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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석 위에 세운 교회 ( 마 16: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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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16:15-18 성경본문보기 

제목  반석 위에 세운 교회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 맞추어 보십시오. 이것은 탑입니다. 이 탑은 1930년 뉴욕에 320미터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세워지기 전까지 41년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조물로 그 위용을 자랑해 왔습니다. 1889년에 완공된 이 탑은 높이가 312미터 였습니다. 이 탑을 만드는데는 무려 6천3백톤의 연철이 소요되었고, 1만2천개의 들보와 2백5십만개의 리벳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철탑 건조물이 처음 세워질 때 이 도시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격렬한 반대를 했습니다. 이 탑이 아름다운 이 도시의 경관을 해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떤 예술인들은 이 탑이 보이지 않는곳으로 이사가는 소동을 부리기도 했고, 한 유명한 작가는 이 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은 이 탑위의 식당뿐이라고 하여 이 탑에서 야유하며 식사를 한 에피소드를 남긴 곳이기도 합니다. 이 탑은 1909년 마침내 해체결정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무선 전신 안테나 탑으로 적격이라는 판단으로 사형선고를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이 탑은 수많은 테러리스트에 의해 폭파위협을 받기도 했고,1925년부터 1936년까지는 전기광고탑이 되어 몸을 파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탑에선 지금까지 350명이상의 사람이 자살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 탑은 한동안 '미운 오리새끼', '심지없는 촛불', '오만한 철세공'의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탑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탑이 되고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상징이 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초점이 되었습니다. 이 탑의 이름은? 프랑스 교량기술자였던 귀스타브 에펠이 건설한 파리의 에펠탑입니다.

저는 여러해전 처음 이 탑의 현장을 보면서 설명을 듣는 동안, 이 탑의 운명이 꼭 교회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통해 수많은 안팎의 핍박과 비판에 직면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살아남아 여전히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고있고, 그가 받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등대요 빛으로 남아있는 그 모습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에펠탑의 건축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기초 때문인 것을 아시는지요? 이 탑의 건설자들은 12미터를 파고 내려간곳에 돌로 기초를 세우고 이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탑은 반석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2000여년전 우리 예수님께서도 자기가 사랑했던 12제자를 앞에 부르시고 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가 세운 교회가 오래 오래 이 세상에서 건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소망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반석 위에 세운 교회'의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반석은 사막지대에선 적의 공격에서 유일하게 화살을 막을수 있는 피난처요, 길을 지나는 나그네에겐 그늘을 제공하는 쉼터요, 임시 처소를 꾸미는 사람들에겐 가장 안전한 집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이번에 우리교회가 제2예배처소로 비전센터를 건립하면서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건물을 예술적으로 잘 꾸밀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방황하는 많은 이 시대의 나그네들에게 우리교회가 참된 안식이 되어주고 그들로 구원을 경험케 하는 영향력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어떤 교회일까요?

1.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당신의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반석'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신 것이었을까요? 오래동안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반석을 문자 그대로 베드로라고 해석하였고, 따라서 베드로를 초대교황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이래로 이 구절에서의 반석을 인간 베드로가 아닌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해석하여 왔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예수께서 보시면서 자기와 3년을 함께 해온 제자들의 믿음을 세워주실 목적으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3년에 걸친 제자훈련의 핵심을 되묻는 질문으로 일종의 졸업시험의 성격이었습니다.--"사람들은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은 후 그는 다시 물으셨습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 이때 베드로는 바로 그 유명한 대답-"주는 곧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며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시라"고 하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저는 이 한마디에 기독교의 기본 메시지가 모두 포함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는 문자 그대로 '기름 부으심을 받은자'라는 뜻입니다. 잘 아시는대로 구약시대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만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왕은 다스리는자요, 선지자는 가르치는자요, 제사장은 문제의 해결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려온 메시야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다 완성할수 있는 어떤 분이셨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예수님께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 당신만이 나의 왕-나를 완전하게 다스려 주실수 있는 분이시며, 당신은 나의 침된 선지자-나를 온전한 진리로 가르칠수 있는 분이시고, 당신은 나의 제사장-곧 나의 죄문제와 인생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믿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을 두단어로 요약하면 "구주와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믿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이 고백이 분명하지 못할 때 교회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고백이 바로 교회의 기초 곧 반석인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사회의 여러 부실함은 일반적으로 우리사회의 기초를 견고히 못한데 있다고 지적되어 왔습니다. 이번에 본 월드컵에서의 한국축구의 발전은 대체로 히딩크의 리더십때문이라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 감독이 되어 한동안은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비판을 감수하며 그간 지금까지 묵묵히 전념해온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선수들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일, 그리고 패스같은 기본전술에 충실한 일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기초 다지기가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부실의 근본요인도 신앙고백의 불확실성이라고 믿습니다. 교인들이 무엇을 믿는지 모르고 교회에만 나와요. 그래서 생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자기는 참 좋은 교회 나간다고 자랑을 해서 "당신의 교회는 무엇을 믿습니까?"했더니 "우리교회는 제가 믿는바를 믿습니다."하더래요. 다시 묻기를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했더니 "저는 우리교회가 믿는바를 믿습니다"하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묻기를 "그러면 당신의 교회와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했더니 "우리교회와 저는 똑같은 것을 믿습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교회가 기초 성경공부를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새생명반, 새가족반, 새공동체반) 반석위에 세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 건물에서 무엇보다 성경연구는 지속적으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초점이 될 것입니다.

2.예수를 주인으로 모시는 교회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금까지 영향력있는 공동체로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훌륭했던 목사님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교인들 때문이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실 부족한 지도자들로 인하여, 그리고 부덕한 교인들로 인하여 그동안 교회는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여전히 존재하고 그 사명을 감당할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주인때문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본문 18절에서 주님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한 지역교회가 교회다우려면 무엇보다 예수님의 교회 주인되심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실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주인되심이 어떻게 실천될수 있습니까? 그것은 결국 우리의 의사나 주장이 아닌 예수님의 뜻을 얼마나 우리가 진지하게 찾고 따르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 우리가 성경을 알아야 하고, 둘째,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가 진지하게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찾는 분위기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번 영구제직 수련회의 관상기도 훈련에서 받은 훈련가운데 하나도 강의하다가도 회의하다가도 우리가 종종 우리의 입을 닫고 침묵하며 주의 인도를 구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자기가 주인 노릇하고 싶어서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모두 침묵을 배우고 기도를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으며,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수 있겠습니까? 에이 토져라는 분은 "교회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기도 안하는데도 모든일이 잘되고 있다고 느낄때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주일학교 어린이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교회에서 야외예배를 한후 끝내는 시간에 어느 어린이에게 대표로 감사기도를 하라고 했더니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하나님, 우리가 너무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하나님도 여기 함께 계셨으면 좋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비전센타 건립과 함께 성숙의 시대를 선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알지 못하고 어떻게 성숙한 자녀노릇을 할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숙의 시대를 열면서 무엇보다 더욱 기도하는 교회로 주앞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뜻도, 내뜻도 아닌 주님의 뜻임을 고백하며 예수님으로 우리 공동체의 주인되게 하실 때 저는 우리교회가 정말 반석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을 믿습니다.

3.예수의 비전을 실현하는 교회입니다.

한 공동체가 쇠퇴하거나 정체할 때 그 현저한 징후는 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반석위에 세운 교회는 비전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비전은 바로 주님의 비전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의 비전을 갖고 헌신하는 것을 보면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한마디로"나의 교회를 세우리라"였습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빌딩을 세운다는 말입니까? 아니지요.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 일꾼을 세우는 것-그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미국 상원의 원목으로 섬기신 분 가운데 리챠드 핼버슨(Richard Halverson)목사라는 존경받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상원 채플린으로 봉사하기 전에는 제가 와싱턴에서 섬기던 지구촌교회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제4 장로교회의 목사로 봉직하던 분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분이 비행기를 타고 타지로 여행을 갔다가 와싱턴으로 돌아오던중 와싱턴이 가까웠을때 갑자기 와싱턴 교외에 위치한 자기교회 건물이 보고 싶어서 비행기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부지런히 자기교회 위치를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보일 듯 말 듯 하면서 비행기는 두어차례 와싱턴 상공을 순회하며 착륙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교회 건물대신 더 분명하게 백악관, 조지타운 대학, 대학병원, 박물관, 국방성등의 건물이 보이면서 그 건물들 안에서 일하는 자기교회 교인들의 얼굴이 생각나더랍니다. 그때 그는 무릎을 치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였다고 합니다.--"맞아, 이 모든 곳이 바로 나의 교회인 것을"

우리교회가 비전센타를 건립하면서 우리의 비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교회의 21세기 비전은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사명으로 우리는 우리의 마을과 직장에 세워지는 목장교회를 통하여 평신도 선교사들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그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선교사의 열정을 갖고 우리의 삶의 자리들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흔들 수 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센타는 바로 이 사명에 헌신할 일꾼들을 계속적으로 훈련하는 중심적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좀더 편리해진 교통여건과 좀더 여유있는 공간과 시설로 우리는 비단 장년들만이 아닌 특히 청소년들과 젊은이들도 쉽게 접근하여 어느때라도 자기 편리한 시간에 와서 기도하고 훈련받고 미래의 비전을 설계하는 문자 그대로 비전센타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전은 비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실현될수 없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많지만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대가지불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루어진 위대한 사역을 보신 일이 있으신지요? 지난 화요일밤의 월드컵 첫승은 우리가 지난 48여년동안 한국축구의 꿈을 이루고자 헌신한 많은 선수들의 땀흘림과 헌신, 희생, 그리고 국민적인 성원의 열매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에콰도르 선교의 장에 남편(짐 엘리옷)을 순교의 제물로 바친 엘리자베스 엘리옷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위로하는 어떤 기독교 지도자에게 이런 말로 반문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비전이 목숨을 바칠만한 비전이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꿈을 품고 죽습니다. 그러나 내 남편은 꿈을 위해 죽은 것입니다." 한 교회 공동체의 비전의 실현은 결국 그 교회 구성원들의 헌신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생하는 만큼, 우리가 헌신하는 만큼, 그만큼 우리의 비전은 앞당겨 실현될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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