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해되지 않는 고난 / 행 4:23-31

  • 잡초 잡초
  • 512
  • 0

첨부 1



제목 :  이해되지 않는 고난
성 경 : 사도행전 4:23-31
설 교 : 김학현 목사 (예은교회)

오늘 말씀은 초대교회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던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다는 이유로 잡혀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이 많아지자, 위협을 느낀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 제자들을 놓아주면서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18)고 합니다.

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이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고난을 당합니까? 잘되고, 건강하고, 부자 되어야 할 텐데 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기 때문입니까? 물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치부하고 돌아서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전하면 권세를 얻고, 부자가 되고, 건강하며, 형통해야 합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원리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더욱 힘들어지고, 어려워지고, 가난해지고, 만사가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거나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 때문이 아닌 경우도 잇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해되지는 않지만 분명히 고난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의 고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하여 주께서 주신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난의 이유

동방의 의인이라 불리며 그 신앙이 인정받던 욥을 생각해 봅시다. 욥에게 닥쳐온 고난에 대하여 욥 자신은 물론, 친구들 모두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고작 엘리바스는 (욥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라고 하며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죄는 욥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욥도 그 친구들 모두 욥의 고난의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난의 이유를 몰랐을 뿐이지 고난이 필요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고난의 이유를 모른다 하여도, 고난의 이유가 없는 고난이란 없습니다.

훗날 고난의 이유를 깨달은 욥은 고백합니다. (욥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그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재발견하고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1:2)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말은 시험 자체가 기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이 있을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기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기쁘게 여겨야 하는 이유를 (약1:3,4)이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를 통하여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으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당시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렵지만, 이겨내면 은혜와 복입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고난당할 때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유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서슬이 시퍼런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와 온갖 협박과 위협을 받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전하는 게 무슨 죄라고 그렇게 됩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시련을 이기고 난 후에 교회는 더욱 굳게 세워지고 서로 사랑하며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었습니다.

고난의 교훈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적에 부합되어 이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그 목적을 교훈으로 받아 더욱 잘된 예입니다. 즉,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이 당한 고난과 핍박을 보고했을 때, 온 교회가 취한 행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이 합격하는 장면을 말해줍니다.

교회는 일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23,30). 그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스스로 절망할 필요도 없고, 또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나는 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 부탁하면 됩니다.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러기에 이해되지 않는 고난이 닥쳐왔을 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나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맨 먼저 기도했습니다. 일심으로 소리 높여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실은 그 기도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대주재(大主宰)라고 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호칭입니다. 이 호칭 하나에도 그들의 믿음이 담겨있습니다. 믿음을 담지 않은 기도는 주술일 뿐입니다. 예언이 이뤄지고 있음을 확신하며 기도합니다(26). (시2:1-2)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이 예언의 성취를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까지 죽였으니 자신들에게 임박한 위험을 하감(下監)해 달라 기도합니다.

또,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대적자들의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복음이 위축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성숙한 신자의 기도입니다. 이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당장 그 고난을 철회해줄 것을 기도합니다. 얼마나 기도의 내용이 왜곡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기도와 나를 위한 기도는 그 응답의 감도가 다릅니다. 성숙한 교회의 성숙한 성도는 기도 제목이 다릅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시되 주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결과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성도들은 고난의 교훈을 제대로 받고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온 교회가 모여 일심으로 간절히 기도하자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모인 곳이 진동하였다고 했습니다. 무리가 다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는 여러 가지 은사와 표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기도의 내용처럼,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

더 이상 잡히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옥에 갇히거나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큰 권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의 그런 담대한 증거는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주었습니다.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전하는 담대함과 결심을 보고 은혜 받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전도가 힘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죽을 각오가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처하였다고 침울해 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고난을 이기고 기적을 창출해 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 영국의 청어 잡이 이야기. 청어는 성질이 급해서 잡으면 곧장 죽어버리기에 대부분의 어부들이 얼려서 시장에 팔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청어 잡이 어부는 살아있는 청어를 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값은 몇 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비결은 바다 메기를 몇 마리 청어 담은 그릇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메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청어이고 청어는 메기를 제일 무서워합니다. 몇 마리는 메기 밥이 되지만 나머지는 싱싱하게 살아서 시장까지 옵니다. 고난을 이긴 청어는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인이 고난을 이길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을 이긴 결과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신앙이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가 바로 고난입니다. 고난을 이기면 오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해되지 않는 고난은 있어도, 이유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더 축복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읽으시는 영적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함으로 고난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처럼, 그 고난이 내게 유익하였노라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 교훈을 바르게 얻은 이들에게는 축복이 따릅니다. 부흥이 따릅니다. 고난의 유익을 체험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