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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골 4:2-4,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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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 (골로새서 4장 2-4절, 7-9절)
새문안교회 2002. 9. 8 주일예배
설교 최광렬 목사

2년 전 8월 30일 밤, 저는 한 통의 국제 전화를 받았습니다. 러시아 우스리스크에서 사역하던 신대원 동기 선교사가 괴한의 칼에 순교했다는 급보였습니다. 신대원 3년간  세계를 가슴에 품은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약속했던 기도의 동역자였고, 선교의 동역자였던 고 김창식 선교사의 순교의 소식은 제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고 저는 전화기 앞에서 끝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게서 날 위해 죽으셨는데 날 어찌 주를 위해 죽지 못하리. 순교한 선교사가 신학교 시절 즐겨 부르던 찬양의 가사처럼 선교사는 자신이 묻혀야 할 이역만리 우스리스크에서 한인 선교사가 파송된 지 90여 년 만에 첫 순교자가 되어 그 곳에 묻혀 있습니다.

복음은 순교의 피를 따라 전파되고 흘러간다고 합니다. 

복음에 굳게 닫혀 있던 우리 나라에 아주 오래 전 영국의 한 젊은이는 선교하러 왔다가 땅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하고 대동강변에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느냐는 우리가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느냐에 비례합니다. 사랑은 감정이나 열광이 아닙니다. 우리가 희생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독생자를 희생하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 3장 16절은 언제나 감동적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정답은 바로 희생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셨던 우리 주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사랑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000년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73.1%가 복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인구의 33%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10%만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1/3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입니다. 전 세계 24,000 종족 가운데 1만 종족(약 2억 1천 만 명)은 아직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6,800개 언어가 아직도 성경이 전체 혹은 부분이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지구촌은 이제 한 울타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TV와 신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빠른 시간에 접하고 알 수 있습니다.

신학교 때, 순교한 김창식 선교사와 함께 9시를 뉴스를 보면서 '누가 더 많은 중보 기도 제목을 찾는가?'하고 라면 내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50여분의 뉴스가 진행되는 동안 서로가 자그마치 50여 가지나 되는 중보 기도 제목을 발견하고 서로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주위엔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직접 가든지, 안;먄 희생적인 사랑과 기도, 재정적인 후원으로, 선교사와 깊이 협동하는 삶으로 가는 선교사를 돕는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는 1세기 세계의 역사를 바꿨던 그리스도인이요 최초의 선교사였던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골로새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골로새서 1장에서 만유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2장에서 는 믿음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3장에서는 생활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으며, 오늘 읽어 드린 4장에서는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삶 속에 생긴 놀라움과 감격, 그리고 기쁨과 영광을 나 혼자만 간직할 수 없어서 복음 전도의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교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3절은 바로 선교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4장의 요절에 해당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입었노라"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4장에서 자신의 선교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던 몇 가지 원동력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요소는 기도(prayer)입니다.

2절에서 보면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2절)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를 권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말할 것도 없이 선교의 가장 위대한 추진력이요 원동력입니다.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는 책을 썼던 웨슬리 듀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드리는 우리의 기도는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스왈드 스미스는 '우리가 일할 때 일하는 건 우리이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일하는 건 하나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를 설교하고 기도하기를 권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 싫어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강력한 힘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서로 기도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만나면 기도의 제목들을 나누고 서로가 만나지 못하고 떨어져 있어도 기도로서 교제를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20세기 최고의 부흥사였던 빌리 그래함은 '기도는 아침의 열쇠요 저녁의 자물쇠'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 기도의 제목을 주고받고 또한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과 지역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중보 기도해 주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또한 위대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하나님은 영국의 웨일즈라는 한 광산촌 도시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이 도시에 일어난 엄청난 부흥의 불꽃은 자아스라는 한 늙은 여 성도의 기도를 통해 점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웨일즈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 하나님! 이 광산촌에 이름 없는 한 어린아이를 일으켜 세워 주시옵소서. 그래서 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능력을 우리 도시에 보여주시옵소서." 자아스라는 이 노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해 주었습니다.

에바 로버츠라는 13살의 어린아이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주의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로버츠의 전도를 통해서 웨일즈 전 도시가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폭발과,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기도로 세계를 움직여 가는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였던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낫다'까지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에서 바울 사도는 기도의 사람이요 기도의 형제였던 에바브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2절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바로 이런 에바브라와 같이 기도의 사람, 기도의 형제들에 의해 1세기의 선교는 이루어졌습니다. 선교의 추진력이 되고 원동력인 기도에 대한 많은 도전을 받기를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 분의 중보 기도의 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년 전, 저는 고관절염으로 썩어져 가는 좌측 다리를 끌어안고 국립의료원 중환자 실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당시 제 병실을 찾은 한 권사님께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저의 부모님을 대신하여 저를 위해 평생 기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목발을 벗어 던지고 15년만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지 위에 미완의 첫 걸음을 걷기 시작한 저를 위해 그 권사님은 하루도 빼지 않고 새벽기도에 가셔서 기도해 주었고, 그 기도에 힘입어 저는 일어섰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지난 2월 17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오시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소천할 때까지 그 권사님은 20년 동안 한번도 저를 위한 기도를 거른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15년의 힘겨웠던 투병과 17번의 고통스러웠던 수술의 후유증도 신실한 하나님의 노 여종인 한 권사님의 기도에 의해 극복할 수 있었고 오늘날 주의 일에 헌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요한 복음 17장에서 중보 기도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님께서 지금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그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움직이시고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펼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중보 기도의 동역자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중보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모든 사역 가운데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 중요한 사역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보란 말은 '둘 사이를 이어준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 2:9)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종교개혁에 불길을 점화한 위대한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에 대한 설명입니다.

'다리를 놓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하나님과 문제들 사이에 해결의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의 문제, 이웃의 아픔, 아웃의 고통, 이웃의 죄와 같은 문제들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의 사역을 행할 수 있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중보 기도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다스리시고 변화시키고 역사 가운데서 운행하시고 행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려할 특권입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권면하고 계십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십시오. 기도의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십시오. 특별히 선교를 위한 기도를 쉬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태풍 루사로 인하여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이 낙심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도록 물질과 사랑으로 돕기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끊임없이 중보기도해 주어야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선교 사역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었던 두 번째 요소는 선교적인 마음(Mission Mind)입니다.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 힘들 수 있습니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견디기 힘들 수 있습니다

자기가 겪은 일들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선교적인 시각으로, 선교적인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시 한번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바울 사도는 감옥에 들어간 것을 복음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손해를 보고 오해를 받았는지 또한 자신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주님이 어떻게 자신을 쓰실 것인가 여기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뜨거운 소원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를 읽어보면, 바울 사도는 당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의 소원, 절실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은 체포를 당하고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게 됩니다. 이 장면이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입성하게 된 바울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형편과 상황에는 아랑곳없이 비록 제한적이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1세기에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도 바울의 삶이었고 선교적인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이 겪는 모든 상황과 모든 기회를 사용하시어 마침내는 그 환경과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그 신기하고 오묘한 섭리를 경험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인생관을 담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60억 인구가 숨쉬는 이 지구촌 속에 아직도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없이 방치되어 있는 무수한 영혼들, 그들을 위하여 이 세계를 가슴에 품고 그들의 문제를 위하여 기도의 손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세계적 그리스도인의 관점(view)을 가진 새문안인,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과 고통과 절망과 견디기 힘든 환경까지도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새문안인을 하나님은 찾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선교의 놀라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선교의 동역자(Mission Co-worker)들 때문입니다.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낯설은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두기고입니다. 바로 이 두기고를 바울은 사랑을 받은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안에서 함께 된 종(골4:7)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기고는 편지 배달부입니다. 이 두기고 때문에 바울의 편지들이 전달되었고, 오늘의 우리에게도 전달된 것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자리는 아니지만 두기고가 아니었다면 사장(死藏)되고 말았을 바울의 옥중 서신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읽혀 지는 것입니다.

또한 10절에서 사도바울 아리스다고와 마가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성경에 몇 번 등장하지 않는데 바울이 힘들었을 때마다 그 곁에 있어 주었고 지금 그와 함께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계를 품고 당시 알려진 세계를 세 번이나 돌고 당시의 세계를 바꾸었던 바울 사도의 그 비전과 열정과 용기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힘들어 지칠 때마다 그 곁에서 함께 있어 주었고 눈물 흘러주고 기도해 주었던 동역자들 때문이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계 선교와 교회의 부흥은 한 사람의 영웅만을 가지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도 우리에게 낯선 유두고와 아리스다고, 유스도라는 이름 없는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있듯이 우리 교회도 선교나 봉사나 교육이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바로 이름 없이 헌신하고 수고하는 동역자들로 인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것이 1세기 세계 선교의 영웅이었던 바울이 골로새서의 마지막 부분을 쓰면서 이름 없는 동역자들을 일일이 드러내 주는 이유입니다.

남들이 알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자신의 소중한 삶을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주님을 위하여 드리는 자들.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 당하는 고통, 가슴앓이 하는 삶들을 통해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화진에 가면 젊은 나이에 이역만리 동방의 한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의 젊음과 청춘과 생명을 바친 세계 선교의 영웅들이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 새문안 교회와 제가 시무하고 있는 경신고등학교는 바로 이 스물 다섯의 나이에 이 땅에 와서 자신의 전 삶을 드린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교회와 학교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와 눈물과 헌신의 열매로 세워진 우리 새문안교회가 창립 115주년을 맞이하여 국내외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해 언더우드 신학 강좌를 통해 이수영 담임목사님께서는 새문안의 전 성도가 한 선교지 품기 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국내 농어촌 지역이든 세계의 오지의 나라든 그 지역과 나라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기 시작함으로 이 운동이 시작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20세기 세계 선교의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짐 엘리웃이라는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생애를 어떻게 가장 소중하게 바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지금까지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지역에 도전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미에 있는 이오카족 인디안 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빌리 그래함이 졸업한 미국의 휘튼 대학을 최우수로 졸업한 짐 엘리웃은 학교에서 교수 요원으로 선발하겠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졸업 후 친구들과 에콰도르에 가서 선교 사역을 시작합니다. 정글이 많은 지역이어서 야수로부터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 짐 엘리엇과 친구들은 옆구리에 총을 차고 다녔습니다.

그 날도 권총을 차고 밀림을 헤치고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창을 들고 있는 이오카 인디언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옆구리에 있는 권총을 통해 목숨을 지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권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에콰도르의 강가에 그들의 젊은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선교지로 파송된 지 8일 만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 세계로 전해지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신문 기자들이 달려왔습니다. Life지 기자 한 사람이 결혼한 지 3개월이 된 짐 엘리엇의 부인 엘리지베스 엘리엇에게 찾아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왜 이런 비극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그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말씀을 삼가 주십시오. 비극이라뇨?  내 남편은 이 순간, 이 목적, 이 영광을 위하여 이 땅에 온 것입니다. 내 남편의 죽음을 비극으로 표현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녀는 자기 남편이 휘튼 대학 시절에 쓴 경건의 일기 중 한 부분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로 이 대목이 미국과 전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대목은 바로 이렇습니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그것을 위하여 결국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들을 버리는 사람, 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짐 엘리엇 선교사와 저의 기도 동역자였던 고 김창식 선교사처럼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주 앞에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또한 나의 삶이 이 땅의 가장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해 사용되어졌다는 이 자랑스러운 인생의 마지막 결산을 위해 자신의 청춘, 자신의 욕심, 자신의 명예, 자신의 권력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새문안의 그리스도인 여러분!

하나님은 외아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무엇을 위해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결국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들을 위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위해 여러분의 남은 삶을 살아가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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