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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서 / 마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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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용 서
설교 : 조 용 기 목사
성구 : 마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용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간들이 전쟁으로 황폐하게 만든 산과 들에도 봄이 오면 또다시 풀이 나고 들꽃이 피어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치료합니다. 인간의 파괴 행위에 대한 자연의 용서인 것입니다.
서울의 한일월드컵 축구대회를 연 상암축구장이 선 난지도를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서울 시민들이 만든 흉물스런 쓰레기 동산이었던 곳이 이제는 아름다운 자연학습동산이 되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환경파괴를 행위를 용서하고 다시 아름다운 생명으로 재건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는 근원적인 힘이 됩니다. 거기에는 자연이나 인간의 차이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용서에 대한 기도를 매일같이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런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어떤집의 딸과 손녀가 길을 건너 가다가 과속차량에 치어서 딸과 손녀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딸의 어머니가 자기딸과 손녀의 죽음을 애통하고 통곡을 하고 있을 때 그 자동차 운전수가 경찰에 잡혀 왔습니다. 그 운전사는 말하기를 실수로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하다가 이런 사고를 범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기왕 딸과 손녀가 죽었는데 더 어찌하겠는가 실수로 그럴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용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니 딸과 손녀를 치고 이 사람은 뺑소니 하다가 경찰에 잡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용서할 생각이 싹 사라지고 괘씸한 생각과 복수심이 생겨났으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굉장히 고민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흉악한 놈에 대해서 내가 복수를 해야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용서해 주어야 될 것이냐? 그러나 그는 오래 생각한 끝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해 주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움과 복수심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 자체가 자기를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또 사회생활 중에서 부정적으로 만들고 불행하게 만들며 결국 파괴는 자기가 당하지 사고를 낸 그 뺑소니 운전사에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하고 주님 안에서 그 뺑소니 운전사를 용서해 주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로 15절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또 어떤 사람의 간증을 들었는데 딸을 강간한 남자를 찾아서 아버지가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총을 쏘아 죽이고 난 다음 복수를 했다는 마음의 시원함을 잠시 있었으나 그 사람에 대한 증오는 계속 마음에 남아 심신을 파괴하여 그는 계속 술을 마시게 되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폐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딸을 강간한 그 나쁜 놈을 총으로 쏘아 죽여도 그에 대한 미움과 원한이 내 마음속에 있는 이상 그 원한이 나를 폐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외형적인 복수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외적인 복수가 마음에 미움의 문제를 해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로 44절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실천하기 힘든 것입니다. 내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어마어마한 미움의 파괴에서 해방시키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로 32절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란(네덜란드)의 유명한 부흥가 셨던 코르텐분여사의 말을 들으면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사의 집이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가족들이 모두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아버지와 언니는 그 가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서 노동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만 여사만이 구사일생으로 전쟁 후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주의 여종이 되었습니다. 여사가 복음을 증거 할 때 성령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 큰 상처를 입고 있다.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 여사는 하나님께서 가시라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만 독일은 나는 못 갑니다. 하나님 그곳만은 빼주십시오. 독일사람이 우리 아버지도 죽이고 언니도 죽이고 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당한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 독일 사람에게 가서 내가 복음을 증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랑하는 딸아 내가 나를 저주하고 욕하고 등진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진 것을 기억하라. 네가 내 딸이면 독일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 그 말씀을 듣고 여사는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주께 나오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는데 하루는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 내려서자 많은 사람들이 악수를 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한참 악수를 하는데 허름한 외투를 입은 한 남자가 앞으로 다가오는데 심장이 멎고 온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악명 높은 자기에게 무지무지한 고통을 가한 강제노동수용소 감독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한겨울 이른 새벽 여자포로들을 발가벗겨 밖에 서있게 하고 먹을 것도 주지 않고 갖은 횡포로 괴롭혔던 장본인이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 손에 의해 그 여사의 어머니와 언니가 강간당하고 견디지 못하여 끝내 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 강제수용소에서 있었던 악몽같은 괴로운 기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치는데 앞에 있는 바로 그 당사자 남자가 손을 내밉니다. 그 남자는 전쟁당시 수많은 여자 포로들을 죽여 봤기 때문에 여사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여사는 꿈에도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할 수가 없어서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늘에서 진노의 벼락이 내려 이 사람을 때리기 전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를 도와 주십시오. 저는 도저히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좀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못박고 죽이고 침 뱉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향해서 내가 용서했지 않느냐? 너도 용서해 줘라."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면 못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서 그의 손이 나가서 그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무거운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란 사람인 당신이 전쟁때 우리가 저지른 죄를 용서하고 복음을 전해 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 주님 앞에 나왔으니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십시오." 그 순간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의 사랑이 여사에게 넘쳐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미움과 원한이 눈 녹듯이 다 녹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큰 사랑으로 그 사람을 용서해 주고 그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때 그 마음속에 쓰린 원한이 치료를 받고 그 이후로 온 세계 다니면서 용서와 사랑을 힘있게 전할 수가 있었다고 그의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8장 21절로 35절에 보면 일만 달란트 빚진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임금님이 자기에게 일만 달란트, 현재 돈으로 말하면 약 1천만달러, 우리 한국 돈으로 1백20억원의 빚진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 불러다가 "빚을 갚으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너의 처자를 다 종으로 팔겠다." 이사람이 땅에 엎드려 간절히 용서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보고 도저히 그 사람 힘으로 120억원의 돈을 갚을수가 없어 그만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용서를 받고 머리를 조아려 감사하고 기쁨에 넘쳐서 나오는데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만났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요사이 돈으로 환산하면 약 2만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120억원의 빚을 용서받고 나온 그에게 2만원 빚진 친구를 만나서 멱살을 잡고 "이놈아 빚을 갚아라."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갚겠나이다." 그는 이 사람을 당장 끌어다가 고소해서 구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친구들이 너무나 괘씸하게 여겨서 임금님에게 그 사실을 고했습니다. 임금님이 도로 이 사람을 불렀습니다. "야 이놈아 나는 너에게 120억원의 큰 돈을 탕감해 주고 용서해 주었는데 너는 너의 형제 2만원 빚진 자를 잡아서 구치소에 넣었다니 이 고약한 놈, 이놈을 잡아다가 감옥에 넣어서 120억을 다 갚을 때까지 고생의 떡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하고 괴로움을 당하게 하라." 그렇게 하시고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도 가까운 네 이웃에게 죄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이 사람처럼 하시리라." 우리의 삶 속에 다가오는 많은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은 우리가 용서해 주지 못함으로만 당하는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눈에 안보이지만 우리는 많은 염려, 근심, 고통, 좌절, 절망의 감옥속에 들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해방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용서를 해주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 진노의 채찍을 내리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로 14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면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1절로 11절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새벽 일찍이 성전에 나가서 말씀을 가르치는데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보니까 여기 바리새교인 사두개인 교법사들이 한 여인의 머리채를 끌고서 예수님 앞으로 나옵니다. 그 여자는 눈물에 얼굴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몸은 찢어지고 신발은 벗었습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이 여자를 내동댕이 치고 난 다음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도 안하고 허리를 숙이더니만 손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주님이 그곳에 십계명을 그곳에 적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계속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하겠나이까? 그들은 손과 손에 이 여자를 죽이기 위해서 돌맹이를 들고 몽둥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천천히 허리를 펴셔서 큰자로부터 작은자까지 눈을 맞추어서 훓어 보시고 난 다음 장엄한 음성으로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쳐라" 그리고 난 다음 고개를 숙이시더니만 다시 손가락으로 적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적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만 저는 뭘 적었는지 압니다.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주님이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어깨 너머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볼 때 자기들의 감춰진 죄가 백일천하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고 한사람, 두사람 돌맹이를 그 자리에 버리고 살며서 빠져나가서 도망을 쳤습니다. 한참만에 예수님께서 일어나 보니 그곳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흩어진 돌맹이와 몽둥이만 남아 있고 사람들의 그림자는 없습니다. 다 도망을 쳤습니다. 요한복음 8장 10절로 1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자가 충혈된 눈으로 돌아보니 아무도 그를 고소하는 자가 없습니다. "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여러분 예수님의 이 크신 용서와 자비를 보십시오! 모세의 제자들이 와서 모세의 율법을 따라 돌로 쳐죽이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 친히 모세의 율법 십계명을 적으시고 그들의 죄를 적나라하게 들어내서 다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 죄를 짓지 말아라." 용서와 사랑과 자비로서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는 사람은 모두다 위선자입니다. 자기의 죄가 백일천하에 드러나면 이 자리에 있던 이 여인을 정죄하던 사람들이 도망치듯이 다 도망을 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감추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합니다만 자기의 죄가 드러나면 얼마나 무서운 위선자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다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 성경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는데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이 누가 있습니까? 남을 정죄하면 그 정죄하는 것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바울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했어요. 죄를 짓지도 아니하셨어요. 그러나 우리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신 것이 아니라 이 성경에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죄덩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영도 마음도 몸도 죄덩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처참하게 죄값을 받으시고 몸을 찢고 피흘리셔서 우리의 죄악을 다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알고 우리가 회개를 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은혜를 알고 회개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아무리 주님께서 이렇게 해도 소용이 없지요. 열사람이 말을 끌고 물가로 가져갈 수 있지만 강제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무리 위대한 은혜와 용서를 베풀어 놓아도 우리 스스로 마음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요한1서 1장 9절로 10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죄가 없어요. 회개할게 뭐가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 있다고 말씀했는데 죄가 없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데 그리하고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설 수 없지요. 솔직히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이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103편 12절로 13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셋째로, 이제 우리는 이웃을 용서하고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면 자기를 용서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여 좌절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한 중년의 자매님이 오셨습니다. 그는 아주 귀하게 생겼고 옷도 잘입었습니다. 좋은 자동차를 타고 왔습니다. 알고 보니까 어느 회사의 남편이 중역으로써 생활이 아주 부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님은 앉자마자 큰 한숨을 쉬고 눈물을 비와같이 흘립니다. 자기는 도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려고 해도 믿을수가 없고 자기는 너무나 자기가 원망스럽고 미웁고 죄책으로 견딜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그러냐고 물으니까 6·25때 너무나 어려울 때 자기는 홀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홀로 사니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나 현재 남편을 만났는데 부산에서 떠도는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같이 모시는데 어머니가 피난살이에 너무 고생하고 눈물을 많이 흘리고 살았기 때문에 그만 치매에 걸렸습니다. 단칸방 생활에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대소변을 방안에서 그대로 보고 옷을 찢고 도저히 혼자 내보낼 수 없는데 두사람이 다 나가서 죽도록 피난살이게 벌어야 먹고사는데 치매된 어머니 때문에 너무나 고통하다가 남편이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치매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당신하고 내가 도저히 단칸방에서 살수 없으니 헤어지자. 이 여인은 남편과 헤어지면 이제 죽는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이 어머니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시골에 내려가서 시골길에 내려놓고 돌아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이 부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있자니 남편하고 이혼을 해야 되고 남편과 함께 살자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버려야 되고 그 가운데 그는 결단하고 어머니를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시 소식을 알 수 없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서 남편은 점점 진급해서 이제 큰 회사의 중역이 되고 잘살게 되었는데 낮마다 밤마다 그 죄책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짖눌러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저히 이제 정신적으로 살수가 없어 우울증에 걸려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때 내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어느 누구도 자매님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 처할 때 피난살이에 자매님과 같이 결정안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남편이 치매 어머니를 데리고 있으면 당신 버리겠다고 했는데 당신 연약한 여자로써 치매걸린 어머니를 데리고 살수가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 살고 늙은 사람을 세상을 뜨게 해야 되겠다는 그런 선택을 누구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모두 지나간 일입니다. 그때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면 모르겠거니와 크리스챤도 아니었어요. 이제 당신을 구박하고 박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당신같은 죄인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주님이 다 이루시고 용서해 주었으니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당신도 스스로를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은 끊임없이 당신을 정죄할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용서해 주신 것을 당신이 용서 안해주면 당신은 예수님보다 더 높은자가 됩니까?" 그래서 그는 눈물을 흘리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예수님을 믿고 자기를 용서해 주고 그 용서해준 기쁨과 감격이 너무 깊어서 중년의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이 되어서 아마 지금도 어느 곳에서 주를 섬기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자기 학대를 계속하면 삶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고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서 3년 반 동안 배운 수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혀서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에서 심판받을 때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는데 세 번째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피투성이가된 예수님이 뒤를 돌아 봤습니다. 예수님이 눈이 부딪히자 그는 밖으로 나가서 가슴을 치고 몸부림치고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미웠습니다. 견딜수 없는 자책감이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해 주고 안해주고는 둘째 문제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3년 반동안 그리스도를 모시고 따라 다녔는데 그가 큰소리로 내가 주님이 감옥에 가면 나도 같이 따라가고 죽으면 같이 죽겠다고 한 그가 예수님을 그냥 부인한 것이 아니라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자괴감에 견디지 못해서 시골로 내려가서 옛 어부생활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갈릴리로 내려가서 낡은 배를 끄집어내고 그물을 다시 기워서 옛 어부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져도 고기가 잡힐 턱이 없습니다. 정신이 없는데요. 그런데 새벽 안개낀 저 해변에서 누가 서서 말합니다. "얘들아 무엇이 있느냐?" "아무것도 못잡았습니다."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보라."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많아 헤어져서 그물을 찢어지니 요한이 말하기를 "예수님이시다." 그들이 그 그물을 끌고 나오는데 베드로는 도저히 양심에 고통에 그냥 배타고 나올 수 없어서 물에 뛰어들어가서 헤엄쳐 나왔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하더라도 조금 자기가 위로함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한것입니다. 그 다음 장면 보십시오. 요한복음 21장 15절로 17절에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 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세 번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시인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베드로가 당혹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사랑한다 해놓고 또 언제 배반할지 모르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아시나이다. 나는 몰라요. 주님께서 나를 아시나이다. 나는 지금은 주님을 사랑하지만 또 언제 배반할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세 번 그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주님께서 강력하게 용서와 인정을 해주시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의 확실한 용서와 용납에 베드로는 자기를 용서하고 받아 들일수가 있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용서와 사랑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미워하고 혐오하던 어떤 사람도 자기를 용서하고 용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3절로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용서하시니 누가 정죄합니까? 하나님이 의롭다하시니 누가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떻게든지 자기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국민일보에 나온 기사를 보니까 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절반정도는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하고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면 퇴원할 수 있는 환자들이라는 임상보고가 나왔습니다. 절반정도의 정신병 환자들은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미움과 원한과 복수심을 가진적이 있고 현재에도 그러한 삶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마음에 자리잡은 미움, 원한, 좌절감, 자기 학대 등은 그 무엇으로도 고칠수가 없습니다. 이와같은 부정적인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으면 삶이 어둡고 부정적이 되고 불행합니다. 이와같은 마음의 쓴물은 오직 용서를 통해서만이 치료되고 해결되며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 이 용서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와서 그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바라보고 거기에서 내가 내 이웃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그 용서 속에서 자기의 잘못조차 용서하여 자기 혐오해서 벗어나면 비로써 마음이 젓과 꿀이 흐르는 물댄 동산 같이 되어서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 속에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죄짓지 않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원한과 미움을 품고 있으면
이것은 무시무시한 독을 품어내고 자기를 파괴하고 좌절과 절망케 합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자기를 용서하고
그 결과 사랑이 넘쳐 나서 변화와 행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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