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당신은 우리의 영광/ 살전 2:17~20

  • 잡초 잡초
  • 509
  • 0

첨부 1




당신은 우리의 영광/ 살전 2:17~20

지난 한 주간 우리는 굉장히 흥분된 나날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대각성전도집회 새생명축제 2000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엄청난 은혜를 주셨습니다. 연 15000명 이상 되는 성도들이 한 생명이라도 구원해 보려고 밤낮없이 눈물로 기도하고, 시간을 내어서 찾아가고, 정문에서 기다리거나 직접 가서 손을 잡고 집회로 인도하고, 집회 시간 내내 함께 앉아서 말씀을 듣는 등의 해산의 수고를 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한 주간 동안 4319명이라고 하는 엄청난 태신자들이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제가 들어오면서 보았는데 의자마다 꽃바구니를 앞에 놓고 앉아 계시는 태신자들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요. 얼마나 감개무량한지요. 처음 오시는 분들이 받아 가지고 들어오신 꽃바구니가 어떤 자리는 열 개가 넘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꽃바구니를 놓고 앉아서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믿고 돌아오면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바뀌지 않습니까? 그렇게 나와서 말씀을 들은 형제 자매들 가운데 예수 믿은 형제 자매가 2627명입니다. 100명의 교인으로 이루어진 교회로 셈하면 26개의 교회가 새로 탄생한 것입니다. 10명 중에 6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카드를 내고 일어서신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한 영혼을 구원해도 천사들과 잔치를 하신다고 했는데 오늘 그렇게 많은 심령들이 예수님 품에 안겼으니 우리가 얼마나 기뻐해야 합니까? 만약에 이런 생명의 축제를 보고도 기뻐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슴에 이런 놀라운 기쁨과 새로운 각성을 주신 것을 다시 한번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이 집회를 지켜보면서 성령께서 제 마음에 주시는 메시지가 분명히 하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제 마음에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민일보 기자에게도 이 메시지는 꼭 써 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를 위해서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메시지가 이것입니다. '부흥이 안 된다는 소리를 하지 마라. 전도가 안 된다는 말도 하지 마라.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문을 열어 놓고 계신다. 전하기만 하면 예수 믿고 구원 받을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사람이 아무리 악해져도 예수를 거부할 만큼 아직은 악해지지 않았다. 지금 전도가 안 되고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 사람 때문이 아니고 우리 자신 때문이다. 교회가 병들어 있고 교회가 체질이 잘못되어 우리 스스로 좋지 못한 이미지를 남기고 냄새를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지, 우리가 제대로만 하면 지금도 얼마든지 예수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께서 이 메시지를 제 마음에 계속 주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내면에 똑 같은 음성을 들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자기 체질을 바꾸고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복음을 더 힘있게 전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627명의 형제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카드 내고 일어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정도의 의미로 끝나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구원 받은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의미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 도시에 선교를 하기 위해서 들어갑니다. 생전 가보지 아니한 곳에 첫발을 들여 놓는 것입니다. 아마 속으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들어갔을 것입니다. 원래 그가 하는 방식대로 유대인의 회당에 매일 들어가서 구약 성경으로 유대인을 상대로 전도를 했습니다. 유대인은 구약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이사야가 말한 고난의 종이요, 예수님이야말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전 인류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라는 사실을 3주 동안 날마다 가르치며 전도했습니다. 유대인도 들어와서 들었고 유대인과 가까운 이방 사람들도 들어와서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과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하셔서 그들이 전하는 복음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경건한 헬라 사람들이 많이 예수 믿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헬라 사람이면 그리스 사람입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경건하다는 말을 붙입니까? 그들이 평소에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서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개종해서 회당에 드나들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다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귀족이나 상류층에 속하는 귀부인들 다수가 예수 믿고 바울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번 대각성 전도집회를 6개월간 준비하면서 태신자 하나를 만들고 교회로 인도해서 예수 믿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끼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실패했습니다. 목사 말을 아주 우습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3주 동안 전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몇 십 명인지 몇 백 명인지는 모르지만 예수 믿고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이 질투를 해서 드디어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폭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굉장히 위험에 처했습니다. 예수를 처음 믿은 사도 바울의 제자들이 사도 바울을 권면해서 밤중에 그 도시에서 빼돌려 다른 도시로 보냈습니다. 그 후로는 바울이 다시 그 도시에 들어가서 이제 새로 탄생한 개척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를 좀더 격려하고 위로하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편지를 쓴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바울이 들은 소식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이 빠져 나온 후로도 핍박을 받으면서 예수를 잘 믿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고 나서 남편에게 박대를 당합니다. 가정에서 쫓겨납니다. 또 예수 믿은 몇몇 사람들은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합니다. 이렇게 몹시 어려운 상황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3주 동안 복음을 듣고 갖게 된 그 작은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습니다. 핍박을 받았지만 기뻐하면서 신앙생활을 했고, 게다가 사방으로 다니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바울이 너무 흥분하고 감격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19절, 20절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의 소망' 바울이 '우리'라고 한 것은 바울과 함께 동역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모데와 실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합해서 '우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누구냐? 우리의 기쁨이나 우리의 면류관이 누구냐? 그의 강림하실 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데살로니가 교인 너희가 아니냐? 너희야말로 나의 영광이요 기쁨이다. 너희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다.' 이 말씀을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이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가슴이 뛰었겠습니까? 3주 밖에 안 된 짧은 기간에 태어난 새로운 영적 생명인 그들이 지금 핍박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19, 20절을 놓고 우리가 다시 한번 몇 가지를 꼭 배우고 마음에 담아야 되겠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은 재림하십니다. 오늘 처음 예배에 참석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주간에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믿겠습니다." 하고 결단하셨습니다. 한가지 더 들어 두십시오.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 정해 놓은 시간표에 따라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이것을 재림하신다고 그럽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은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모시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 구름 사이로 멀리 멀리 하나님 나라를 향해 승천하시는 주님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그 때 천사가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이 본 이 예수님이 나중에 이 모습 그대로 다시 세상에 오신다." 성경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내가 속히 오리라." 주님이 꼭 이 세상에 재림하셔서 이 악하고 더러운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우주에 건설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 날이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잘 살아도 이 세상에 정을 주지 않고 그 날을 바라보는 거룩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 날이 있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뜻을 다 펴보지 못하고 꺾이는 슬픔을 당해도 절대로 기가 죽지 아니하며, 절망하지 아니하며, 자살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그 날이 되면 나의 슬픔, 나의 고통을 주님이 다 위로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되면 내가 악한 일과 악한 사람들로 인해서 당한 손해와 억울하게 입은 상처들이 많이 있지만 주님이 다 싸매 주시고, 내가 입은 손해 보다도 몇 갑절 더 풍성한 축복으로 위로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남을 향해 이를 갈지 않습니다.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 날이 있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너무나 포악한 악을 보고도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거짓과 음란과 온갖 더러운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가 그래도 이 세상을 놓고 소망을 갖는 이유는 그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 살아도 그 날이 있기 때문에 잘 사는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못 살아도 그 날이 있기에 못 사는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날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도 바울은 그 날을 마음에 그려볼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짧은 한 평생을 살면서 그 날을 기다리며 예수님을 위하여 다른 형제에게 전도하고,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물질을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더 나아가서 자기의 젊음을 온통 바친, 순교의 재물이 될 때까지 주님의 나라와 그 일을 위해서 희생한 거룩한 성도들이 그 날이 되면 누리게 될 그 영광이 너무나 황홀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숱한 매를 맞아가며 수없이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어떤 축복과 상급과 칭찬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바울이 압니다. 그 중에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인 때문에 바울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을 칭찬, 상급을 그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너희가 바로 나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너희가 나의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뛰는구나."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국가적으로 경사인지 모릅니다. 서로의 정치적인 견해를 뛰어 넘어 야당이니 여당이니를 따지지 말고, 한국인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것은 참으로 온 국민이 경축할 일이요,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개인에게도 영광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영광입니다. 아셈 회의에 참석한 20여명의 정상들이 연설을 할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서 축하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은 이름 그대로 평화상입니다. 평화를 위해서 얼마만큼 희생하고 값을 치루었느냐에 따라서 그 평화상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잘 알다시피 다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대통령이요, 6년 동안 감옥에 갇혀서 고독하게 씨름을 해야 하던 생을 보낸 사람이요, 10년 동안 망명이 아니면 자택 연금을 당하면서 너무나 힘든 나날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아니하고 민주주의, 인권, 통일을 위해서 지금까지 생명을 걸고 싸워 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최근에는 남북 화해의 물고를 터 준 역할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국제 사회가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평화상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을 지불한 것이 있습니다. 만델라 대통령 같은 사람은 27년 동안 인종 차별에 항거하다가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 아닙니까? 감옥에서 젊음을 다 보내고 늙어서 나왔습니다. 그 만한 대가가 있기에 축하를 하는 것이고, 그 업적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노벨 평화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상을 탈 사람들이 우리 중에도 대단히 많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 때문에 자기가 노벨 평화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상을 탈 것이요, 데살로니가 교인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볼 때마다 자랑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대각성 전도집회를 통해서 내가 인도한 한 사람, 그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주실 상급과 칭찬은 대단할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나도 노벨 평화상 한번 타 보기를 원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감옥에 한 6년 정도 가 있어야겠다.' '나도 노벨 평화상 타기 위해서 다섯번 정도 죽을 고비를 넘겨 보아야겠다.' 노벨 평화상 타기 위해서 이런 고통을 자청하고 나올 사람이 이 가운데 몇 명이나 되십니까? 죽었다 깨어도 그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못하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미리 고생을 각오하고 그 상 하나 타겠다고 감옥에 들어가거나 죽을 고비를 넘길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별거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나면 다 녹이 스는 상입니다. 시대가 지나가면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상입니다. 본인도 죽고 나면 아무 의미가 없는 상입니다. 잠깐 반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서는 감옥에 일부러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주실 그 칭찬과 상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영원 영원토록 광채가 나는 상이요, 영원히 기뻐할 수 밖에 없는 일이요, 영원히 자랑이 될 만한 축복입니다.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을 위해서는 생명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상을 타고 주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내 젊음을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드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가슴에 불을 안고 오직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실 그 상과 칭찬을 바라보며 미국이라고 하는 그 살기 좋은 나라를 등지고 아프리카 오지로 달려가지 않습니까? 하루에 물 한 바가지를 가지고 사는 지옥 같은 환경이지만 그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곳에 가서 한 생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주님이 주실 칭찬과 상 하나로 모든 고통과 서러움과 아픔은 깨끗이 물러가고 영원토록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영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날을 지금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주님이 재림하셔서 주실 칭찬과 상을 내다보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할 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그런 흥분의 밑바닥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이 전도해서 예수 믿은 그 사람 당자가 너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런 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문 밖에 나와서 기다리십니다. 누가 돌아오고, 누가 회개하고 예수 믿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울이 전도해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감격하고 기뻐하셨겠습니까? 오죽하면 천국에서 천사들과 많은 구원 받은 성도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겠다고 하셨겠습니까? 돌아온 영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반드시 칭찬하실 것을 바울이 압니다. 상을 주실 것을 압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이번 집회에 예수 믿기로 한 형제 자매가 지금 여러분 옆에 앉아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 형제를 한번 쳐다보십시오. 굉장한 존재입니다. 그 형제 때문에 주님이 반드시 나에게 상을 주시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입니다. 오늘 처음 나와서 예배 드리시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을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하게 보시고 사랑하시는지 아십니까? 알면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다 몰라서 다행이지.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숫자가 몇 명인가 하는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자기가 갖고 있는 좋은 것은 우리에게 다 주시려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바울이 한 말이 옳지 않습니까? '너희는 나의 면류관, 나의 자랑, 나의 기쁨, 나의 영광이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너희 때문에 내가 얼마나 황홀한 자리에 초대 받을 지 모른다.' 우리도 그 말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의미가 또 하나 있습니다. 내가 전도하기는 한 사람을 전도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열심히 전도했다고 하지만 몇 십 명인지 몇 백 명인지 확실히 모릅니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닐 것입니다. 오늘 사랑의교회처럼 몇 만 명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적은 수의 사람,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을 놓고 왜 바울이 그처럼 흥분합니까?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다음에 이어질 놀라운 사건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8절에 보면 바울을 통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 마케도니아 전지역을,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리스 전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들 때문에 그리스 반도가 들썩들썩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몇 십 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몇 십 명이 가만히 있습니까? 은혜를 받자 온 사방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는데, 도대체 그 사람들을 통해서 몇 명이나 예수를 믿고 돌아오는지 계산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도한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날 엄청난 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울이 지금 연상을 하는 것입니다. '굉장하겠구나. 그것을 보시고 주님이 나에게 칭찬하실 것이다. 나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바울이 전도한 사람들 때문에 예수 믿게 된 구름떼와 같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바울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지 다 상상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의 자랑이요 기쁨이요 나의 영광이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만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한 사람 전도했지 않습니까? 애나 키우는 초라한 아주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뜨고 그 다음 상황을 한번 내다 보십시오. 이 아주머니는 보기에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구원 받은 것 하나 만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아주머니 때문에 자녀들이 예수를 믿을 것이고, 그리고 이 아주머니를 통해서 앞으로 2,30년 동안 예수 믿고 돌아오게 될 사람이 얼마나 많을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자녀들이 예수 믿고 나서 자란 후에 어떤 인물이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자녀들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될 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자녀의 자녀, 자녀의 자녀를 다 계산하면 100년 동안 도대체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돌아올 지 계산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사야는 수백 년 전에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사람, 비록 그 사람은 세상 사람 눈에 가장 작은 약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 눈에 약자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일단 잡히면 그 약자가 천을 이룬다. 사람 보기에는 아무 힘도 없는 작은 자로 보일 지 모르지만 그 작은 자 하나를 통해서 큰 나라가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을 바꿔서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전도한 한 사람이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이며 어떤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아무도 상상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다볼 때 그 한 사람이 엄청난 존재로 보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전도자를 꼽으라면 자타가 다 빌리 그래함이라고 말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20세기 최대의 전도자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제가 그의 전기를 읽으면서 감탄을 자주 했습니다. 그분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도했을까를 물어 보면 억 단위를 이야기합니다. 텔레비전, 방송, 그리고 이런 마이크 시스템, 비행기, 자동차 등 모든 현대 문명의 이기를 다 동원해서 전도를 4,50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통해 복음을 들은 사람을 억 단위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예수 믿은 사람이 적어도 몇 백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엄청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빌리 그래함 목사를 예수 믿고 전도자로 만든 무명의 전도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여러분은 아무도 모르시죠?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모다카이 햄이라고 하는 목사입니다. 빌리 그래함이 19살 때 그가 살던 조그마한 마을에 그 전도자가 와서 천막을 치고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가자 빌리 그래함도 함께 가 보자고 해서 왔습니다. 그날 모다카이 햄이라는 전도자가 빌리 그래함 목사를 주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를 쳐다 보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중에 예수 믿을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더니 빌리 그래함과 친구 몇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나왔습니다. 그 목사님이 안수기도 해 주면서 축복했습니다. 집에 돌아갔습니다. 하룻밤을 지나고 나자 온 천지가 달라보였다고 빌리 그래함이 말합니다. 세상이 온통 달라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 때문에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기쁨이 가슴에서 치밀어 오릅니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이 좋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합니다. 이렇게 해서 위대한 전도자가 됐는데 모다카이햄 목사님은 빌리 그래함이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이 모다카이 목사를 보시고 무엇이라고 그러실 것 같습니까? "이리로 좀 와 봐라. 너는 이 앞에 종려 나무를 들고 흰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저 큰 무리가 보이니? 저 사람들이 다 네가 전도한 사람이다." "아닙니다. 주님, 저는 그렇게 많이 전도를 못했어요." "네가 빌리 그래함을 전도하지 않았니? 네가 전도한 빌리 그래함, 너는 한 사람을 전도했지만 그 한 사람 때문에 지금 수백만 명이 예수 믿고 천국에 들어왔잖아. 한번 봐라. 얼마나 대단하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이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니라." 금 면류관을 그에게 씌워 주면서 주님이 칭찬하시게 될 그날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모다카이 햄 목사가 너무 흥분해서 그만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전도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우리가 다 모릅니다.
한국 이야기를 한번 합시다. 지난번에 우리 순장들을 위해서 또 우리 교인들을 위해서 상담 계통의 명 특강을 해 주어서 우리가 많은 감동을 받은 목사님이 계십니다. 정태기 박사님입니다. 지금도 테이프가 세트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분이 저와 조용히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에 미처 듣지 못한 비화를 저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참 감동했습니다.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라고 하는 조그만 섬이 하나 있습니다. 그 섬에서 그런대로 지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괜찮게 사는 집안에 딸이 하나 태어났어요. 문씨 집안입니다. 그래서 딸 이름을 중경이라고 지었어요. 문 중경. 그 딸이 그 섬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중도라고 하는 섬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정씨 집안에 시집을 간 그녀는 참 행복하게 살 줄을 알았는데 그만 애가 안 생기는 것입니다. 5년이 지나도 7년이 지나도 애가 생기지 않자 드디어 자식을 기다리는 시부모로부터 엄청난 구박을 받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되는 모진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 구박을 받자 결국 견디다 못해서 가출을 해 버렸습니다. 이왕 죽을 바에는 아는 사람들이 있는 섬에서 죽을 게 아니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서울에나 가서 죽을 생각을 하고는 야간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용산역에 내렸습니다. 갈 데가 없지 않습니까? 이제 죽으러 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리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여기고는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천막을 쳐 놨는데 그 밑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힘차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일어나서 춤을 추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 당시에 유명한 부흥사였던 이성범 목사님이 인도하는 전도집회였습니다. 무엇이 좋아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손뼉을 치고 춤을 추는지 참 희한한 광경이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뒷자리에 엉거주춤 앉았습니다. 그러다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성범 목사님은 잘 생기셨습니다. 수염이 멋있게 나서 정말 천사같이 생겼습니다. 설교자가 되려면 그렇게 인물도 좋아야 되는데 저 같은 사람은 도무지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얼굴만 쳐다봐도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성범 목사님은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천국을 주기 위해서 자기 아들 예수님을 당신 대신에 십자가에 희생하셨습니다. 그분이 이제 살아나셔서 당신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하나님 눈에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압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 앞으로 오십시오. 그러면 모든 죄 용서 받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런 복음을 그 시간에 이 자매가 들은 것입니다. 듣는 순간 성령이 그 마음을 활짝 열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도록 만들었습니다. 눈에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니 정말일까? 정말 나 같은 것도 사랑하실까? 애도 못 나서 구박 받은 나 같은 것도 사랑하실까?' 하는 질문을 마음 속으로 수없이 하는데 사실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 이 문중경이라는 자매의 마음이 완전히 새 마음으로 거듭났습니다. 자살하겠다는 생각은 싹 날라가 버리고 내가 별 볼일 없는 인간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소중하다면 나도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성범 목사님이 목회하고 계시는 목포의 교회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양육을 받고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다니면서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참 전도를 하다가 생각해보니 자기를 구박하던 시댁이 살고 있는 중도로 돌아가서 그들을 전도하자는 생각이 들어 배를 타고 중도 섬에 왔습니다. 사람들이 환영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굉장히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동네 어귀에 조그마한 마당에 서서 찬송과 성경을 손에 들고 치마 저고리를 입은 여자가 폼을 잡고 서면 전도인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을 끌어 모아야 전도를 할 것 아닙니까? 그 당시에 제일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던 찬송이 있습니다. '예수 사랑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셨네.' 이 찬송을 부르자 별 구경 거리가 없던 섬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몰려 들었겠습니까? 몇 십 가구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모였습니다. 애 못 낳는다고 구박 받던 여자가 갑자기 변신을 해 가지고 와서 미친 사람처럼 찬송을 불러 제끼니 모여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이 여자가 복음 전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믿고 나오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거기서 재미를 보자 그 다음에는 지도로, 그 다음에는 암태도로, 배를 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공산당이 그 섬에까지 들어와 예수를 믿는 다고 해서 이 문중경씨 잡아다가 총살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올려진 순교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대로 가버렸습니다. 그 사람 이름은 역사책에 없습니다. 교회사 책에도 없습니다. 그 사람의 사역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문서가 없습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요 놀라운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렇게 섬 섬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부인을 통해 예수 믿고 돌아온 사람들 중에 목사가 된 사람이 68명입니다. 상상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목사 중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교회 부흥을 주도하고 한국교회 리더쉽을 장악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거목들이 몇 사람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정태기 박사도 분명히 이 부인을 통해 예수를 믿은 것 같습니다. 말은 안 하지만 제가 보기에 틀림없습니다. 그 분이 전라도 섬 사람입니다. 제가 감으로 이 사람도 그 부인 때문에 예수 믿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정태가 목사가 상담학 분야에서는 한국의 일인자 아닙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고 있습니까? 성결교의 유명한 부흥사였고 지금 총회장을 하고 한기총의 지금 책임을 맡고 있는 이만신 목사님도 그 부인에게 전도받은 섬내기라고 합니다.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3,40년 동안 한국의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붙인 위대한 전도자가 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아마 수십 만 명의 젊은이들의 삶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분을 통해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한국 교회의 중요한 자리에서 리더쉽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캠퍼스가 달라졌습니다. 바로 김준곤 박사입니다. 그 사람이 그 섬의 출신이라고 합니다. 저만 섬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문 중경이라고 하는 자매는 김준곤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나타날 줄 몰랐습니다. 그저 젊은이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복음을 들은 김준곤 목사님 때문에 수십 만 명 아마 수백 만 명이 복음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 김준곤 목사님을 통해서 은혜 받고 인생을 바꾼 사람들이 제 친구 가운데도 여럿 있습니다. 홍정길 목사, 이동원 목사, 하용조 목사도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저만 아닙니다. 그 목사님들을 통해서 한국 교회가 얼마나 지금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엄청난 일을 한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문중경 자매를 부를 것입니다. "너 이리 좀 와서 보아라.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 전부 서 있는데 다 네가 전도했구나. 사랑하는 딸아, 네가 전도했구나. 정말 귀하다." "주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안 했습니다." "아니야, 너를 통해서 예수 믿게 된 누구누구 때문에 저렇게 많은 열매가 천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랑하는 딸아, 정말 수고했다." 주님이 그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시고 그 머리에 면류관 씌워주시는 그 날이 오면 이 여자가 정신을 잃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지금 자기가 전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날 놀라운 이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어떤 일을 하실지 모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자랑이 되는 일이면 가장 가치있는 일임에 틀림이 없고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우리의 기쁨이 되는 일이면 그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기쁨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아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짧은 한평생 쌓아놓은 재산에 속지 마십시오. 재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는 휴지조각도 그것보다는 가치가 있을 지 모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이 세상은 불타 없어집니다. 모든 것이 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영원히 사라집니다. 내가 쌓아놓은 재산이요? 무엇이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세상에서 명예롭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권력이나 명예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내 명예가 사용이 됐다면 그 때야 그 명예가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 재물이 쓰임 받았다면 내가 쌓아놓은 재물이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천국 곳간에 들여 놓은 재물, 천국 곳간에 들여 놓은 나의 좋은 것만이 남아 있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그날이 옵니다.
여러분에게 자랑이 될 사람이 누구입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보시고 칭찬하시면서 면류관을 씌워줄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이번에 대각성전도집회 때 열심히 전도하시느라고 수고하신 분들, 바울이 기대하고 바라던 그 자랑과 기쁨과 상급이 여러분에게도 있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대각성전도집회 때 어떤 집사님은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나흘 동안 정신없이 뛰었다고 합니다. 다섯 명의 태신자를 데리고 왔는데 그 가운데서 세 사람이 결신을 했습니다. 직장 4일을 반납하고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직장은 그저 내가 살기 위해서 일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뛰는 이것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그 모두가 나의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뛰어본 것입니다.
어떤 분은 태신자를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었더니 그만 몸살이 나서 마지막 날은 집회에 참석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처음 나온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을 인도한 분이 옆에 앉아 계시죠? 쳐다 보면서 속으로 이런 말을 해 보십시오. "당신, 나 때문에 상팔자 됐네." 거짓말이 아닙니다. 새 형제를 데리고 와서 앉아있는 우리 교회 교인들도 새 형제를 쳐다보면서 "너도 나 때문에 진짜 상팔자 됐네." 서로가 받는 은혜가 너무나 큰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이 오시는 날이 점점 다가옵니다. 그 날을 바라보고 그 날을 사모할수록 나의 젊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도 내가 키우는 자식도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모두 집결될 수 있도록, 한 생이 집결되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영원한 우리의 자랑이요 기쁨이요 찬송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