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0.07.01 22:23

하나님의 때 / 전 3:1 ~ 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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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때 / 2002년 11월 3일
본문 : 구약의 말씀: 전도서 3:1 ~ 8, 13 ~ 14
설교 : 박종화 목사 (경동교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 때가 있다. 찾아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서신서의 말씀: 골로세서 1:13 ~ 20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요, 죽은 사람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살아나심은, 그가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려고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물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

복음서의 말씀: 마태복음서 9:18 ~ 2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지도자 한 사람이 와서, 예수께 절하며 말하였다.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를 따라가셨다. 제자들도 뒤따라갔다.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뒤에서 예수께로 다가와서,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속으로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기운을 내어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가 나았다. 예수께서 그 지도자의 집에 이르러서, 피리를 부는 사람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모두 물러가거라.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셨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무리를 내보낸 뒤에, 예수께서 들어가서,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그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이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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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알기로, 이스라엘의 임금들 중에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임금이 없었습니다. 오늘 구약의 본문 전도서를 읽어드렸습니다만, 전도서를 쓴 사람은 솔로몬 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전도서”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코헬렛”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본래 뜻은 설교, 또는 강론, 전도(傳道)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이름을 전도서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솔로몬 왕이 백성들에게 도를 전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설교하기 위해서 쓴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1장에서 12장까지로 된 이 짧은 전도서를 읽어보면, 이 책은 무슨 설교를 하기 위해서 썼다기보다는, 솔로몬이 자기의 인생고백과 신앙고백을 담아 놓은 일종의 ‘간증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는 위대한 임금, 최고로 호화롭게 살았다고 일컫는 왕, 지혜의 최고봉이었다고 하는 왕, 이런 사람이 이제 인생의 말기에 회고록 비슷한 자기 고백을 담은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서입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아주 유명했던 솔로몬 왕의 자전적 전기, 고백적 전기, 꼭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고백 같은 전기를 읽으면서, 한 가지 감동 받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서전을 쓰면, 자기의 잘못을 기록하는 데 굉장히 인색합니다. 그리고 잘한 이야기를 부풀려 쓰게 됩니다. 대개의 자서전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전도서는 그렇게 유명하고 호화롭게 살았고 훌륭하다고 칭송받았던 왕의 자전적 글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생의 비참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솔직 담백하고 있는 그대로를 내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너무 비극적이고, 인생의 어둔 면만 들추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하여튼 솔로몬의 자전적 기록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세상만사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완전한 허무주의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서, 그 아름답고 호화로운 왕궁을 짓고, 성전을 세우고, 많은 업적을 남긴 솔로몬, 사람의 눈으로 보면 성공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생의 말기에 말합니다. “인생은 헛되다. 내가 했던 모든 일이 헛되다. 만사가 헛되다.” 헛된 것을 자꾸 이야기합니다. “나는 수많은 재물을 가졌으나, 그 재물이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엄청난 명예를 가졌으나, 지혜가 말할 수 없이 풍부했으나, 실컷 향락도 누렸으나, 그것들은 나에게 구원은 아니었다.”
솔로몬은 10장에서 한 가지 예를 듭니다. “향수에 빠져 죽은 파리가, 향수에서 악취가 나게 하듯이, 변변치 않은 작은 일 하나가 지혜를 가리고 명예를 더럽힌다.” 만약 이 말이 자신을 빗댄 이야기라고 한다면, “나는 나와 온 왕국을 향수로 뒤덮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작은 죄, 여성을 탐닉한 죄, 사람을 죽인 죄 하나 저지른 것 때문에, 내 왕궁, 내 향수병에서 온통 악취가 넘쳐 났습니다. 그 작은 일 하나가 향수 같은 지혜도 온통 가리고 명예도 다 더럽혔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사실 그대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 왕이 자조적인 인간만은 아닙니다. 12장 마지막 절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분이 주신 계명을 성실하게 지키십시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요 책임입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거꾸로 자신의 반성이 됩니다. “내 지나온 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고 그분의 계명을 성실하게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내 향수 속에서는 악취가 났습니다.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나처럼 하지 않아야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이 정도 자서전을 쓸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을 두고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우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탈무드」에서 솔로몬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솔로몬의 종달새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종달새 한 마리가 어느 날 새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새는 새장에 갇혀서도 노래를 참 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종달새가 울음을 그쳤습니다. 주인이 하도 이상해서 걱정하다가, 그 이유를 알 사람은 솔로몬 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솔로몬 왕에게 가서 구원을 청했습니다. 솔로몬 왕이 종달새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울음을 그쳤느냐?” 종달새가 답변합니다. “과거에 저는 산에서, 나무 위에서 울기만 했기 때문에 사냥꾼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팔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사냥꾼이 저를 잡아다가 어느 장사꾼에게 팔았고, 그는 또 어떤 사람에게 팔았고, 그래서 제가 오늘 이 집 새장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제 뜻과는 아무 상관없는 상황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산 속에서 자유롭게 노래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새장 속에 갇혀서 아침부터 밤까지 통곡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새장 주인이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노래를 잘한다고. 저는 노래한 것이 아니라 통곡을 했습니다. 보다 못해 어느 친구 새가 저한테 날아와서 말해주었습니다. ”울지 마라. 통곡하지 마라. 하면 할수록 새장은 어두워진다. 침묵하라.“ 그래서 저는 침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새장 주인이 이렇듯 임금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이제 새장에서 나와서,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라. 거기서 맘대로 울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해라.” 주인이 왕의 명령에 따라 이 새를 풀어주었더니 새는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새의 통곡을 아름다운 노래로만 아는 인생, 분노와 좌절을 찬양으로 오해하는 인간, 그런 몰지각한 인간 앞에서, 종달새 한 마리는 침묵으로 저항합니다. 그 침묵이 노래와 통곡을 구분할 줄 모르는 인간에게 충격을 줄 수가 있었습니다. 침묵의 저항, 이걸 솔로몬이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달새를 풀어주었습니다. 탈무드의 모든 이야기는, 솔로몬과 관계 됐던 안 됐던 간에, 야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해주셨는가 하는 구원의 역사와 항상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백 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한 게 아닙니다. 야곱의 형제들이 막내 동생 요셉을 이집트에 데려다가 팔았습니다. 종살이가 뭔지, 장사가 뭔지, 모르는 요셉은 팔린 신세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가서 종살이를 했는데, 그 자손들이 4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한 겁니다. 아마 요셉이, 요셉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갇힌 새장과 같은 속박 하에서 그렇게 탄식을 했고 그렇게 통곡을 했건만, 그 소리를 듣는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에 야웨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십니다. “차라리 침묵하여라. 너희의 통곡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집트인들 앞에서 차라리 침묵하여라. 그리고 양을 잡아다가 하룻밤에 서로 나누어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라. 그러고 나면, 그 다음날 내가 너희를 출애굽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마.” 통곡을 통곡으로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입니다. 배고픔을 배고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생이 구겨지면 구겨진 대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는 것이 인간의 진실 된 태도입니다. 구겨진 것을 다림질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림질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구겨진 대로, 처진 대로,  찢어진 대로,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오시면, 하나님이 알아서 그 소리를 들어주십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갔을 때 늘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배에서든, 집회에서든, 아프리카 사람들은 몸으로 찬양을 합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영과 육을 다 담은 듯한 진실한 노래가 더 많습니다. 여러 경우에 감동적인 집회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고 박수를 치며 “아멘”을 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회에서 감동을 불러일으킨 한 아프리카 성가대는 이런 성가를 불렀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우리는 왜 이리 배고픕니까? 우리는 이렇게 선교를 당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착취당해야 합니까? 왜 우리한테는 물이 없습니까? 바람이 없습니까? 썩은 공기만 있습니까?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 하는 탄식의 노래를 온 몸으로 불렀습니다. 그걸 듣고 본 선교사들은 결코 그들의 진실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참 노래 잘한다고 박수를 같이 쳤습니다.
이 광경을 목도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탄 분으로, 흑백 인종분규가 심각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정권이 바뀐 다음에, “화해와 일치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있었던 데스몬 투투 주교입니다. 이분이 자서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과거에 서양에서 선교사들이 와서, 자기들이 성서를 가지고 왔다면서, 우리더러 눈감고 기도하자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눈을 떴습니다. 우리 손에는 성서가 주어져 있었고, 선교사들은 우리의 땅문서를 가지고 갔습니다. 성서를 주고 땅문서를 빼앗아 간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통곡을 통곡이라고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이건 비단 아프리카나 선교사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사회 현실에서, 이 세계 현실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통곡 소리를 통곡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종달새를 새장 안에 가둬 놓은 사람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통해서 지혜를 말씀하십니다. 새장을 풀어라. 해방시켜라. 자유를 주어라. 그리하여 맘껏 찬양하게 하고 맘껏 통곡하게 하라. 그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께 드리게 하여라.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12년 동안이나 혈루병을 앓는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감히 예수님을 모실 수 없지만,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 같다.” 만졌더니 나았습니다. 한 지도자의 딸이 앓고 있는데, 그 지도자가 예수께 청합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손만 얹어주셔도 제 딸은 나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가셨더니 딸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과 유대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결론은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목을 잡아 일으키시니 그 아이가 살아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은 게 아니라 자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혼란한 질병으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 불치의 병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고난과 갈등, 질병, 번뇌, 좌절, 분노의 감옥에 갇힌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당신들은 단지 감옥에 갇혀 있을 뿐, 갇혀서 침묵으로 저항하고 있을 뿐, 결코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감옥에 갇혀서 침묵하는 것은, 새장에 갇혀서 노래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죽음이 아닙니다. 인간이 볼 때는 그 시간은 죽음의 시간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 시간은 죽음의 시간이 아니라, 잠자는 시간입니다. 그 사람은 그를 둘러싼 껍질을 벗겨 해방시키면 다시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으로 살아날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속박의 굴레를 벗기고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으시면, 골로새서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모든 인간과 모든 자연과 화해하십니다. 그것이 생명의 시작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도탄에 빠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웃 국가 중에도 그런 국가가 많습니다. 그런 민족도 많습니다. 통곡을 통곡으로 아는 사람들, 찬양을 찬양으로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속에 하나님이 임하신다고 했습니다. 회칠한 무덤 속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열려진 가슴속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지혜가 있고, 재능이 있고, 부가 있고, 권력이 있어도 하나님이 오실 길을 막으면 여전히 우리는 껍질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통곡을 해도 그 소리를 못 알아듣습니다.
껍질을 깨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속에 오신다고 합니다. 속삭이듯 말씀하시면서 오신다고 합니다. 죽음의 껍질을 깨면 생명의 손길이 임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한테 얼마나 자주 가까이 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십시다. 하나님의 일거리를 남겨두십시다. 왜 인간들이 독점합니까? 하나님이 사랑하겠다고 하시는데, 왜 나 혼자 다 사랑하겠다고 합니까? 다 사랑할 수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일거리를 드리십시다. 하나님에게 시간을 드리십시다. 하나님께 공간을 드리십시다.
인간의 모든 것은 하나님 없이는 허무일 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함께함으로써 하나님을 모셔들이십시오.
두드리십시오. 찾으십시오. 구하십시오. 그러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내가 간다. 나를 맞이하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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