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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골고다의 세 십자가 (눅 23: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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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의 세 십자가
누가복음 23장 32-43절

기독교인에게 일년 중 가장 중요한 한 주간은 오늘 고난 주일부터 다음 주 부활절까지 한 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늘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고, 오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오는 주일,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비장한 각오로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들이 종려나무(Palm tree)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기 때문에 “종려주일”이라고 하고 오는 금요일을 “성 금요일”이라고 하며, 오는 주일은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한 주간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한 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이 없었다면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을 수도 없고, 죄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갈보리 언덕에 세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옆에 두 행악자 즉 두 강도가 함께 처형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서와 시편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이사야 53장, 시편 22편 6-8절, 시편 22편 18절). 세 십자가가 서 있는 이 언덕을 “갈보리”(Calvary)라고도 하고, “골고다”(Golgotha)라고도 하는데, 갈보리는 라틴어이고 골고다는 “아람어” 말입니다. 그 말의 뜻은 “해골 곳”(The place of skull)이란 뜻인데 헬라어로는 “크라니온”(Kranion)이라고 하는데 왜 “해골 곳”이라고 하는가 하면 그 언덕을 멀리서 바라볼 때 해골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의 의미를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자기 죄 값으로 멸망한 강도의 십자가 예수님 양옆에 달린 두 강도는 “행악자”(malefactor)라고 했는데, “도둑”과는 다른 죄인입니다. 도둑은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사람인데 반하여 “강도”는 공개적으로 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서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무장한 범죄자입니다. 이 두 강도 중에 하나는 양심의 법에도 어긋나고 하나님의 법에도 어긋나는 범인으로서 국법에 의해 처형당한 사람입니다. 이 강도는 다른 한 강도와는 달리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비방하면서 “네가 그리스도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면서 끝까지 죄를 뉘우치거나 죄를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은 죄인입니다.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다가 자기 죄로 멸망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죄의 벌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고 완악하여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옥은 불평과 탄식은 있어도 회개가 없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 죄를 회개하고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십자가 또 다른 한 강도는 죄질이 똑같은 강도였으나 예수님을 비방하는 그 강도를 꾸짖으면서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하고,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행한 죄에 합당한 보응을 받는다”고 하는 이 말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진정한 회개를 보여줍니다.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자기의 죄를 인정할 줄 모르고 회개할 줄 모르고 끝까지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입니다.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죄가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다 보면 두 가지 사람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죄가 없어서 예수 안 믿어도 구원받아요”하는 사람과 “나는 죄가 너무 많아서 교회에 못 나가요”하는 사람인데, 전자보다 후자의 사람이 더 소망이 있고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이 강도는 회개할 뿐 아니라, 예수를 믿고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하는 이 말은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살았을 때에 예수님에 관한 소문도 들었을 것이고, 이 유명한 사람을 한 번 만나봤으면 하는 마음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죽으면서 그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흉악한 무리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자기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소망도 가졌을 것입니다. 그 강도의 기도를 들으신 예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행악자는 분명히 구원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헛소리하시거나 거짓말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강도는 평생 죄만 짓고 악한 일만 하던 사람인데 죽기 전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전혀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한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은혜”란 말씀과 “믿음”이란 말씀과 “선물”이란 단어가 기독교의 복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거저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죽기 전에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부끄러운 구원이지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면류관을 받고 상급을 받는 것은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선물)는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강도는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세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죽음을 함께 했네. 그러나 한 사람만 죽었다네 다른 두 사람 한 강도와 하나님 자신은 랑데뷰 했다네”(Miriam Le Fenre) 얼마나 아름다운 시입니까? 오늘도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3. 남의 죄를 위하여 죽은 구원의 십자가 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 중에 가운데 우뚝 세워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로서 자기의 죄가 아니라 남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임을 당하신 십자가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구원의 십자가이며 기독교의 영원한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찰스 딕큰(Charles Dicken)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찰스 다니(Charles Darney)란 불란서 사람이 죄를 짓고 단두대에 올라 사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의 친구 시드니 카튼(Sidney Carton)이란 미국인 변호사는 그 불란서 친구를 대신하여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씨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죽어선 안 될 형편이고, 자기는 딸린 식구가 없기 때문에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형집행 하기 전 날 변호사 옷을 입고 형무소에 찾아가 면회를 하면서 옷을 바꿔 입고 그 불란서 친구를 대신 내보냈습니다. 죄수복을 입은 그 변호사는 마침내 끌려나가 단두대에 올라 사형을 당했습니다. 죽으러 올라갈 때 두려운 마음이 생겼으나, 마음속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느니라”고 한 말씀(요한복음 15장 13절)이 생각나서 담대히 사형을 당했습니다. 전에도 말한 것 같습니다만, 호주에서는 많은 양을 키우는데, 가끔 큰 독수리가 날아와서 새끼 양을 채가곤 한답니다. 하루는 목동이 이 광경을 목도하고 언덕 위에 있다가 쫓아 내려가 독수리를 쫓아 버리고 나서 보았더니, 어미 양이 독수리에게 두 눈이 파 먹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그 새끼 양은 어미의 네 다리 사이에 숨어서 안전하게 살아 있더랍니다. 이 어미 양의 희생으로 그 새끼 양은 살고 그 어미양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까닭에 자식이 죽는 대신 기차에 깔려 죽거나 물에 빠져 죽으면서 자식을 구원하는 예가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시므로 죄를 무조건 용납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독생자, 즉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도리를 다 가르치신 다음에 우리를 대신하여 영원한 속죄 제물로, 속죄 양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실현된 것입니다. 구약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는 이사야 53장 12절에 “.....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주전 7세기 전에 예언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부르짖으신 것은 그가 ‘우리대신’ 버림받고 ‘우리대신’ 죄의 심판을 받고 ‘우리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우리가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한 번은 형제가 풀밭에서 놀다가 형이 벌에게 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벌이 동생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동생이 무서워서 도망가려고 하니까 형이 “무서워 말아라. 벌은 한 번 쏘면 죽는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께 사망의 독침을 쏨으로서 우리를 더 이상 헤치지 못합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3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와 암 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며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라고 하셨습니다. 속죄 제물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야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6.25 사변 때 남편은 군에 나가고 부인 혼자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쌀도 없고, 미역도 없고, 어린 아기 싸줄 옷이나 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아는 선교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밤 열 두 시가 지나 눈보라를 맞으며 시골길을 걸어가다가 그만 진통이 심해지면서 아기가 나오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몹시 추운 겨울밤에 다리 밑에 앉아 아기를 낳고, 아기가 얼어 죽을까봐 자기의 속옷과 겉옷을 벗어 아기를 겹겹이 싸 매주고 자기는 피를 흘리는 몸으로 벌거숭이가 된 채 아기를 꼭 껴안았습니다. 몇 시간 안 가서 엄마는 얼어죽고 아기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그 선교사는 잠이 오지 않아 애쓰는데 교회에서 본 그 만삭된 임산부가 자꾸 보이면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견디다 못해 쌀과 돈을 좀 가지고 지프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그 다리 앞에 와서는 시동이 꺼졌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점검하려고 내렸는데, 다리 밑에서 갓난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서 손전등을 켜고 내려가 보았더니 바로 그 여자가 아기를 낳아 꼭 껴안은 채 얼어죽었고 아기는 살았더랍니다. 그 아기를 안고 달려와 살렸고, 그 엄마는 어느 산비탈에 묻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철들만큼 자라서 자기의 부모에 대해 묻길래 설명을 해 준 다음, 크리스마스 전이라 눈이 소복이 덮힌 무덤으로 데리고 갔더니, 그 아이가 겉옷과 속옷을 다 벗어 무덤을 덮고 알몸으로 그 무덤 앞에 무릎꿇고 앉아서 “나를 살리려고 돌아가시던 날 얼마나 추우셨습니까?”하고 슬피 울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피 흘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 되는 교리는 십자가의 피와 부활의 교리입니다. 이 두 교리 중에 어느 하나도 믿지 않는다면 구원 못 받는 것은 물론이요 틀림없는 이단입니다. 진리와 이단이 여기서 판가름 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그리스도 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를 믿지 않고는 영생을 얻고 구원받을 길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주간 저는 몹시 실망스런 말을 들었습니다. 감독회장을 지내신, 제가 존경하던 원로 목사님 한 분이 목회 하실 때 어느 종교나 믿어도 다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직선 코스로 천당 가고 다른 종교를 믿으면 먼길을 돌아서 천국 간다고 가르쳤다고 하니, 아연실색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까요? 요사이 이단 교수를 고소했는데, 불기소 처분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수는 예수의 신성도 부인하고, 부활도 부인하고, 삼위일체와 십자가의 구속도 부인하면서 예수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므로 예수를 끌어내리고 “네가 제2, 제3의 예수가 되라”는 사람입니다. 감독회장과 목사들이 싸고돌면서 불기소 처분하여 처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교리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고 진리와 이단이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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