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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와 아멘 / 대상 16:34-36, 살전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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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감사와 아멘
본 문 : 대상 16:34-36, 살전 1:2-4
설 교 : 이성희 목사 (연동교회)


 
파스칼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하나님과 무관한 인생’, ‘하나님을 탐구하는 인생’, ‘하나님을 신앙하는 인생’으로 분류하면서 이들을 각각 ‘어리석은 자’, ‘불행한 자’, 그리고 ‘행복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하나님과 무관한 인생은 감사와 무관합니다. 하나님을 탐구하는 인생은 감사도 자기 기준에서 탐구만 합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인생은 감사에 풍성한 인생입니다. 감사할 줄 알고 감사주일 지키는 우리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에 풍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본문 성경말씀은 다윗왕 시대의 번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옵니다. 백성들은 법궤가 오는 것을 기뻐하여 주악으로 준비하였습니다. 드디어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고 안치됩니다. 이에 다윗은 감사의 시를 낭송하고 백성들은 그 감사에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다윗의 감사의 시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시작합니다. 감사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감사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감사치 못하고 불평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의 엄한 명령인 감사에 대하여 잘 익히고 감사하는 일이 우리의 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감사의 조건입니다.
감사해야 하는 조건을 다윗은 가르칩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이 감사의 절대적 조건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 다 없다 하더라도 이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부족해지지 않습니다. 시편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시작되는 시가 많이 있습니다. 시편 106:1, 107:1, 118:1, 118:29, 135:3, 136:1이 이 말로 시작합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보편적 명령입니다.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과 인자에 대한 감사입니다. 선하심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선하다는 영어 ‘Good’은 ‘God’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관원이 예수님께 나와서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고 하십니다. 온전한 선은 유일한 하나님만의 속성입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합니다. 나의 편리에 따라 선하기도 하고, 이익에 따라 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 선입니다. 토마스 머턴은 ‘고독 속의 명상’에서 “모든 것들의 선함은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거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 분의 약속에 대한 그분의 충실성의 보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만일 선하다면 그 선은 하나님께 근거하고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완전선이고 다른 모든 선은 하나님의 선에 근거합니다. 인자하심(mercy)은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시편 86:15에는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자로 꽉 차 있는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풍성이란 단어도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인자’는 인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자와 진리” 혹은 “인자와 긍휼”이라고 하여 인자는 다른 하나님의 성품과 함께 나옵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기에 진리이시고, 인자하시기에 긍휼을 베푸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선하심을 풍문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더욱 감사할 조건이 많아지고 감사가 풍요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사람들의 은혜이며 감사하는 사람이 받는 덕입니다.

둘째, 감사의 내용입니다.
다윗은 감사의 내용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라고 가르칩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구원하여 건져내셨음으로 주님의 성호를 감사합니다. 감사의 내용은 구원입니다. 감사의 내용은 오로지 구원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구원의 결과이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온전한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시편 106:8에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저희를 구원하셨으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골프를 할 때 네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단체로 경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실수하고, 공이 벙커에 들어가고, 호수에 빠져도 나의 팀이 잘 하면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경기에 나가 제대로 된 4인조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팀의 4인조는 막강합니다. 나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과 성령님입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팀입니다. 요즘 말로 드림팀입니다. 이런 것을 신학용어로 위치적 성화라고 합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그분 때문에 이기고 상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을 지불하고 얻은 대가입니다. 종의 몸값을 주님이 대신 지불하시고 우리는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많은 몸값을 다 지불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에 “다 지불했다”라고 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지불할 종의 몸 값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인 것입니다.

지난 일년동안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얻은 삶의 활력과 은혜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구원받은 이 기쁨 때문에 엔돌핀이 솟아 나와 병 안 들고 산 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겠지요? 구원받는 이 평화 때문에 고민 안하고 지난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겠지요? 구원받은 이 감격 때문에 작은 시험 다 이기고 잠 잘 잔 것은 돈으로 값으로 치면 엄청나겠지요? 구원은 예수님이 지불했기에 우리가 엄청나게 덕을 보고 사는 삶입니다. 성경은 적어도 40명의 저자들에 의해 1,600년 이상의 긴 세월에 걸쳐 기록되었지만 중심 주제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받은 우리들을 통하여 이 모든 말씀들이 다 증명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 말씀이 나를 위하여 기록된 구원의 말씀인 것을 압니다. 오래 전 한경직목사님이 수상하신 템플턴 상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유명한 투자가요 프린스턴 신학교의 이사장과 학장을 지낸 분입니다. 그는 ‘열정’이란 그의 책에서 감사의 생활을 실천하는데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감사할 대상을 찾아 칭찬하고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열망하는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은 그 속성상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라고 합니다. 미리 감사하면 그 감사한대로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인데 우리에게 닥친 문제와 도전 과제에 감사는 것입니다. 사람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좋습니다. 사람에 대하여 감사를 잊지 않는 것도 좋은 인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진정한 감사를 받으실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보통 사람은 감사하지 않는 것을 감사의 조건으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최고의 지혜, 참 지혜는 자신과 하나님을 참되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가련하고 상실된 죄인들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원하시려고 열망하시는 자비로운 분이심을 아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생각은 아주 단순합니다. 사랑하며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감사이고 행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나의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의 구원, 우리 이웃의 구원 그리고 모든 성도들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2에 바울이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고백한대로 우리의 감사의 내용은 우리 무리의 구원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다면 다른 것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에 갈등이 있고, 몸이 아파도, 사업이 부진해도, 이번에 자녀가 수능시험을 잘못 봤어도, 조건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사가 진짜 감사이며 구원에 대한 감사가 우러날 때 이 감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셋째, 감사의 반응입니다.
다윗이 감사의 시를 낭송했을 때에 모든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습니다. 이것이 참 감사에 대한 반응입니다. 감사는 이런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이 됩니다. 시편 106편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할렐루야 시의 한 편이라고 합니다. 이 시에는 처음에 “할렐루야”로 시작됩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할렐루야’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감사에 대한 응답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신명기 27장에는 저주가 많이 나옵니다. 이러이러한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어다”라고 합니다. 이런 저주에 대한 아멘의 응답이 12번이나 나옵니다. 왜 하필이면 저주 다음에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어다”라고 했을까요?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저주에는 아멘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싫어도 더 아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성경을 봉독하는데 예수님의 제자 이름 제일 마지막에 “가룟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라고 하니 아무도 “아멘”하지 않아요. 가룟유다로 끝나니 “아멘”하기 싫겠지요? 그래도 아멘 해야합니다. 느헤미아 8:6을 보세요.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송축할 때에 온 백성이 아멘으로 화답을 했습니다. 이런 아멘의 화답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에 많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자비 혹은 사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헤세트’입니다. 이 ‘헤세드’에 대한 구약성경의 반응은 찬양과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이것은 찬양과 감사밖에 없습니다. 자비와 사랑에 대하여 찬양과 감사가 없다면 참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비와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 찬양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이런 자에게 더 많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찬양이 없는 감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기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가 없는 찬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존 트랩이란 분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할 때 자비를 베푸신다”. 자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감사이듯이 우리의 감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도 자비입니다.

결론
옛날에 어느 임금이 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인데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사람이 찾아와서는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벗겨다가 입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사람들을 전국에 파견하여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모두 행복의 기쁨이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임금의 병만 더 커졌습니다. 나중에 왕자가 직접 찾아 나섰으나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오두막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 집에서 기쁨에 넘치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가만히 안을 드려다 보니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기쁨에 넘쳐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순간 왕자는 이 집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집이라 여겨 들어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속옷을 벗어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통하지 않자 칼로 위협하고 겉옷을 벗겨보니 그들은 모두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속옷을 입지 못했던 것입니다. 행복은 속옷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에서 나옵니다. 감사가 곧 행복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환경과 조건이 맞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가 시험을 잘 쳐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범사에 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면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항상 기뻐하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면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 진정한 기도, 진정한 감사는 조건을 초월합니다.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주신 하나님의 감사를 헤아려봅시다. 아마 우리의 손가락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 계산기로 다 계산할 수 없는 감사의 값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감사입니다. 이것 때문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은혜를 입고 삽니다. 이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늘 찬송하면서 감사를 헤아리며 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만 아니라 모든 주일이 감사주일이 됩시다. 오늘만 아니라 모든 날이 감사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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