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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능력/ 시편118:14-21


저는 오늘 읽은 이 시편 말씀을 굉장히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지난 천년 사이에 이 세상에 등장한 많은 설교자들 가운데서 열 명을 뽑으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설교자 한 분이 있는데 바로 영국의 유명한 스펄젼 목사입니다. 그 목사님도 이 본문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그가 50세 되던 해, 즉 희년을 기념해서 교회에서 쥬빌리 하우스라는 기념관을 세워 드렸는데, 그 건물의 머릿돌 위에다 스펄젼 목사님이 이 본문 말씀을 새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본문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세기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위대한 설교자라면 어떤 면에서 굉장히 화려한 목회를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왜 이 말씀을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이는 그에게 정말로 어려운 위기가 자주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죽을 고비도 있었고, 힘이 빠져서 주저 앉고 싶은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본문을 그토록 마음으로 사랑하고 좋아했으며 나중에는 돌비에다 새겨 놓을 정도로 그 말씀의 은혜에서 멀어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오늘 세례 받으시는 분들은 예수 믿고 세례 받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영광이며 은혜인 줄 아십니까?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이와 같은 신령한 지식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아마 전체의 1/100도 안될 것입니다. 왜 예수 믿는 것이 대단합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힘이요, 나의 구원이 되신다.'고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우주를 보존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거룩함과 전지전능하신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신다. 그 하나님이야말로 나에게 구원이 되신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리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우리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얼마나 대단한 존재입니까? 이것을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누구든지 의인이 됩니다.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는 의인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 사는 가정은 의인의 장막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의인이 된 사람에게와 의인의 가정이 된 집안에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되십니다. 구원이 되십니다. 찬송이 되십니다. 믿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 그 사람은 의인이요, 그 가정은 의인의 장막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에 어디 그런 가정이 있습니까? 세상에 어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나 하나님을 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이 되시는 겁니까? 아무나 자기 가정을 의인의 장막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실제로 그 가정이 의인의 장막이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인정을 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고 의인이 되었고 우리 가정은 의인의 장막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요, 나의 찬송이요, 나의 구원이 되셨다고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복을 많이 받았습니까?
다윗은 먼저 본문에서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라고 소리쳤습니다. 나의 힘이라고 소리쳤습니다. 15절, 16절에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권능을 베푼다는 말은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제가 어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해질 무렵 집 옆에 있는 중학교 마당에 가서 산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쳐다 봤습니다. 그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우리 집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의 장막이지.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에 약속하신 대로 오른손을 높이 드시고 우리집을 덮고 계시고, 우리 가정에 축복하고 계시며, 능력을 베풀고 계시는구나.' 그러자 정말 우리집 위에 하나님의 오른손이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어디 우리집만 입니까? 그 아파트에 예수 믿는 가정이 한두 가정입니까? 사랑의교회 나오시는 분들이 한두 가정이 아닙니다. 그 가정, 가정 위에 하나님의 크시고 강하신 오른손이 덮고 있다는 것을 저는 영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몸을 돌려서 삼익 아파트를 보았는데 거기에도 하나님의 손이 있었습니다. 또 저 서쪽을 쳐다 보니 삼풍 아파트가 보였습니다. 삼풍 아파트에도 하나님의 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도 하나님을 믿는 의인의 장막이 한두 가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가정, 가정에 하나님이 오른손을 높이 드시고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밤낮 없이 하나님이 오른손을 들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실을 말씀을 통해 확인하고 믿으면 어지간한 힘든 일을 만나도 주저 앉지 않습니다. 주저 앉았다가도 다시 힘을 얻고 일어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면 필요한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쓰러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남 보기에는 배운 것도 별로 없을지 모릅니다. 남 보기에는 성공을 못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남 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하게 살지 못하는 초라한 집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엄청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른손을 들고 보호하고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초라하게 보여도 우리는 절대로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죽는 것 같아도 절대 죽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오른손이 우리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이 아닙니까? 시편 118편에 나오는 배경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열방이 나를 에워쌌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전세계 모든 사람이 다 자기의 적이 되어서 자기를 포위한 것처럼 느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저희가 벌떼와 같이 나를 에워싸서 나를 죽이려고 달려 들었다.' 얼마나 위기입니까?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의인입니다. 다윗의 가정은 하나님이 지키시는 의의 장막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가정을 위기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7절,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너희들 보기에 내가 죽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나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 붙이지 아니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이 잘못한 것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매를 드시기는 했어도, 절대로 그를 죽음에는 붙이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가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하루하루를 기적같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기적같이 산다는 말을 할 때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서 사고를 당하여 다치거나 죽습니까? 그런데 내가 이렇게 멀쩡한 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인가요? 내가 운전을 잘해서 그렇습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만 가지 병균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고 있는데, 그래도 내가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살고 있는 것이 내가 건강 관리를 잘해서 그런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길에서 구원해 주시고, 모든 병마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나 잘났다' 하면서 세상을 살다가 하루 아침에 집안이 폭삭 망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삼십 세, 사십 세, 오십 세, 육십 세 될 때까지 이만큼 우리 가정이 화목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나 잘나서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구원이 되셨기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주님께 예배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 되셨기에 간혹 내가 잘못할 때라도 하나님께서 경책 하시기는 하지만, 나를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습니다. 위기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망하는 데서 나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 병이 들었다고 해서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서 공포에 떨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쉽게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때문에 죽는 것이지 우리는 병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이요,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데 어떻게 우리 입에서 찬송이 안 나오겠습니까? 다윗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그 말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다오. 내가 하나님 앞에 가 그리로 들어가서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 입에서 이런 찬송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교회에 나와서 앉았을 때는 굉장히 경건한 것처럼 찬송도 잘 하고 하나님께 감사도 많이 하는 것 같아도, 집에 가면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불평불만이 많으면 안 됩니다. 과거에 몹시 어려움을 당하던 시절에 살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서 얼마나 팔자가 늘어졌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불평합니까? 남편에 대해서 왜 불평합니까? 왜 아내에 대해서 불만인가요? 나를 위해 하나님이 이 아내를 주셨다고 생각하면 날마다 엎드려 절은 못할지언정 감사는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자녀들을 놓고 한 번 보십시오. 자녀들로 인해서 고통 당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래도 이만큼 잘 자라 주고, 이만큼 순종하는 자녀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동을 보아도 감사하고, 서를 보아도 감사하고, 그저 감사할 것 뿐인데, 왜 집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얼굴이 찌그러지고 기쁨이 없습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가정에 구원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것을 모르고, 내가 잘나서 사는 줄 알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터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만한 삶을 살면 안됩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됩니다. 외출을 하고 들어와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나를 지켜 주셨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건재하게 집에 돌아 왔습니다.' 하고 생각하면 감사가 있습니다. 병원에 가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병상에서 고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내 폐를 지켜 주시고, 간을 지켜 주시고, 내 혈압을 지켜 주시니, 그래도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면 무슨 불평이 있습니까? 열 평짜리 아파트면 어떻고, 백 평짜리 아파트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주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의의 문을 내게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우리가 이와 같은 능력 있는 삶을 사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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