 물었을 때, 대답하기 전 잠깐 묵상했다고 했습니다. 긴 시간도 필요 없습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할 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의 음성은 듣기 위해 준비된 사람에게 들려지고 발견되는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 중에 제인 애덤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시카고 부호의 딸로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척추에 병이 생겼습니다. 인생 중 가장 좋을 때 불치병을 갖게 된 그의 마음에는 많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런던에 휴양차 가게 되었을 때에 우연히 빈민굴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땀 흘려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이들을 위해 살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75세로 죽을 때까지 그는 시카고의 빈민굴에서 낡은 집을 탁아소와 가출소녀의 숙소로 돌보며, 가르치고 섬겼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힐하우스입니다. 그는 1931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실패가 들려주는 말, 위기가 들려주는 말, 고통과 아픔이 들려주는 말이 내게 들릴 그때가 중요한 선택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들어야 할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선택해야 했을 때, 자신의 삶을 다시 결단하여 무너진 역사와 삶을 회복할 중요한 기회임을 깨달았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어버린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역사에 민족을 분열시킨 왕으로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말, 우리 영혼에 영향을 줍니다...>

세 번째 우리는 왜 들어야 할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가려서 들어야 할까요? 그것은 말이 우리 영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말이 행동이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쉽게 인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어떻게 영적인 세계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은 재미있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 로서 말미암아 난 것들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라’ 르호보암 왕이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원로신하들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나온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을 하고 하지 않고, 또 이런 말을 하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은 내 영혼의 운명을 결정하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에 앞서 복되고 선한 것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며 어떤 말을 들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3일간의 시간 동안 기도하거나 주의 음성 듣기를 구하지 않았던 르호보암 왕을 하나님은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주님의 음성 듣기를 원치 않고 자기의 정욕대로 하고자 하는 사람은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나 결과는 파멸이요 멸망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선택과 결정 사이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영적으로도 승리하며 구원을 이루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0:1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서 영혼의 문제와 관련되어 변화가 일어납니다. 불신과 미움과 두려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누고 듣는 것은 우리 마음을 악한 영들이 활동하기 좋은 교두보로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미워하고 불평하고 판단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 입과 귀를 열고 상대방이 내게 쏟아 붓는 쓰레기를 삼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 영혼에 건강함을 주며 생명을 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 생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읽으며 들으며 경험하는 일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콩나물을 길러보셨습니까? 밑에 구멍이 난 독에 콩을 담아놓고 물을 줍니다. 그러면 물이 밑으로 다 빠져서 물기만 남고 다 밑으로 떨어집니다. 신기한 것은 물이 다 빠져나가는데도 콩나물은 자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나오면서 아무런 영향이나 변화가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말씀을 듣고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똑같이 우리도 이웃들과 가족들에게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지혜롭게 복음을 계속 던지고 듣게 하면 언젠가는 저들의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영혼이 열려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듣느냐 하는 것이 내 영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아 소망과 믿음과 사랑의 말씀을 자주 들으십시오. 서로 믿음의 언어로 나누십시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영혼과 연관이 되어있음을 깨닫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마이카란 나라에는 몇 해 전에 노예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시켰습니다. 그때 어느 구석진 곳에 살던 노예들 중 일부는 이 소식을 듣지 못해 자신들의 신분이 법적으로 자유로워 졌는데도 모른 채 몇 해를 그냥 보내었습니다. 노예제도 자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희미해질 때까지도 그들은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주인들이 고의적으로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해방된 노예들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들이 노예로 살았던 것처럼 많은 고생과 수고를 하였습니다. 사실상 그렇게 살 필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오늘 나의 삶에 진정한 변화가 없이 옛 생활이 반복되고 매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 죄를 사하셔서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자유함 주신 진정한 복음을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 듣지 못한 것입니다. 이 분명한 소식을 듣지 못할 때 우리는 자마이카의 노예처럼 변화된 신분을 알지 못하고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 하게 하는 복음의 말씀이 귀에 와 들리도록 마음을 여십시오. 세상의 어떤 이야기보다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사랑의 음성듣기를 사모하십시오. 자유케 하신 복음이 내 귀에 들릴 때 나는 자유자의 신분에 맞는 복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찰스 스탠리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라는 책에서 왜 우리가 하나님 음성 듣기를 사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몇 가지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다른 음성을 듣게 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우리들은 사탄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게 된다. 셋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을 때 우리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넷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 우리들은 영이 아닌 육체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우리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변명하기 시작한다. 여섯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면 그 결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곱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가장 좋은 것을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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