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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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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이니라(사54:1-3) 

사54:1-3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지난 주일에는 키르기즈 제 2 승동 교회의 헌당예배가 있었습니다. 주일 낮 12시에 제 1 승동 교회의 교인들 약 200명, 제 2 승동 교회의 교인들 약 100명, 도합 300명이 제 2 승동 교회의 본당에 모여 연합해서 함께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본당의 크기는 가로 10m, 세로 20m 정도로 약 200명 정도가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헌당예배때 300명이 모였으니까 빽빽이 앉고서도 다 앉지 못해서 상당수는 선 채로 장시간 동안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헌당예배와 아울러 112명의 교인들에게 입교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또 그곳에 승동 교회가 세워진지 처음으로 43명의 집사를 임명하는 순서도 가졌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몇 분이 초청을 받아오셨는데 예배에 참석을 하시고서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키르기즈 제 1 승동 교회와 제 2 승동 교회, 그리고 그곳에 담임하고 있는 박문숙 선교사님의 사역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인 할머니 가운데 한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옷 한 벌 사 입지도 못하고 신발 한 켤레 사 신지도 못했습니다. 약도 한 번 사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박선교사님이 이곳에 오셔서 이런 여러 가지를 도와주어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결코 과장된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곳의 노인들은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을 받아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는 연금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한 달에 만원 정도였습니다. 그것으로 겨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형편에 옷을 사 입을 수 있고, 신발을 사 신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박선교사님에게 그저 남들만큼 선교비를 보낼 뿐입니다. 그런데 박선교사님은 그것을 쪼개어 여러분에게 귀한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박선교님을 많이 사랑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고려인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보아도 선교사님을 보면 너무 딱합니다. 그리고 우리 선교사님은 정말로 야무지고 독한 사람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박선교사님은 매일 제 1 승동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나면 그 길로 제 2 승동 교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헌당예배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선교사님은 일군들과 더불어서 손수 페인트칠하고 청소하는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있는 현지인들이 가냘픈 여성의 몸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박선교사님의 모습을 볼 때 감동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작년 제 1 승동 교회 헌당예배때 제가 참석을 했습니다. 그때 우스개 소리로 박선교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소화제는 제 친구랍니다."
여러 가지 일로 너무 신경을 많이 쓰니까 음식을 먹어도 제대로 소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소화제를 자기 친구처럼 늘 가지고 다니면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늘 소화제를 먹어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저 밤에 잠 한 번 푹 자보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박선교사님은 분명히 그 땅에서 떨어져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었습니다. 그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제 1 승동 교회와 제 2 승동 교회라는 아름다운 열매가 그 땅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 키르기즈스탄에서는 개신교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수도 비쉬켁만 해도 약 280개의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와 러시아정교가 교회에 대해서 몹시도 핍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헌법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우고 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종교성에 가서 반드시 허락을 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류를 접수해도 빨리 허락해 주지 않고 까닭 없이 몇 개월씩, 심지어는 1년이 넘어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허락을 득하지 않은 채 교회의 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어떤 교회가 종교성으로부터 철거명령을 받았습니다. 허락을 받지 않고서 교회를 짓고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였습니다. 주변의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에 종교성도 어쩔 수 없이 철거명령을 내렸다고 하지만 그 배후에는 이슬람교의 압력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선교사 사회에서는 늘 그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의논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다 지어 가는 건물을 헐어야 되는 실정에 처해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슬람과 러시아정교와의 마찰을 가급적이면 피하기 위해 교회 건물에 십자가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저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선교사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명하게 내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내일 십자가를 내려야하는 형편이 된다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더욱 예수님의 십자가를 분명하게 내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1 승동 교회뿐만 아니고 제 2 승동 교회는 본당 앞면과 옆에 있는 교육관, 또 오른쪽에 있는 식당 건물 벽에 붉은 색의 십자가를 세 개씩이나 걸어놓았습니다. 길가에 지나가다가 누가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명히 볼 수 있도록 달아놓았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 사람들이 보아도 얼마나 독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헌당예배를 드리기 바로 이틀 전인 금요일에 종교성에서 공식적으로 제 2 승동 교회도 허락을 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교사님과 저만 압니다. 그곳에 참석하신 다른 선교사님들의 교회는 아직도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그것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선교사님과 저만 알고 감격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에 있는 박선교사님과 모든 교우들이 감사와 사랑의 뜻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사54:1∼3의 말씀은 지난 주일 헌당예배때 제가 그곳에서 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이 시간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관계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그들에게 소망을 불러일으켜 주셨습니다.
둘째는 사명의 말씀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해야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장막을 크게 짓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옛날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셨던 하나님의 이 말씀은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늘 소망 가운데서 우리가 해야할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닫고, 사명에 충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축복들을 우리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풍성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복된 모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소망의 말씀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로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넘어가서 5절 말씀을 보십시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본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고통을 당해야만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이사야 선지자는 "홀로된 여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홀로된 여인처럼, 마치 과부처럼 잉태하지도 못하고, 생산치도 못하고, 구로치도 못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없으니까 아이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해산의 고통도 겪어보지 못하는 가련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시대에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이 되어 홀로된 여인처럼 잉태하지도 못하고, 생산치도 못하고, 구로치도 못하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왜 그렇습니까?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홀로된 여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내가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이스라엘 편에서 어떤 공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이사야 53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메시야의 수난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53:5∼6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메시야의 대속적인 죽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다시금 사랑하는 아내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시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엄연한 신랑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받는 신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홀로된 여인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는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영광이 되시고, 우리의 머리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에 처했습니까? 그럴수록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더욱더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 옛날 욥은 엄청난 곤경에 처했습니다. 사단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많은 재물을 다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십남매가 다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입을 열어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욥1:21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그는 곤경 속에서도 오히려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곤경을 돌이키셨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도 갑절의 복을 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억울하게 매까지 많이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옥토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옥문이 다 열렸습니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빌립보 간수가 회개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그의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까? 우리는 결코 홀로된 여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받는 신부입니다. 더욱더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이스라엘을 회복케 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도 회복케 하실 것입니다. 모든 수치를 물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전보다도 갑절의 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사명의 말씀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고토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곽은 다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성곽을 다시금 쌓아야 합니다. 훼파된 하나님의 성전도 다시금 건축해야 합니다. 또 그들이 거할 장막도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장막을 지을 때 어떻게 지으라고 하셨습니까? 한 마디로 작게 짓지 말고 크게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실 축복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실 때 작은 소망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큰 소망을 주셨습니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장막을 짓되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 따라서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 큰 장막을 지어야 마땅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장막을 크게 지을 수 있습니까? 본문은 네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네 장막터를 넓히며"입니다. 장막을 짓기 위해서 터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터를 작게 잡지 말고 최대한으로 넓게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입니다. 장막을 쳐야 합니다. 그런데 휘장을 아끼지 말고 최대한 그 휘장을 널리 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너의 줄을 길게 하며"입니다. 휘장과 휘장을 이어서 대들보에 매기 위해서는 줄도 필요합니다. 그 줄도 최대한으로 길게 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입니다.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굵은 말뚝을 깊이 박아야지 큰 장막이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시81:10의 말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입을 넓게 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그릇이 작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담고 싶어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릇이 커야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장막터를 넓히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작다고 해서 하나님까지도 작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내가 부족하다고 해서 하나님까지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내가 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까지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서 마음을 크게 가져야 할 줄 압니다. 쩨쩨하게 생각하지 말고 원대한 포부와 계획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장막터를 넓히는 심정으로 더 이상 우리의 휘장을 아끼지 마십시다. 우리가 세상일에는 힘껏 투자하면서 하나님을 위한 일에는 얼마나 투자했습니까? 혹시 인색하지는 않았습니까? 장막터를 넓히는 심정으로 우리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주를 위해 드릴 때, 하나님은 언제나 더 큰 축복으로 되돌려주실 것입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은 자기의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꺼이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이삭을 받으시고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창대케 하셨습니다. 그 옛날 벳세다 들판에서 한 어린 아이가 자기가 먹을 음식 오병이어를 아끼지 않고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축사하셨습니다. 오천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물질, 나의 시간, 나의 정성을 아끼지 말고 주를 위해서 기꺼이 투자해 보십시다. 손해보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더 큰 것으로 값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에 남자 집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믿음이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늘 충성하고 또 하나님께 헌금 드리는 일을 늘 기쁘게 생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고로 그만 그의 집에 큰 불이 났습니다. 집이 다 타버렸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 일로 인해 크게 낙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너무나도 평안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믿는 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저로 하여금 미리미리 하나님께 적금을 많이 들어놓게 하신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하나님께 적금을 들어놓은 것을 써야할 때가 된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원금에 이자까지 듬뿍 쳐주셔서 다시금 제게 되돌려 주실 것을 생각하니까 저는 마음이 설렙니다. 하나님, 제게 더 크고 좋은 집을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을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속히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그의 기도대로 그를 무한히 축복하셨습니다. 그의 사업이 날로 번창했습니다. 그리해서 얼마가지 않아 그는 더 큰 집에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나 적금을 들어놓았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장막들을 넓히는 심정으로 우리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주를 위해서 기꺼이 드려 보십시다. 하나님은 더 큰 축복으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축복의 말씀입니다.

3절을 봅니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왜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장막을 크게 만들어야 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실 축복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세 가지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홀로된 여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셔서 이스라엘의 자손을 창대케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좌우로 번창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은 어디를 가든지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그 땅이 그들로 인해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 가지의 축복이 나옵니다. 자손의 축복, 땅의 축복,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입니다. 이 세 가지 축복은 하나님이 이미 아브라함때부터 택하신 백성들을 향해서 계속해서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이 세 가지 축복을 다시 한 번 선포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얼마가지 않아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취되어졌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의 은혜로 고토 조국 땅에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을 재건했습니다. 숫자적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점차로 강성해져 갔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적인 경지에서 이 축복의 말씀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분명하게 성취되어졌습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이제는 땅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마다 그곳에 흑암의 권세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세 가지의 축복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풍성히 누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이 축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적으로 이미 세 가정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열세 명을 협력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다섯 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것으로 만족을 삼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홀로된 여인처럼 잉태하지도 못하고, 생산하지도 못하고, 구로치도 못하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형편에 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의 장막터를 계속해서 넓혀 나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우리의 휘장을 아끼지 맙시다. 우리의 줄도 길게 늘여 뜨립시다. 그리고 말뚝도 견고하게 박으십시다. 작은 그릇에는 많은 것을 결코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릇이 커야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장막터를 넓혀 나가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대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이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축 해야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우리가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십시다. 뿐만 아니고 이제는 국내에도 제 2의, 제 3의, 제 4의, 승동 교회를 계속해서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서 곳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우리가 힘을 합쳐야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더욱더 우리의 장막터를 넓히기 위해서 우리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십시다. 우리의 기도의 줄, 사랑의 줄을 길게 늘이십시다. 복음의 말뚝, 십자가의 말뚝을 견고하게 우리 삶 속에 박아보십시다. 그리함으로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이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들이 언제나 풍성하게 누려지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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