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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궁극적 관심, 최종적 소원 / 빌 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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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궁극적 관심, 최종적 소원(빌립보서 강해5)
말  씀 : 빌립보서 3:1~21
설  교 : 임정석 목사 (대구평강교회)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라는 단편소설로 널리 알려진 미국 작가 오 헨리는(Henry, O.
1862.9.11.-1910.6.5)는 나이 40에 옥중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독특한 경력의 소설가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오 헨리가 아닙니다.
오 헨리는 예명(藝名)이고 본명(本名)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입니다.

이 헨리는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택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한 은행의 은행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공금횡령 혐의가 자신에게 쏠리고 있음을 간파하고는
남미(南美)로 도망쳤다가 아내의 위독 소식을 듣고는 귀국하여 임종을 지켜 본 후 체포되어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쓴 글들이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 "현자(賢者)의 선물
(The Gift of the Magi)" 등 주옥같은 그의 초기 단편소설들입니다.

이처럼 환란이나 역경, 때로 감옥생활 등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전화위복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쓴 소설 가운데 유명한 소설이 이처럼 "마지막 잎새"라고 한다면
감옥에서 쓴 편지 가운데 유명한 것은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편지 내용을 보면 그가 감옥 속에서도 힘들게 지내지 않고
기쁘게 지내고 있을 뿐 아니라.. 매일 감사와 찬송 속에 지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쓴 편지가 빌립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기쁨을 잃지 않고 참으로 자유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옥 속에서 웃고 있으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까지...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 주는 진정한 힘인데... 본문 1절입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참으로 대단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옥 밖에 있다고......... 다 기뻐하며 사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또 지위가 높다고......... 돈이 많다고.... 다 기뻐하며 사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녀도... 늘 이마에 주름살 펴지 못하고 늘 찌푸리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감옥 밖에 있는데도!! 지위가 높은데도!! 돈이 많은데도!!
기뻐하며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바로 이것이 사실... 저의 관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관심이 되어야만 합니다.
왜 그들은 그 풍족하고 넉넉한 중에도 기쁨으로 살지 못하는가?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합니다.
1절을 다시 한번 더 들여다 보십시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 안에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인데.........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기뻐하며 살되... 주 안에서 기뻐하며 사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이 내가 힘들 것 같지만
힘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 말을 들어야만...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관심이란 대부분 의식주에 있고
여기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집착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먹고 마시며... 옷 사고... 차 사고.. 집 사고.. 하는 일이 있어야 기뻐하며..
그것도 남과 비교하여 더 좋고.. 더 크고.. 더 많고.. 그래야 기뻐하며 사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 주님은 이렇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0-33)

사실 이 말씀은 쉬운 말씀은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주 안에 기쁨이 있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안에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렇고.. 맛을 아직 못 봐서 그렇지... 바로 여기에 참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나서
곧이어 말씀하신 것이 2절에서 "삼가하라는 것" 3가지와
3절에서 "하라는 것" 3가지인데...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이 말씀은 주 안에서 기뻐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 기쁨을 잘 간직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고 지켜야 할 것 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첫번째가 개들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dog)는 말 그대로 개(dog)입니다.

모든 개가 다 똑같이 사랑받고 인정받는 개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집 안에서 주인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잘 때도 함께 자고 하는... 애완용 개가 있는가 하면...
항상 마당에서 주인의 집을 지키며 도둑을 쫓아내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개도 있고...
이 동네 저 동네 마구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 들개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개들을 삼가라는 이 개는 바로 이렇게 돌아 다니는 개들
들개나.. 떠돌이 개를 말하고 있습니다.
2000여년 전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떠돌이 개들의 천국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예를들면 인도는 소를 잡아 먹지 않으니까 소들의 천국인 것 처럼...
이스라엘은 개를 잡아 먹지 않기 때문에 개들의 천국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부자와 나사로"에 보면 거지의 헌데를 개들이 와서 핥더라는
그러한 대목까지도 등장하는데(누가 16:21).. 이러한 개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가 하면..
떼로 지어 몰려 다니며.. 아무 것이나 먹고.. 아무 데서나 배설하고... 아무 개와 교미하고...
틈만나면 자기들 끼리 싸우고.. 또 길 가는 행인들은 괴롭히고 공격했는데...
바로 이러한 개들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는 이방인들을 지칭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처럼 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아니하며!..
미안한 말씀이지만... 정말 개처럼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삼가하면서 살지 아니하면!!..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에 삼가라는 것이며!!...
또 주 안에서 얻은 기쁨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삼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삼가라는 것은 행악하는 사람들을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행악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악을 행하는 사람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이렇게 의도적으로 행악하는 사람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손할례당(損割禮黨)을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이 손할례당이란 할례는 할례인데 손으로 할례했다고 해서 손할례당이 아니고
이 손(損)자는 "상할 손"자로서 몸을 상하게 하여 할례받은 것을 자랑하고 돌아 다니는!!
다시 말하면... 사실 할례는 마음에 할례가 되어야 참 할례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전혀 할례를 받지 않았고.. 그저 몸에만 할례 받은 흔적이 있는...
바로 그 할례받은 상처만 자랑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손할례당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람들.. 즉 외식주의자들.. 형식주의자들을 조심하고 삼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복음 안에서... 주 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개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행악하는 사람들이나.. 손할례당같은 사람들을 사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도 떨어지고... 은혜도 떨어지어... 나중에 가서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들과 같이 되어...
개처럼.. 살게 되고... 행악자들과 같이 되고.. 손할례당과 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삼가고.. 삼가고.. 삼가라..고 주의(注意)를 주신 다음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이 봉사하며 살라는 말은 참 중요한 말로서.. 우리 개역성경은.. 물론 그 뜻은 맞지만
원어에 잘맞게 다시 번역하면.. 봉사라는 단어보다는 예배라고 번역해야 더 맞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살아라...는 이 표현은
성령으로 예배하며 살아라.. 성령의 역사를 따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령의 감동을 따라..
예배하며 살아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살아라...
그래야 주 안에서의 기쁨이 항상 예배 가운데서...
예배를 통하여.. 예배와 함께... 주어지고.. 유지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 보면...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Worship by the Spirit of God. (N.I.V.)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더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신 말씀이...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참으로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신뢰하지 말하는 것은 믿지 말라 의지하지 말라.. 이런 말씀인데
사람들이 주로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은... 집안, 학벌, 재산, 지위, 경력, 이런 것들로서
이런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신뢰하지 말고!! 살아가라니.. 그래서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부분이 어렵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예를 들면서
참다운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하여 어떤 신뢰할만한 것들을 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것입니다.
나는 화려한 과거 경력, 남보다 잘난 경력,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것들...
그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남 보다 열심히 해온 여러 가지 봉사들...
이런 것들은 다.... 사실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고 살아갈 뿐 더러....
심지어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배설물로 여겼다...
똥으로 여겼다고 까지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변화입니다!!

어찌보면 예수 믿고 나서 대단히 손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이러한 변화까지 가져와야 합니다!!

본문 7-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 나의 마음에 주인으로.. 구주로.. 왕으로 영접합니다"
이런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예수님을... 주인으로 구주로 왕으로 모셔 놓았으면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삶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끊으라는 것은 끊고... 계속 하며 살라는 것은... 계속하며 살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예수 믿기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것은 전혀 없고...
하나 있다면 그저 예수 믿고 복 받겠다고 하는.. 그것 하나만 있다면..
이것이 어찌 예수를 믿는 사람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욕심 하나 더 늘은 것 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마음대로 살고.. 욕심대로 살며서... 예수 믿고 복 받겠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가치관이나.. 삶의 목적이나.. 삶의 스타일은 전혀 고치지 않겠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나에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
가치관도 뜯어 고치시오.. 삶의 목적도 뜯어 고치시오..
살아가는 방식도 고치고... 믿는 스타일도 고치시오 하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나는 내식으로 살겠습니다!! 이게 믿음입니까? 고집입니까?
참으로 한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에게서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을 가지게 되면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 아니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무엇을 버렸는데..
나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무엇을 버렸는지..
좀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제가 자주 믿음생활을 정말 바르게 합시다!!!... 하고 외치는데
그것은 아직도!! 믿는다 하면서도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중심이요 왕이요 목적이 아니라!
나의 삶의 중심은 나 자신이고... 나의 삶의 목적도 나 자신이며
그저 그리스도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수단이고 도구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 보십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주인이신가?
나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무엇을 버렸는가?
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삶의 목적인가 수단인가?...........
이것은 정말로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실 예수를 바로 믿게 되면 여러가지가 바뀌게 됩니다.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삶의 목적도 바뀌게 됩니다. 취미 생활도 바뀌게 됩니다.
심지어 기호 식품까지도 바뀌게 됩니다.

이쯤되어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바뀌게 되는 것입니까? 바로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취미 생활이 뭐가 문제 있으며.. 기호 식품이 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이렇게 대들 사람도 있겠지만...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게 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해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대학진학을 위하여 공부하는 고3 학생들이나 재수생들이 공부에 전념하기 위하여..
해로 여기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로 여기는 것은.. 어디에다 삶의 우선순위를 두며 사느냐..
어디에다 가치를 두며 사느냐..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꽤 오래되었습니다 마는... 제가 어릴 때 부산에 살 때의 일입니다.
평소 제가 존경하는 한 장로님이 계셨는데.. 어느날 그 집에 놀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그 장로님을 생각하면 신앙도 좋고 인품도 훌륭하고... 기도도 은혜롭게 잘하시고
이렇게 좋은 인상을 가졌던 분이었는데..
그날 그 집에 놀라갔다가 그만 못 볼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장로님이 미처 치우지 못한.... 재떨이를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장로님은 아직 담배를 끊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장로님도 할말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담배 피우는 것이 죄입니까? 담배 피우면 구원이 없어집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7절에서 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 그것들이 무엇입니까?
그게 다 죄목들입니까? 구원과 관계되는 것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보십시오.

나는 8일 만에 할례받은 사람이다........................ 이것 해로 여긴다.
나는 이스라엘 족속이다..................................... 이것 해로 여긴다.
베냐민 지파다.................................................. 이것 해로 여긴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다............................... 이것 해로 여긴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 이것 해로 여긴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버렸는가.. 무엇을 해로 여겼는가...
이러한 무슨 구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그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이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안먹고..
그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끊고
그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화투(노름)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이젠 다 끊고
그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자랑도.. 입만 열면 자랑하던 그 자랑도 다 끊고! 다 해로 여기고!
그래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해로 여겼다는 것들의 목록을 꼼꼼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8일 만에 할례받았다는 것이 해입니까? 사실 해가 아닙니다!
신분이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것도.. 해가 아닙니다!
베냐민 지파라는 것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것도.. 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은 해도 아닌 것을 해로 여기고.. 해로 여기고
이렇게 한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단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너무나 위대하고.. 너무나 가치 있기에!!
예수님 한분만 얻는다면.. 이세상 모든 것 다 없어도 정말 괜챦다고할 정도로
예수님의 진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7-9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제 좀더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신뢰할만한 것들을 신뢰하지 않고...
해로 여기고.. 심지어 배설물로 까지 여기면서... 애쓰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얻고자 함이고...
자기는 완전히 없어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코자 함인데
이렇게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9절 끝부분에 등장하는 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이것을 가르치고...
심지어 18절에 있는 것 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까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면서 몇가지 질문들 드립니다. 속으로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나의 죄를 위하여 고난 당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가?

나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정말 용기있게 잘 끊은 것은 무엇이며 버린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토록 열심히 기도하며 봉사하며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나아가는 나의 믿음생활의
궁극적 관심, 최종적 소원은.... 정말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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