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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있는 나라> 시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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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나라> 시 2:1-12

오늘 본문인 시편 2편은 본래 다윗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새 왕들이 즉위할 때 가졌던 의식에서 사용되었던 대관식 시편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1-3절은 한 왕이 죽고 새 왕이 세워질 때마다 그 기회를 이용해서 나라를 빼앗거나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음모가 나라 밖이나 안에서 있었으며, 그 왕의 치하에서 메고있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책동이 있곤 했음을 보여줍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4-6절은 그러한 모든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왕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이며, 따라서 그의 왕위와 통치권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고, 그를 대적하는 모든 행사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비웃으시며 진노하시리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9절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과 세우신 왕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에 따라 베푸실 복과 보호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12절은 세상 모든 나라들과 백성들이 이 주권자 하나님의 뜻 앞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을 따르며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이 시편 2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 민족과 그 왕권을 침해하거나 위협하는 모든 이방민족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와 왕권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위기감을 느낄 때에 나라와 왕권의 안전에 대한 확신과 용기와 평강을 얻게 하기 위한 말씀인 것입니다.

왕조가 끊어지고 나라가 멸망하여 더 이상 즉위식이 없어진 시대에는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메시아로 오실 이에 대한 기대와 그로 말미암은 구원과 평화에 대한 소망을 확인하는 데에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편에서의 왕과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 속에서 이스라엘의 민족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신앙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왕을 세우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6 절의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7절의 "너는 내 아들이라 오 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는 말 속에서 그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나라의 주권자이 시라는 것입니다. 4절에서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 시리로다" 한 것이나, 8-9절에서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 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 라 하시도다" 한 것이나, 10-12절에서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 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 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 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 도다" 한 것은 다 그 믿음을 보여줍니다. 셋째,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드는 한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므로, 아무리 크고 많은 이웃나라들이 대적하고 위협하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8-9절의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한 것이나, 11 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한 것이나, 12절에서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한 것은 그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 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위시한 열강들에 둘러싸여 늘 정치적으로 불안한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백성이 외국의 지배하에 치욕을 당하고 토탄에 빠지곤 한 것은 그들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나라와 우리의 믿음에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가르침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너무나 흡사한 지정학적 여건과 역사적 경험을 안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옛 이스라엘과 같은 신정국가이거나 기독교국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민족이 57년 전 일제의 35년간의 억압통치로부터 해방되고 반세기 전 공산권세력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연합군과 함께 승리하고 비록 한반도의 절반뿐이긴 하지만 자유민주체제를 지키며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구해주시고 지켜주신 이 나라가 계속해서 열강 사이에서 살아남으며 번영과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잘 지키는 것 밖에 없다고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세계는 오늘날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비신사적 횡포로 인해서 충격과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쇼트트랙경기에서 너무나 어처구니 없고 억울한 메달도적질을 당해서 아직도 국민적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운동선수뿐 아니라 언론과 대다수의 국민들까지 한 통속이 되어서 미국선수들에게만 유리한 고의적 편파판정과 경기운영을 합리화하며 떠들고 나서는지 분노와 참담한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솔트레이크 시티"라는 이름을 "솔트리스(Saltless) 시티"로 바꿔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의 소금이기는커녕 소금 없는, 즉 소금맛을 완전히 잃은 곳이라는 뜻에서입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은 이란과 이락과 북한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지만, 우리는 이번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드러난 대로의 미국이야말로 올림픽정신을 타락시키고 전세계 스포츠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언론은 비열한 부당판정에 대한 비난여론을 피해가기 위해서 엉뚱하게도 개고기문제를 거론하며 김동성 선수가 화풀이로 개를 걷어차고 아예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죄없이 상처받은 젊은이의 인격을 두 번 짓밟는 훨씬 더 비열하고 악랄한 속성을 스스로 폭로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고 개고기음식문화를 비호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지만,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대단히 악의적으로 조작된 사진보도를 동원하여 한국인의 개고기 음식문화를 비난하는 미국의 언론문화는 더 문제가 있음을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량한 타국의 젊은이를 이유없이 인격적으로 걷어차고 아예 잡아먹으려는 자신들의 행위는 왜 보지 못하는지 묻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이 미국인들의 언행을 지켜보며 오늘 본문의 4절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가 이런 부당하고 억울한 수모를 당하는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약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한 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중국사람들도 개를 먹지만 중국인의 개고기문화나 듣기에도 끔찍한 그들의 온갖 음식문화를 비판하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자국의 음식문화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도 중국음식은 예외적으로 극찬합니다. 음식에 관련된 서양인의 위선을 두 가지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거위간 이야기 개고기를 먹어본 미국사람 이야기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이 세계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나라가 크고 강하면 누구도 그 국민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오늘 본문이 깨우쳐주는 가르침에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크고 강한 나라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대우 받고 존경 받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의지할 것은 하나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섬기는 믿음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결코 타민족 타국가를 멸시하거나 남에게 당한 대로 갚는 보복정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도 더 신실해야 하겠지만, 인간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박애정신과 법·질서·윤리의식에 있어서 남보다 우월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희 미국놈들 오는 월드컵 때 보자", "F-15 전투기는 다 팔아먹었다" 등등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도 꼭같아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정신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가장 공정하게 치러야 합니다. 특히 미국과의 경기에서 지난 번 솔트레이크에서 당한 분풀이를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아주 깨끗하고 신사적인 경기와 대회운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승리하는 길입니다. F-15 전투기도 그것이 정말 다른 어떤 기종보다 우수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라면 사야 합니다. 미국정부와 군수산업자들의 압력과 로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자주적인 판단에 따라 사든지 말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저께는 일제의 압제하에 있던 우리의 선조들이 일제의 총칼 앞에서 맨손으로 일어나 우리나라의 독립국임과 우리 국민의 자유민임을 온 세계에 선언한 의거를 기념하는 83주년 3.1절이었습니다. 이 때가 되면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과 오늘날 우리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가한 온갖 만행과 고통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민족적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아마도 영원히 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이 한 번도 진심으로 그들의 역사적 죄를 인정하고 사죄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조차도 부인하려 하기 때문에 우리의 분노는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러한 분노와 원한 가운데만 머물러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왜 힘없이 35년간 일본에 의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수탈과 오욕을 당해야 했는지 우리 쪽의 이유를 냉철히 물을 줄도 알아야 하며, 또 무엇보다도 이제 다시는 우리에게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분명히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나라인 일본을 언제까지나 미워만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은 단지 개인적인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왜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고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며 피해보상에 최선을 다하는 데 반해, 일본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지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결국 대부분의 독일사람들에게서는 기독교신앙의 양심이 살아 움직인 데 반해서, 거의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에게는 기독교적인 양심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에게서 기독교적 양심이 생겨나고 그 양심이 일본사회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력있는 것이 되기 전에는 한·일간의 근본적인 문제해결과 관계개선은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선교를 중요시하며 일본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사명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을 복음화하기 위해 우리는 일본이 먼저 회개하기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용서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가 아니라, 신앙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우월해야 그들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3.1운동정신은 일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며,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일본을 앞서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정신적으로 일본을 이끌어주려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우리가 일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일본을 복되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먼저 복 있는 나라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 잘 믿는 나라 되지 않으면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그 어느 나라도 우리를 안심시키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실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뿐 아니라 우리 나라를 위해서도 확고한 신앙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나라는 11절 말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즐거워하고, 8절 말씀대로 그에게 구하며, 12절 말씀대로 그를 의지하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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