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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물부재의 사회에서 / 요 1: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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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인물부재의 사회에서
성 경 : 요 1:19-23
설 교 :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1. 어둠의 시대


1) 시대의 어두움은 그 시대를 밝혀주는 등대가 될 인물부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예수님 오시기전 약 400여 년 동안을 신구약 중간기 시대라 부르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해줄 선지자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바벨론 - 페르샤 - 희랍 - 로마로 이어지는 주변의 국제 정세는 매우 급박하게 변하는데, 이스라엘은 전혀 그에 대처할 능력을 갖지 못한 체 이 나라 저 나라의 식민지배를 당하게 되었고, 수많은 국민들이 나라를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디아스포라의 백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분문의 시대가 그런 끝자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19절)


이 만큼 당시 사람들은 인물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된 지도자, 옳은 사람을 찾기에 갈급하여 세례 요한에게 와서 "당신은 누구냐?" 즉 '당신이 혹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이냐?'는 물음이었고, 이 물음은 '구원자' '메시아'를 기다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극히 대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국무총리 지명자가 연이어 두 사람이나 낙마 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도 우리 나라에 인물이 없단 말인가?'하고 푸념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두 지명자 모두 비리와 부정에 연루되어 있음을 보면서 사회 지도층의 상식(?)이 엿보여져서 일반 국민들의 입맛을 씁쓰레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리와 부정에 깨끗해 보이는 사람은 아직 사회적 리더십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도 대안이 없을까? 참으로 걱정입니다.


3) 더우기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를 이끌어 왔던 분들이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고 있고 현직에서 물러나 은퇴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 십 년을 우리 성도들의 영적 스승이셨고 삶의 좌표였고 모범이셨던 분들이 이젠 점차 현실을 떠나고 있는데 그를 이어갈 인물들이 부재 상태입니다.


2. 좋은 인물의 발견


이런 인물부재의 사회에 하나님은 세례자 요한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요한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와 교회가 찾아야 할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20절)


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고 있던 요한을 주목하면서 '혹시나?' 하고 찾아왔는데, 그는 정직하게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당시에 유대 땅에 자칭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일어났던 자들이 많았습니다(행 5:33 이하, 드다와 갈릴리의 유다). 이렇게 사람들은 유명해지고 능력이 있으면 스스로 그리스도를 자칭하려는 교만이 나옵니다.


그리스도란 왕이요 구세주요 해방자임을 의미하는데 이런 엄청난 이름을 가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과거 우간다의 이디 아민이 그랬고, 우리 나라의 북쪽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그렇습니다. 최근의 또 한 사람이 나왔는데 투르크메니스탄의 니아쪼브 대통령이 그렇다고 합니다.


이 나라는 1991년에 구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공화국으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있는 러시아 남단의 나라입니다. 지금 대통령인 니아쪼브는 1994년에 종신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는데, 자신을 '예언자'로 부르게 하고 '루카나마'(영적인 능력)란 경전을 지어서 그 책에서 자신을 예수님의 일곱 사도 중 한 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아예 성경을 부인하고 기독교 자체를 인정치 않는 종교 탄압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기독신문 8월 28일자 16면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역사 한 가운데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남들이 그런가하여 찾아왔는데도 그는 분명하게 밝히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한 다음,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27b)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런 겸손한 자가 우리 사회와 교회에 많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과거 중국 후한시대에 삼고초려의 고사를 남겼던 그런 제갈량 같은 사람이 국무총리나 혹은 나중 대통령에 선출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세례 요한 같은 인품이 있는 분들이 교회의 지도자로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23절)


둘째로 세례 요한에게서 배울 삶의 자세는 사명감입니다. 앞선 6-7절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6-7절)


세례 요한의 별명이 있다면 "보내심을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이 복음서를 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세례 요한을 일컬어 표현하기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고 한 것입니다. 타인이 보았을 때 그에게 가장 확실한 생활 태도가 세례자 요한에게는 곧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는 보냄을 받았다는 사명감 혹은 소명 의식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곧 오늘 본문입니다 -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를 먹고 석청을 먹으면서도 그는 자기 소명에서 살았습니다. 그 소명이 자기를 힘나게 했고 즐겁게 했고 어떤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청년회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나를 힘나게 하는 것 100가지"를 기록해나가도록 하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읽어보면 참 재미나고, 때때로 감동받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 회원이라면 이런 것을 적고 싶었습니다. 즉 "나는 우리 범어 교회에 '하나님이 보내셔서 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참으로 힘나게 하는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의 존재 가치 - 필요성을 확인 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도 이런 소명감과 필요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세례 요한 처럼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됩시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 2:5-7)

남들이 다 가는 넓은 길에 서서 그들과 혼합되어 불의한 지도자가 되지 말고, 비록 광야 같은 외로움이 있더라도 옳은 진리를 외칠 수 있는 그런 용기와 사명감이 지도자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인물을 만들어 내는 인물


여기서 따로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세례 요한의 모습은 "인물을 만들어 내는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광야에서 외친 것은 자기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곧 "주의 길"이었습니다. 앞서 8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자기보다 남을 소개하고 자랑할 줄 아는 사람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을 발굴하여 세워주는 일에서 보람과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호텔리어들 중에는 깨끗하고 정돈된 아름다운 호텔을 준비해두고서 손님들이 와서 즐겁게 지내고 가는 그 모습을 보며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옳은 프로가 될 수 있듯이 말입니다.


내가 잘되어야 하고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남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못됩니다. 그런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한 가정의 가장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보하지 못하고 후퇴하려는 조짐은 곧 지도층에 이런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 교회가 이렇다면 결코 성장할 수 없고 부흥하지 못할 것입니다. 좋은 일군을 세우고 밀어주는 교회가 될 때에 은혜와 진리 안에서 지속적으로 부흥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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