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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디옥 교회의 자원 / 행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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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의 자원 / 행13:1-3

지난 시간에는 행12장까지 말씀드렸고 오늘부터 13장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보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요절인 1:8절 말씀과 같습니다. 거기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 지방으로 나누어 복음 사역이 전파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보면 이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는데,1장부터 7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 지방에서의 전도 활동이 소개되어 있고,8장에서 12장까지는 사마리아 지방에서의 전도 활동이고,13장 부터 28장 까지는 땅끝 까지 퍼져나가는 전도활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이어질 때마다 반드시 순교자와 함께 세 교회가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즉 첫째 부분인 7장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끝맺음과 동시에 8장은 사마리아 교회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둘째 부분인 12장은 야고보 사도의 순교로 끝맺음과 함께 셋째 부분인 13장은 안디옥 교회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점화됨으로 흩어졌던 그리스도인들 중에 구부로와 구레네 출신 및 형제들이 모여서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설립된 교회입니다. 나중된 자로 하여금 먼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은 핍박 중에 생긴 이 이방 교회로 하여금 교회 역사상 가장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자원이 풍부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1. 안디옥 교회는 유력한 일군이 있었다.
교회는 조직이나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건물이나 시설이나 재산보다 유력한 인물이 더 큰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일군이 많아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러한 일군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바나바’가 소개되었는데 그는 구부로 출신인 레위 족속으로 본명은 요셉이며, 구제와 봉사 정신이 강하여 일찍이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로부터 바나바라는 별명을 받았습니다. ‘바나바’라는 말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행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오, 힘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붙들어주며,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성품은 온유하고 처사가 원만하여 교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있는데 그를 ‘니게르’라 한 것을 보면 흑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다 준 구레네 시몬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이라면 교회의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아니하고 즐거움으로 감당하는 좋은 일군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루기오’도 소개되었는데 그가 구레네 사람이라고 하니 시므온과 함께 북부 아프리카로부터 온 유능한 교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나엔’은 헤롯의 젖 동생이라고 했는데 함께 자라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나엔’은 귀족 출신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울 사도의 전 이름입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인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들 중에 ‘바나바’와 ‘바울’은 선지자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고, 그 외에 사람들은 교사로 신임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는 복된 교회입니다. 유능한 일군들이 있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장 부러운 교회는 사람 수가 많고, 재산이 많고, 시설이 좋은 교회보다는 유력한 일군이 많은 교회입니다.

좋은 일군이 좋은 교회를 이룹니다. 그래서 생동적이고,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여 구원의 역사를 땅 끝까지 이루어 가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각자 나 자신부터 이 교회 안에서 주의 쓰심에 합당한 일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들 가운데 주님께 높이 들려 사용될 유능한 일군을 발굴하고 또 그들을 육성하는 일입니다.
셋째는 현재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일군들을 아껴 주며 신뢰하고 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안디옥 교회의 축복을 받아 보자는 것입니다.

2. 하나 된 교회입니다.
교회는 일치를 생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과 모래와 시멘트와 철근이 각각 흩어져 따로 따로 있다면 그 자체가 무력하여 쓸모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면 돌 보다 더 단단하고 튼튼한 콘크리트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저마다 각심소위이면 무기력한 집단에 불과하나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세상이 당할 수 없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일치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지역 감정이나 민족 장벽도 없었고, 계급투쟁이나 자리다툼도 없었습니다. 본토 출신과 섬사람들이 한 마음이었고,유대인과 헬라인이 한 마음이었으며,귀족 출신과 평민 출신이 한 생각이었고, 선지와 교사가 한 목적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나 사람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교회란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나와 똑 같은 사람만 모이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개성이나,지식이나,직업이나,역량이나,성분을 각각 달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이 교회의 특징이기도 한 것입니다. 다양성 속에 일치를 이룰 때에 보다 더 큰 역사를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높이고 존경하며, 서로 아끼고 감싸주며 사랑하여야 합니다.
서로 수군수군하여 남의 허물을 들춰 말하며, 시기하고, 원망하고, 불평하여 말하는 것은 하나를 이루어 가는데 암초와 같은 것입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하나 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도록 가진 방법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파괴적인 요소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경계하여야 합니다. 즉 배타주의와 파벌주의와 분열 주의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언제나 사탄이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사탄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의의 병기들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상호 보충적이어야 할 개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양식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로서의 다양과 통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치를 이유로 해서 배타적이어서도 안되고 다양성을 구실로 해서
파벌과 분열을 일삼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계속해서 힘쓰며 기도해야 할 제목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3. 갈망과 열정이 있는 교회입니다.
2절에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라는 말씀 가운데 ‘섬겨’라는 원어의 뜻은 ‘레토로기아’ 즉 예배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를 섬겨 금식했다는 말은 금식까지 해 가면서 예배에 전념했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지식층 인사나, 귀족 출신의 신자들은 신앙의 열정과 갈망이 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들의 찬송에 힘이 없고, 저들의 기도엔 냉기가 도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석학이요, 마나엔은 귀족이었으며, 바나바는 신사요, 시므온과 루기오는 상당한 식견이 있는 교사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금식을 해 가면서 예배에 골몰할 정도로 뜨거운 열정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의 열정과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열정과 갈망이 있는 교회는 특별히 예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씁니다. 찬송에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간절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의 생명력은 바로 모임에서 입증이 되며, 예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기준을 잃고 덤비는 광신적인 교회나, 생명을 잃고 굳어져 가는 냉랭한 교회는 둘 다 복음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복음적인 교회는 성경의 기초 위에서 성령으로 불붙어 가는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열정과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간절하게 준비한 그릇 만큼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4.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열정적인 교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시험은 자기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고야 말려는 고집에 빠지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신앙의 열정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해 드리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기를 원합니다’라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요,사상이요,신앙이요,교훈이요,생애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나의 기도와 사상과 신앙과 생활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밤낮 기도하고 또한 금식하며 기도하되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게 해 달라고 졸라 되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로 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기도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의 형제들은 바로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을 통해서 하나님 원하시는 일을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과 주의 뜻을 이루시옵소서----이것이 바로 그들의 기도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말씀하여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을 더 널리 전하라고 하시는 계시입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교회였기에 정도를 거를 수가 있었으며, 능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5.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바로 선교입니다. 선교는 사회에 대한 봉사와 참여와 구제 중에 단연 최고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선교에 대하여 주저하는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라고 그런 이유가 없겠습니까? 안디옥 교회도 선교의 명령을 순종하기가 그리 쉬운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모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제쳐놓고 지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다는 것은 모 교회에 대한 결례가 된다는 예의 파도 있을 수 있고, 선교 사업을 해야 한다면 모 교회가 먼저 착수해야지 왜 우리가 앞장설 필요가 있느냐고 따지는 사리 파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나면 그만큼 안디옥 교회는 인적 또는 물적 자원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실리 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어느 누구도 이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안디옥 교회는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었습니다.

기도가 있는 곳에는 계시가 임하고, 계시의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방향이 제시되고, 방향이 설정된 곳에는 전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보다 더 큰 전진과 성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개 교회의 비대화에만 집착하면 그것은 실상 작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를 통해 복음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교회가 큰 교회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선교와 전도를 일차적인 임무로 알고 힘씀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큰 자산은 집도 아니오, 땅도 아니오, 동산도 아니며,부동산도 아니라 신앙과 덕망이 높은 일군이 있는 교회요,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된 교회요,불타는 열정과 기도가 있는 교회요, 계시의 말씀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순종의 제물과 선교가 바로 교회의 큰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의 안디옥 교회처럼 복된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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