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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흔적이 있는가? / 갈 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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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흔적이 있는가?
성경본문 :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설    교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형제들아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목회기도>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어떤 이들은 불러 가시고 우리들은 남겨 두신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오늘,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육신이 약하여… 믿음이 없어, 결단치 못하여
감추고 있는 부끄러운 흔적들을 가진 채 여기 모였습니다.
용서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세상은 뒤숭숭하고 서로 인물이라고, 대통령감이라고 자랑하며…
저마다 서로 잘났다고… 잘산다고… 자랑하는 이때
특별히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보통사람이지만
여기 가지 가지 사연들을 감추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 예배드립니다.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새 힘을 얻는 시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난하여 어려운 이들이 왔습니다. 병들고 괴로운 이들도 있습니다.
마음 상하여 눈물 참는 이들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처진 어깨를 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저앉은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걷기도 하며 뛰기 원합니다.
이 복된 자리에 함게 있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군대에, 객지애,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병들어 몸이 아플 뿐 아니라
병원에 입원하여 중요한 치료를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 평안케 하시고
우리와 함께 예배의 자리에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부족한 종의 입을 지키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따라서 하십니다. "참 멋지십니다. 잘 어울리십니다."
옆의 분에게 "참 멋지십니다. 잘 어울리십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상하게 하고 온 분에게는 "새로운 느낌입니다"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서 잘난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자기를 자랑 하며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내가 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배운 것, 능력… 등을 내세우는 대통령 후보들을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통령 후보라면 무엇을 자랑하시겠습니까?
무엇을 자랑하며 사십니까?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가정에 자랑거리가 많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식에게, 여러 가지 일로 자랑거리가 많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자랑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교만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한 바울
 
오늘 본문 말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보면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행8:35, 롬1:1~4)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복음을 간직한 후에는(고전1:17~18, 요3:16)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았습니다.
- 당시의 최고 학문을 했던 가말리엘의 문하생(행22:3)이었습니다.
- 장막을 짓는 기술자(행18:3)였습니다.
- 로마의 시민권자(행22:28)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외에는 더 드러낼 것도, 드러내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우리에게 십자가가 왜 자랑거리입니까?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된 것이며,
그 사랑으로 구원과 영생을 허락하신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요11:25~26).
 
그래서 우리 기둥교회에서는
교회 밖에도 십자가, 강단에도 십자가, 천장에도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까지 십자가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장식품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영생의 소망이 생기고, 길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도 바울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의 흔적(the marks of Jesus)을 가졌다고 고백합니다.
바울 사도가 전도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유대인 중 몇 명이 믿음을 저 버리고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서
바울의 사도권까지 부정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절에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도리를 밝히면서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더이상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선언했습니다.
 
"흔적"이란 말은 헬라어로 "스티그마타"라고 하는데
영문 성경에는 마크(mark)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고대(古代)에는 자기 소유의 노예나 짐승에게
화인(火印)을 찍어서 소유권을 표시했습니다.
요즘에도 방목하는 목장에서 누구의 소유인지 알 수 있도록 표시합니다.
 
바울은
- 돌에 맞아 죽을 뻔했고(행14:19)
- 태장으로 맞기도 했고(고후11:25) 
-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핍박들이 많았습니다.
  (고전4:11 / 고후4:10~11 / 6:5,9 / 11:24~25)
그로 인해 그의 몸에 많은 상처들이 있었습니다.
그 상처들이, 그 흔적들이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을 받았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 흔적은, 낙인은 확실한 주종(主從)관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당시 한번 찍힌 낙인은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 노예로 낙인 찍히면 평생토록 주인의 뜻에 따라 절대 순종해야 했습니다.
 
• 흔적은, 낙인은 소속을 나타냅니다.
누가 주인인지, 누구에게 속한 노예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표현은 
<나는 예수님께 소속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것이다>라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어떤 흔적을 남기셨습니까?
 
이제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이 때에…
교회의 구석 구석, 부서 부서에서 책임 맡아 일하던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흔적을 가졌으며, 어떤 흔적을 남겼습니까?
2002년, 아직 달반 정도 남았지만 지금까지 어떤 흔적을 남기셨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가진 흔적이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겪은 마음 상함이나 아픔, 손해가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당한 따돌림이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며… 당당한 삶을 살아야 하고
충성된 삶을, 칭찬 받는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 열등감(劣等感)에 사로 잡혀있지는 않았는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나는 부족합니다, 못합니다, 틀렸습니다, 안됩니다…'라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절망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서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 드리는 사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내시기 전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자신의 자격을 탓하고, 무지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며, 하기 싫다고 했습니다(출3장~4장).
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 "내가 누구관대"(출3:11)
② 무지를 고백했습니다. - 하나님이 이름 물으면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3:13)
③ 무능하다 했습니다. - "나는 말에 능치 못한 자라…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④ 하기 싫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출4:13)
 
이런 모세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를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을 택하실 때도 용모와 신장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그 중심을 보셨습니다"(삼상16:7).
젊은이들에게 사람을 소개하려고 할 때 대부분 "믿음만 좋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개를 시키고 난 후에는 키가 작다고, 얼굴은 어떻게 생겼다느니…
하나님이 보시지도 않는 용모와 신장을 사람들은 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자고하며 교만에 빠지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면서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 교만(驕慢)에 사로 잡혀있지는 않았는지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면 교만에 사로 잡혀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내가 이런 것을 할 사람이 아닌데, 부엌에서 밥이나 하고 있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만든 밥을 먹고 그 가족들이 건강하겠습니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정도의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아느냐"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선교회원들이 자기와 질적으로 맞지 않고
수준이 낮다고 선교회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백성입니다(요3:16).
여러분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1:12).
여러분은 예수 믿고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습니다(빌3:20).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수준이 맞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수준이 맞느니, 안맞느니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지 못할 사람입니다.
 
사울의 실패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왕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선지자, 제사장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에
빠져 들어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목사가 뭐야, 내가 하면 되지"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울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 나태(懶怠)한 것은 아니었는지요?
열등감에 빠지거나 교만한 것이 아니라면
나태(懶怠)의 늪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만 하면 됐지 뭐.' 또는 '이만하면 잘했다, 나도 예전에 해 봤다'고 하는 것은
곧 게으름에 빠진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끝"이라고 선언하시기 전에, "잘했다. 이젠 쉬어라"고 선언하시기 전에
우리가 결론짓고 쉼에 자리에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신앙생활하면서…, 2002년에 살면서…
어떤 열매를 맺었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갖게된 흔적이 무엇인지요?
●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감수할 것이 있습니다.
- 희생(犧牲)이 있어야 합니다.
• 첫째로, 시간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자리에, 주일낮예배 뿐 아니라 주일밤예배, 수요일밤예배,
기도하는 자리에, 성경을 읽고, 듣고,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희생이 시간의 희생입니다.
• 두 번째로, 물질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드림이 없다면 그것은 온전한 희생이 아닙니다.
투자가 없으면 거둠이 없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너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드림이 없는 것은 투자가 없는 것이며 희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 세 번째로 십자가를 지기 위한 상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가졌던 '핍박과 고난의 흔적'은 아니더라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마음 상하고, 눈물을 흘리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가 있고,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 비판(批判)도 감수해야 합니다.
• 외인들의 비판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 잘 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러분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런 비판도 감수해야 합니다.
• 그뿐 아닙니다. 함께 예수 믿는 사람들간의 비판도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들 가운데, 교회에 오래 출석한 사람들 가운데도
다른 사람을 좋게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일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향해 비난합니다.
자신은 찬양대로 봉사하지 않으면서
찬양대원 중에 틀리는 사람만 가지고 말합니다.
자신은 주방에 가서 한번도 일하지 않으면서
'김치가 짜다, 국물이 싱겁다…'고 투덜댑니다.
그런 비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천사는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예수님과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순간 온전해 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허물과 죄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도 감수해야 합니다.
• 신앙생활 하는 것 때문에,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주일성수하는 것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앉을 수 없다고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어울릴 수 없다는 말에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 때로는 아픈 물러남도 있어야 합니다.
한 시절을 멋있게 보낸 낙엽이 떨어집니다.
떨어진 낙엽은 나무 밑에서 썩어서 땅속에 스며들어
새로운 싹을 낼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다음에 돋아날 싹을 위해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일하던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임기를 끝낸 경우에, 은퇴를 한 경우에,
뒷 자리에 물러난 후에 다음 사람에게 협조자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썩어 뿌리에 영양을 공급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자리에 있다가 뒷자리로 물러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몸에 변화가 옵니다.
이가 흔들리고, 눈이 침침해지고, 얼굴에 주름이 잡힙니다.
머리칼이 희게 변합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살아온 세월을 증명하는 흔적들입니다.
문제는 <그 흔적이 어떤 것이었는가? 어떻게 살며 생긴 흔적이었는가?> 입니다.
 
상처도 상처 나름입니다. 흔적도 흔적 나름이며 눈물도 눈물 나름입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얻은 상처는 오히려 부끄러운 것이며
자기가 잘못해서 흘리게 된 눈물은 부끄러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상처라고 해서…, 마음 상하는 것이라고 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모두 그리스도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 1학기 까지 강원도 철원에서 자랐습니다.
당시의 그곳의 <향원 교회>는 언덕위에 있는 참으로 예쁜 교회였습니다.
교회를 둘런싼 사방은 과수원이었습니다.
사과, 배, 복숭아… 등 여러 가지 과일이 많았습니다.
그 과수원의 주인은 교회의 장로님이셨습니다.
그 장로님께서 언덕위의 제일 좋은 자리에 교회를 짓도록 땅을 내놓으셨습니다.
교회와 과수원 사이에는 철조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를 기다리기 보다는
과수원의 열매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친구들과 과일을 서리하러 철조망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주범(?)은 아니었습니다.
한참 과일을 따고 있는데 "이놈들~"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 아들이었던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도망을 빨리 가야했습니다.
허겁지겁 온힘을 다해 철조망 밑으로 빠져 나오다가 그만 철조망에 등을 찢겼습니다.
그때 등에 찢긴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설교시간에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그 장로님이 과일을 종류별로 가지고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숨어서 무슨 일인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장로님이 제 어머님께 과일을 주시면서 큰 목소리로
"이것, 신일이 많이 주세요."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참 좋으신 장로님이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신귀철장로님'의 성함은 아직도 제가 기억합니다.
제 등에 난 상처는 예수님 때문에 난 상처가 아닙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가 스스로 잘못해서 얻은 상처, 눈물을
하나님을 향해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매맞은 상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지고 가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지는 상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꺼이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편이, 아내가…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가, 자녀가…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그 짐을 잘 지고 가야 합니다.
- 일터에서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기에 기꺼이 지고 가는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 교회에서도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기에 기꺼이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장로이기 때문에, 권사, 집사, 교사, 찬양대원이기 떄문에…
그로 인해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 짐을 잘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기둥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민을 갔거나 먼 곳으로 이사를 가신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에서의 생명을 다해 별세하신 분도 계십니다.
그분들 중에 교회에 출석하면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분이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목사에게 아픈 상처를 남기고 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봉사와 섬김, 희생과 헌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드러나게, 표나게 큰 일을 하고 가신 분들도 감사하지만
이름 없이 빛 없이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중에 제가 얼핏 기억나는 한 분만 소개해 들리겠습니다.
제 기억에 그분은 넉넉하게 생활 하시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많이 배우신 분도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열심히 사셨습니다.
70이 훨씬 넘은 고령에도 새벽에 교회에 나와 새벽기도 하시고
물통을 들고 약수터에 가서 물을 뜨셨습니다.
당신의 몸에 부담이 될 만큼 많이 떠오셔서 교회에 반통을 두고 가십니다.
그리고 제게 "목사님, 이 물 드시고 건강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낮 시간에는 휴지를 줍고, 고물을 주워 팔아 번 돈을 봉투에 담아 오셔서
"목사님, 이것 늙은이가 만든 몇 푼 안되는 것이지만
교회를 짓는데 벽돌 몇 장이라도 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셨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이기만 권사님>이라는 분의 얘기입니다.
 
우리 기둥교회에 표나고, 드러나고, 유명하지 않더라도
이름 없이 빛 없이 수고하고 그 흔적을 남긴 분들이
기둥교회의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은 것이고,
기둥교회의 30년의 역사가 그런 분들의 흔적으로 오늘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신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 흔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지고 있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주님이 기꺼이 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라면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함께 찬양하십니다.
찬송가 365장  ♬ 내 주의 지신 십자가 ♬
1.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2.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기도>
 
좋으신 하나님, 오늘을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져야 하는 십자가라면
기꺼이 질 믿음과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마다 베푸는 선함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시고 내게 만족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예배 드리며 세상에서 땀흘리고 애써 모은 물질을 구별하여 드립니다.
저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2년 11월 17일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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