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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원이 무엇입니까? /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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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6:19-31)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원이라 합니다. 이루어질 수 있는 소원도 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도 있습니다. 겉으로 사람을 보고서는 그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소원을 알아야 합니다. 소원은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 인격이 바로 그의 소원 속에 들어있습니다. 소원을 말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는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와 지옥에 간 부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간 거지는 그렇지 않은데 지옥에 간 부자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소원할 것이 없습니다. 다 있으니까요. 소원이란 부족하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옥은 다 없는 곳이기에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입니다. 부자의 소원은 한 가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소원 중에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오늘 지옥에 간 부자의 소원을 통하여 진정한 소원을 정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옥인의 첫 번째 소원

(24절)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참으로 딱한 소원입니다. 매정하게 뿌리치기에는 너무도 간절합니다. 지옥은 고통과 목마름으로 타는 곳입니다. 계시록은 지옥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계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바로 그곳에 부자가 간 것입니다. 그 목마름으로 인하여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된 부자는 간절히 아브라함에게 요청합니다. 나사로의 손가락에 물을 적셔 자신의 입술을 적셔 시원하게 해달라고요.

원래 이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부족한 게 없이 지내던 사람입니다. 좋은 음식이란 음식은 다 먹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손가락에 찍힌 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손가락에 찍은 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만큼 목이 마르다는 걸 말하는 대목입니다. 그 고통이 도저히 참을 수 없기에 물 한 방울이라도 원합니다.

그가 세상에 살 때는 그까짓 물 한 방울을 원했겠습니까? 보다 높은 지위, 보다 값진 보석, 보다 맛있는 요리, 보다 안락한 집 등이 주된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간 그는 전혀 다른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원이 작아졌습니다. 소원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옥은 소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그가 세상에 살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에선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상황이 전개 됩니다. 이미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부자가 살아있을 때 말씀을 못들은 것이, 안 들은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옥인의 두 번째 소원

(27,28절)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는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보다 숭고하고 영적인 소원을 말합니다. 아마 물 달라는 것은 육신적인 것이고 지금 구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라 분명히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들어주지 않습니다. (29절)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세상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말 사고 많은 이 세상에서 아직도 여러분이 살아계심을 축하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오늘도 왜 살려두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는 이들에게 들려주라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인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부자는 간절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들으면 된다는 아브라함의 대답에 또 이렇게 말합니다. (30절)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 말은 기적을 보면 믿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온다면 그 사건을 통하여 그의 말을 듣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아브라함의 표현은 단호합니다. 기적을 보아도 안 믿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구원은 기적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말씀을 들음으로 가능합니다.

지옥에 간 부자는 그 누구도, 자신과 친한 사람이라면 더욱 더 자신이 지금 와 있는 지옥에는 안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옥은 지옥에 간 사람만이 그 곳 사정을 압니다. 부자가 실감나게 우리에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지옥에 간 사람은 누구나 후회합니다. “아무리 사업이 바빠도 교회에 나갈 껄”, “그 때 어떤 성도가 전도할 때 교회에 갈 껄”, “건성으로 교회 다니는 게 아니라 제대로 믿을 껄”, 지옥은 “껄”자 간판이 즐비한 곳입니다.

이 소원은 나쁜 소원이 아닙니다. 자신만을 위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에 속한 소원이 아닙니다. 자신은 회개하지 못해 지옥에 왔지만 가족들은 회개시켜 보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소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데도 이 소원은 수리되지 않습니다. 지옥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소원

오늘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천국은 소원이 필요 없는 곳입니다. 나사로는 아무 소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소원만 있는 곳입니다. 소원은 무성하나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그게 육신적이든 영적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은 너무 괴로워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천국도 지옥도 소원이 필요 없는 곳입니다.

바로 이 세상이 소원이 필요한 곳입니다. 여러분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 소원이 그 사람을 결정합니다. 소원이 어떠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소원도 안 가진 나사로를 보며 그는 천국시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 갖추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족(自足)의 원리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주님이 다 해주실 것이니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바울은 세상 것에는 별로 소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에는 다릅니다.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소원을 알리며 기도를 부탁합니다. (엡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바울의 소원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소원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이뤄지는데 부자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장소 차이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갖는 선한 소원은 이뤄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소원이 이뤄지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소원이 있어도 이뤄지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근데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혹, 손가락에 물이나 찍어 내 입술에 대달라는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까? 보다 큰 소원을 가지십시오. 보다 멀리 보는 소원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소원이 여러분을 결정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고 나서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구하므로 하나님 맘에 들었고, 구하지 않은 물질과 명예도 얻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너무 작아, 하나님의 마음은커녕 사람들의 마음에도 안 들어 이루지 못하고 있진 않습니까. 어른이 인형을 사달라는 격은 아닙니까. 소원을 변경하십시오. 소원이 변경되면 여러분 삶의 태도가 변화됩니다. 부자가 진즉 삶의 태도를 바꿨다면 지옥에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맘에 드는 소원,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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