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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받은 줄로 믿는 신앙 (막 1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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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줄로 믿는 신앙

마가복음 11장 20~25절

  지난주에 저의 셋째 딸과 두 손주들이 이동환 목사를 따라 케나다로 공부하러 떠났습니다. 셋째 딸네는 오랫동안 저희 집에서 함께 살다 갔는데, 떠나기 전에는 손주들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왜냐하면 집안을 어지럽히고 울고 말썽을 부리고 시끄러웠기 때문에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꼬마들이 “빠이 빠이”하고 차문을 닫고 막상 출발을 하고 나니까 슬프고 섭섭한 마음이 솟구치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것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항으로 같이 가는 저의 집사람한테 전화를 걸면서 흐느껴 울었더니 저의 집사람도 같이 울었습니다. 역시 우리가 이젠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녀 슬기가 할머니가 우는 것을 보고 “왜 우세요?”라고 해서 “할아버지가 너희들 보내고 나서 지금 울고 계신단다”라고 했더니 “안 믿어지는데, 안 믿어지는데, 할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우리가 간다고 울어요?”하면서 계속 안 믿어진다고만 하더랍니다. 왜냐하면 제가 못된 버릇을 고쳐 준다고 한두 번 큰소리로 야단도 치고 회초리로 때렸더니 그 일곱 살짜리 손녀는 할아버지가 눈물도 사랑도 없고 인정도 없는 사람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를 너무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일로 깨달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심정을 너무나 모르고 신앙 생활하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습니다”하면서도 참 믿음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능력이 나타나는 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 받기 전에 받은 줄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나서 혹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갈 때 응답이 오기 전에 받은 줄로 믿어야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저주하셨는데 그 다음날 보니까 그 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놀라서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랐나이다”라고 말하니까 주께서 “이룰 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하고 또“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너희들이 내가 어제 이 나무를 저주했을 때에는 시퍼렇게 그대로 있으니까 속으로 안믿었지? 자 봐라, 오늘 뿌리까지 시들시들 말라 죽지 않았느냐?” 눈에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살아 역사하는 참 믿음은 응답을 받기 전에 받은 줄로 믿는 것입니다.
  기도로 병 고침 받는 것도 하나님이 고쳐 주실 줄 믿고 기도하고 기도한 다음에는 “하나님이 지금 내 병을 고쳐 주셨다. 지금 쑤시고 아픈 것은 마귀의 거짓말이다” 하고 고침 받은 줄 믿으면 고침을 받는데, 기도하는 사람이나 기도 받는 사람이나 “이제 두고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만 “믿습니다”하지 말고 기도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지금 응답해 주시고 계심을 믿습니다”하고 응답 받은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셨을 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고 말씀하셨는데도 믿지 않는 것을 보시고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 앞으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하시고 돌을 놓게 하신 다음에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내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니이다” 그리고 나서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살려 주셨습니다.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받은 줄로 믿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잘 받는 비결 중에 하나가 미리 받은 줄로 믿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로마서 4장 20절)고 했습니다.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반신반의하고 기도 받으면 안됩니다. 야고보서 1장 5-6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절이 중요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 군대를 모아 유대의 여호사밧왕을 치러 왔습니다. 기도의 사람 여호사밧왕은 애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고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하는 음성을 듣고 받은 줄 믿고 거룩한 예복을 입고 “여호와께 감사하세”하며 찬송을 부르며 나아갔더니 하나님이 복병을 두어 연합군대를 다 쳐서 멸하고, 연합군대가 서로 치고 받으며 다 죽어 버렸습니다.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며 찬송했더니 이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단, 정욕으로 잘못된 동기에서 기도하고 억지로 믿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또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다고 그 다음부터는 기도를 안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2. 안보여도 본 것 같이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믿으려고 하고 손으로 만져봐야 믿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지금 이 안에 공기가 가득하지만 눈에 보입니까? 제 말 소리가 여러분 귀에 들리지만 눈에 보입니까? 만질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도 지금 우리 가운데 와 계시지만 눈에는 안보입니다. 믿는 자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은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인데 제일 첫 머리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 것과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도장 찍힌 집문서를 받아 들었으면 그 집에 들어 가지 않았지만 이미 집을 소유한 것과 꼭 같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7절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강단 제일 좋은 자리에 좋은 방석을 깔아 놓고 자기도 앉지 않고 남도 앉지 못하게 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항상 이 강단에 이 교회에 함께 하신다는 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치한 것 같지만 아주 구체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살피고 계심을 구체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자리에 눕는 것과 길에 행하는 것을 아시며 우리의 말하는 것과 생각 하는 것도 아시고 멀리서도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4절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눈에 안보이지만 하나님이 항상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25세난 ‘데이브 카’ 라는 청년은 거리에 집 없는 사람들과 불쌍한 사람들에게 마실 것과 커피와 음식을 나눠주려고 거리에 나갔는데, 그 거리는 며칠 전에도 깡패들이 사람을 다리위에서 강으로 던져 죽였던 일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밤 10시쯤 되서 차 한대가 해드 라이트를 비치며 오더니 “저 놈을 강으로 집어 던져!”하더랍니다. 무서워서 “하나님, 저를 주십시오”라고 중얼중얼 기도하고 있는데 집어 던지려고 오던 깡패 두 사람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며 자동차로 도망치더랍니다. 얼마 후에 거리에서 다시 만나서 하는 말이 그 청년 양 옆에 몸집이 큰 사람 둘이 데이브를 지키고 서 있고 얼굴에 눈이 부시도록 빛이 나더랍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큰 사람을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알고 봤더니 천사가 내려와서 그 젊은이를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눈에 안 보여도 보는 것 같이 믿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3. 불가능해 보여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에 손상을 주고 기도를 방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너무 크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아이쿠, 큰일 났다. 이것은 기도 해 봤자 소용없다.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편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편 1-2절)라고 노래했습니다. 좌절하는 생각이 들 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 눈을 들어야 합니다.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유대나라의 여호사밧 왕은 모압, 암몬, 마온사람이 연합군대를 만들어 쳐들어 왔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고 간구하기를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역대하 20장 12절)하고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 연합군대를 박멸시켜 주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믿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한번은 귀신들린 한 사람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할 때에 예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가 큰 소리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즉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하시매 그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나가니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못할거야, 안될거야”하는 대신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고 천지를 지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어야 합니다.

  4. 고난을 축복으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큰 고난과 시험이 찾아올 때 마귀가 먼저 찾아와서 욥을 시험하듯이 “하나님이 계시면 내가 이런 어려움을 당할 수가 있느냐, 믿음 생활 해보았자 소용없다“하는 마음을 갖게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고난과 시험이 저주가 되고 마귀에게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고난의 보자기에 싸여서 온다”는 말대로 고난 후에는 반드시 축복이 온다는 원칙을 알고 불안 원망 대신에 “무슨 축복을 주시려고 이런 시험이 옵니까?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쓰디쓴 고난의 보자기만 보지 말고 그 보자기 속에 든 하나님의 축복을 보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을 자녀들에게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동안 머슴살이를 하고 고생한 다음에 불꽃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색동옷을 입었지만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의 옷을 입고 고생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죄수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국무총리의 관복을 입고 자기 민족과 애굽 나라를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종살이를 하면서도,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사랑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자일수록 고난의 풀무불에 넣어서 연단시키는 법입니다. 어느 사람이 잠자리가 유충으로 있으면서 고치껍데기를 벗기고 나오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보고 가위로 싹둑 잘라서 밖으로 나오게 했더니 얼마 안가서 퍼덕거리다가 죽고 말더랍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참으며 구멍을 뚫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며 고생하는 동안 성장 호르몬이 날개로 전달되고 온 몸에도 전달되는데, 인위적으로 쉽게 나오게 하니까 잠자리가 못되고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축복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레미아애가 3장 30절에 “때리는 자에게 빰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4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첫째 하나님의 기적 같은 은혜요, 다음에는 히딩크 감독의 노력입니다. 히딩크 갑독의 비법은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을 만들기 위하여 지옥 같은 훈련을 시키며 선수들을 고생시킨데 있습니다. 별다른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큰 복을 주시기전에 고난으로 연단시키므로 고난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더욱이 예수님 때문에, 믿음 때문에 받는 핍박은 크면 큰 만큼 하늘의 상급이 큽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하셨습니다.
  받기 전에 받은 줄로 믿으라. 안보여도  본 것 같이 믿으라. 불가능해 보여도 가능하다고 믿으라. 고난 속에 축복이 들어 있음을 믿으라. 이 모든 것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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