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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설교 항목으로...

제목 : 하나님 나라의 복과 화
본문 : 누가복음 6:20-26
설교 : 이 승우 목사 (옥곡대죽교회)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갈릴리에서의 두번째 사역을 기록하는 5:12-6:의 말씀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모세 율법과 관계된 가르침이라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모세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의 글을 이루는 사역입니다. 그의 이러한 사역을 증거하여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증거를 받지 아니하고 결국 어떻게 예수를 죽일 것인가 의논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였습니다. 예수께서 12을 불러 사도로 세움으로 그의 나라를 조직하시고 세우신 것입니다. 구약 때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권세를 입히시고 고난과 압제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나타내신 권세는 자기 백성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조상들의 약속을 기억하여 돌아보신 긍휼과 자비의 권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목적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 기업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새롭게 조직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였고 또 하나님이 복주심으로 가나안 땅에서 번성할 것이며 그로 인하여 모세 혼자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여 세워 두령으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새롭게 조직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언약의 법을 허락하였고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그들로 가나안 땅에서 행할 언약의 법을 선포하고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의 가르침과 판단을 따라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 법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그리고 이웃으로 긍휼과 자비를 행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법을 따라 살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복을 받아 부요하게 되며 주리지 아니하며 질병이 없으며 장수하며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만약 그 법을 따라 살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아 가난하게 되며 배고플 것이며 질병이 많을 것이며 단명하고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의 법을 따라 온전히 여호와 앞에 신실이 걷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이방의 권세를 의지하였습니다. 불의를 행하고 공의를 구하지 않고 학대 받는 자들을 도와주지 아니하고 고아를 압제하고 그들을 위하여 신원하지 않았고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지 않고 그들의 송사를 수리치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멸망하여 이방의 손아래 거하게 되었고 가나안 땅 기업을 잃고 유리하며 가난하고 비천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흠 없이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의인들도 오히려 악한 자들에게 고난과 압제를 받았으며 이방의 지배 아래서 가난하고 비천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의 예언의 말처럼 이스라엘의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는데 곧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를 따라 긍휼하심을 나타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시고 어두움의 그늘에서 생명의 빛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구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권능으로 출생 시켰습니다. 마리아의 찬가처럼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며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며 부자를 공수로 보낼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권세 있는 가르침으로 그러한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약속하신 은혜의 해가 그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전파하신 것입니다. 그의 선포와 가르침을 통하여 귀신 들린 자들이 자유를 병든 자들이 생명의 회복을 죄인들이 죄사함의 은혜를 맛보았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증거를 받지 않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들은 문둥병 들린 자가 치료함을 받은 후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증거하였고 또한 예수의 이적과 가르침 안에서 증거 되었음에도 예수를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사 돌아보기 위하여 보내신 구원자로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옛 것에 배부르고 취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를 죽이려 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 그를 따른 제자들 중에서 새로운 12을 새로운 이스라엘의 토대이자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자신을 통하여 종말론적인 땅과 기업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은혜의 때에 12 사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긍휼의 공동체로 새 이스라엘을 세우신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부요한 자들이며 교만한 자들로서 예수를 따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들이 아니라 새롭게 12사도를 백성의 지도자요 대표로 부르시고 예수와 그들에게 나아온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비천한 자들을 치료하시고 온전케 하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께서 평지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이전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기업으로 소유할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 평지에 모아 놓고 그 땅에 들어 가 소유할 것을 명하고 그 땅에 들어가서 행할 법에 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이처럼 새롭게 조직된 자기 백성들을 평지에서 바라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시고 위로하시며 새로운 언약의 법을 주시는 것이 소위 말하는 평지 설교의 내용입니다.

평지설교의 형식은 구약 율법이 주어지는 형식, 예를 들어 십계명이나 신명기서의 형식을 따라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부분은 6:20으로서 전체적인 서언으로서 누구의 말씀인지를 말하는 부분입니다. 두번째 부분은 6:20-26로서 역사적 서언을 이룹니다. 세번째 부분은 6:27-45로 언약의 법을 말하며 네번째 부분은 6:46-49로 언약적 경고가 따릅니다.

이 설교의 말씀은 전체적인 서언으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으로 증거합니다. 물론 복음서의 모든 말씀이 “예수께서 가라사대”의 말씀으로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모든 말씀은 성령의 권능을 힘 입은 말씀이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말씀으로 그 권위를 가집니다. 그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구원자입니다. 특별히 여기 평지 설교의 말씀은 구약 율법의 서언과 대비를 둘 수 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을 비롯 시내산 언약 말씀은 여호와께서 친히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고, 신명기는 시내산 언약의 말씀을 토대로 가나안 땅에서 지켜야 될 법을 모세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구약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대표로 부르시고 백성들은 산 밑에서 자기 몸을 정결하게 함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비천하고 부정하고 병든 자들은 그 음성을 들을 수 없고 그 나라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셨는데 그 제자들은 옛 언약적인 방식으론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서 듣지 못할 자들입니다. 그들은 죄인들로 취급 받는 자들이며 비천하고 가난한 자들이며 병든 자들입니다. 오히려 예수는 그들을 자기 제자로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바라보시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말 그대로 산에서 하신 말씀이며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이 앞으로 나아 왔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은 장소가 산인 이유는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법, 그리고 선지서에 약속된 종말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며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어 시온에서부터 나오는 율법을 들으리라는 약속의 성취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분으로 의의 나라를 세우러 오신 분입니다. 그 나라는 율법을 성취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의의 법이자 천국의 법으로서 옛 율법을 성취한 언약의 법의 선언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산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그리고 시내산 모델을 따라 제자들이 앞으로 나아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평지 설교는 신명기서를 그 모델로 합니다. 왜냐하면 종말론적인 은혜의 해의 성취와 땅의 회복과 상속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천한 자들이 높아지는 새로운 공동체를 말씀하기 때문에 사도들만 특별히 앞으로 나아온 것으로 말하지 않고 그를 따른 모든 무리들을 제자들로 언급하고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으로 말합니다.

역사적인 서언은 20-26인데 뒤 이은 모든 언약의 말씀의 토대가 됩니다.왜냐하면 하나님 나라 언약을 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약 언약의 법의 서언과 차이가 있으며 그리고 마태복음의 팔 복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그들의 하나님 되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서에서는 여호와께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신실이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 동편 모압 땅을 이미 기업으로 받았고 또한 건너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기업을 얻도록 함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이러한 언약의 관계 때문에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형제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팔복은 언뜻 보면 누가복음의 그것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가령 가난한 자와 주린 자들 핍박 받는 자들에 대한 문제와 그 복의 내용이 비슷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마태와 누가복음에서 그 내용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의의 삶과 행위에 관계된 것인 반면 누가복음은 의인들의 상태와 악한 자들의 상태를 대비한 복과 저주와 관계되어 설명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가난과 주린 것은 실제적인 가난과 주린 것이 아니라 심령의 가난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순종하지 못하여 이방의 포로로 사로잡혀 있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온전히 의의 백성으로 살지를 못하였고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의인들은 그들이 율법을 순종하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의와 공도가 온전히 실현되는 나라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었으며 애통하는 자들이었으며 온유한 자들이었으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었습니다. 의인들은 의의 나라의 나타남을 소망하면서 긍휼히 여기며 청결하며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의의 나라를 보지 못하였고 위로를 받지 못하였지만 이제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천국 곧 의의 나라가 임하였으며 위로와 복이 임하였음을 선언하고 선물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의인들의 상태와 악인들의 상태 그리고 그들의 복과 저주를 대비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가난과 주린 것과 관계됩니다. 물론 일차적으론 예수께 나아온 무리들이 그러한 복의 대상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귀신들린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그들을 치료하심으로 그들에게 그의 나라를 선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처음부터 그들의 상태와 복이 구약 의인들의 상태와 복과 관계되어 설명됩니다. 의인들의 소망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의 비천한 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에게 확대되고 나타나는 것이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예수의 사역의 증거입니다. 처음 구원의 소식은 의인들의 가정에서 나타났습니다. 사가랴의 집과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성전에 있었던 시므온과 안나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복음 전파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의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에게 나타나고 증거 됩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선언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입니다.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가난한 자들의 일차적인 배경은 구약 의인들의 상황이며 또한 그것이 지금 모인 청중들에게 확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첫번째 가난한 자들에 향한 복의 선언이 뒤 이은 복들의 주제적인 선언과 같으며 뒤의 복들은 그들의 상태를 다양하게 반복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1-6의 약속의 말씀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저주를 받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하여 이방의 지배 아래 있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가나안 땅의 부요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악한 자들이 그들을 압제하고 그들의 산업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방의 권세와 악한 자들이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돌이키면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긍휼히 여기사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열조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을 모세를 통하여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시편과 선지서에 약속되었고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결국 신명기 28:1-6의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신 것입니다. (사61:1-2, 시107:41, 시113:7)

두번째 선언은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입니다. 주린 자도 가난한 자들과 같은 부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복의 선언은 배부름으로 나타나는데 첫번째 선언인 하나님 나라의 선물과 관계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선물 되는 것은 가나안 땅 기업이 회복되는 것이며 그 기업의 풍성함 가운데 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서에서 약속도 그것들이 함께 언급됩니다. 이사야49:8-10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게 하리라.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긍휼의 약속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어 예수께서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시고 배부름으로 채우시는 것입니다.

세번째 선언은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입니다. 우는 자들도 앞에서 설명되었던 가난한 자들, 주린 자들과 같은 부류입니다. 그들은 이방의 지배와 악한 자들의 압제와 탈취로 인하여 가난함과 주림의 결과로 울고 애통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우는 자들에게 슬픔의 근원을 제거하시고 웃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앞에서 말하였던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시고 그들에게 기업을 회복하시고 배부르게 하심으로 그들로 웃게 하시는 것입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이러한 복의 약속도 구약에 약속되어 있었는데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구원에 관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35:10, 60:20, 61:3, 65:17-19, 66:10, 시126:)

네번째 선언은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입니다. 이 네번째 선언은 앞의 선언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앞의 세개의 선언은 고난과 압제 아래서 가난한 자들 기업을 빼앗기고 주린 자들 우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시고 복이 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여기의 선언은 이제 하나님 나라를 선물 받고 복을 받은 백성들이 인자를 인하여 핍박을 받으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때 의인들은 이방인으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그리고 자기 백성의 불의한 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핍박으로부터 가난하게 되었고 울게 되었고 배고프게 되었습니다. 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나라와 그 나라의 복이 선물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핍박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이제 인자의 나라에서 인자 때문에 고난을 받을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핍박이 더 이상 고통과 아픔과 가난과 배고픔과 슬픔과 애통이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옛 구약 때 선지자들이 받은 핍박과 고난 의인들의 핍박과 고난은 애통과 슬픔이었지만 이제는 기뻐하고 뛰놀라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그들이 상을 받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인자가 그의 나라를 선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네가지 복과 대비하여 예수께서 네가지 화를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의 대상은 복의 대상과 반대를 이루는데 실제적으로 부하고 웃고 배부른 자들이며 세례요한의 설교처럼 듣는 자들로 회개하고 주의 나라로 돌이키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또한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에서처럼 가난한 자들 우는 자들 배고픈 자들이 구약 의인들의 고난과 상태를 묘사하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처럼 부요한 자들 웃고 배부른 자들은 악한 자들과 교만한 자들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의 것을 탈취하고 그들의 송사를 듣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고 긍휼과 자비를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신명기 28:15-19에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한 것처럼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마치 그들이 하나님 앞에 복이나 받은 것처럼 부요하고 배부릅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고도 심판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말씀이 성취되어 그들에게 화가 선언되고 있습니다.

첫번째 화의 선언은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입니다. 이 말씀은 직접 화가 없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복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이미 물질적인 부요함으로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인자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의 위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다는 말은 더 깊은 저주의 뜻이 담겨 있다 하겠습니다. 계속되는 화의 선언의 문맥에서 보자면 그들의 부요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난하게 될 것이란 의미를 또한 포함한다고 보겠습니다. 마리아의 찬가에서도 부자를 공수로 보내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시편의 말씀에서도 그러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37:11-22, 49:6-20)

두번째 선언은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입니다. 복에서 언급 된 것처럼 여기서 말씀하는 배부른 자도 부요한 자들과 같은 부류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리게 되리라는 화가 선언됩니다.

세번째 선언은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입니다. 웃는 자들도 부요함과 배부름의 결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모든 소유를 빼앗김으로 화를 당함으로 애통하며 울게 되리라 말씀합니다. 선지서의 약속에서도 이러한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65:13-15에서 말씀하는 “이러므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또 너희의 끼친 이름은 나의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입니다. 이전에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는 자들은 악을 행하고 그들의 부요함을 가지고도 약한 자들 비천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였음에도 화가 없었지만 이제 예수로 말미암아 화가 선언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네번째 선언은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입니다. 이 네번째 화도 앞의 세가지 화와 차이가 있으며 그리고 네번째 복의 내용과 관계된 것입니다. 부요한 자들 배부른 자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복처럼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였음에도 영광을 예언하고 그들이 높은 지위에 있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칭찬을 받고 따름을 받은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상을 받지 못할 것이며 모든 것을 빼앗길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기서 선언하신 복과 화는 옛 언약의 말씀의 성취로서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복과 화의 완성으로 설명됩니다. 예수께서 여기서 선언하신 복처럼 가난한 자들 주린 자들 우는 자들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먹이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복음을 전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애통한 자들이었지만 예수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고 복을 받은 것입니다. 반면 부요한 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증거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요함으로 배부른 자들이며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선물하신 자비와 긍휼의 나라를 선물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부요한 자들 중에서도 자기의 죄를 돌이키고 제물을 버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선물 받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승천하기 전에는 그의 나라는 여전히 땅에 속한 나라였습니다. 예수의 위로와 자비도 땅에 속한 것이었고 화도 땅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하늘의 나라를 세우셨고 하늘에 속한 자비와 위로의 나라를 선물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냥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의인으로 세상에 오셨고 가난한 자로 세상에 오셨는데 의인들과 가난한 자들의 구주로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의인들이 자기의 기업을 빼앗기고 애통하고 울었던 것처럼 예수께서도 생명을 빼앗기는 고난을 받으셨는데 그 고난의 잔이 지나도록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아버지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죽음의 순간에도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였고 아버지를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에까지 비천하게 되신 의인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를 고난으로부터 일으키사 영광스럽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였습니다. 마치 구약 때 의인 다윗을 고난으로부터 일으켜서 가나안 땅 하나님 나라의 보좌에 앉히시고 영광스럽게 하였으며 그가 고난받는 모든 의인들의 소망으로 여겨졌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음으로 끝난 왕입니다. 그의 나라는 가나안 땅에 속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죽음의 고난으로 끝난 왕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살림을 받고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모든 고난받는 의인들, 가난한 자들, 애통한 자들의 소망이 되었고 구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말씀하시고 손을 들고 제자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이제 그가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그가 죽으시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선물하신 나라를 완성하시고 하늘에 속한 나라의 복과 생명을 선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의 복과 생명은 성령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위로와 자비를 얻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생명의 부요함과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 나라와 이 나라의 부요함과 기쁨은 세상의 권세가, 악한 자들의 핍박이, 그리고 가난과 질병과 죽음과 귀신의 권세가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으시고 성령을 보내신 예수께서 영원히 살아계신 주와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믿는 자들은 그가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그에게 속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보좌 우편의 나라의 복과 생명은 실제적인 부요함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실제적인 웃는 것과 존귀함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는 옛 희년의 때의 완성으로 그의 나라를 증거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부요함과 질병의 치료로 그의 나라의 복을 증거하시고 선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성령을 선물로 보냄으로 구약의 약속과 그의 지상의 증거를 완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보냄으로 보좌 우편의 무궁한 나라를 선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들은 오히려 그들이 실제적으로 가난하고 병들고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의심치 아니하며 슬퍼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따라서 초대교회 신자들과 사도들은 그들이 가난하고 고난을 받았지만 성령을 힘입어 담대히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주께서 세우시는 나라가 가나안 땅의 부요함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한 자들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형제를 섬기고 그의 나라를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이방인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 밖에 있는 자들이어서 희년의 복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 비천한 자들 우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비천하게 살았습니다. 물론 부요하게 사는 자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 부요함 가운데서 스스로 위로를 하며 살았고 언약 밖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명의 부요함은 가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의 회개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언약 밖에서 비천하고 울고 애통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자들이 아닙니다. 주린 자들이 아닙니다. 우는 자들이 아닙니다. 먹고 마심의 종으로 그것을 좇아 평강과 안식을 누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주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보좌 우편의 하나님 나라를 선물 받고 하늘의 위로를 받고 기뻐하며 안식을 누리며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실제적으로 가난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핍박을 받고 세상에서 저주거리가 되고 세상이 주님 때문에 우리를 핍박해도 우리는 즐거워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부요하게 되고 높아진 사실을 자랑해야겠습니다. 또한 주 안에서 부요한 자들은 먹고 마심을 의지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소유로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형제와 그의 교회와 나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만약 먹고 마심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복을 보려는 자들은 그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또한 주께서 우리에게 그의 나라를 선물하신 것은 이제 성령을 힘입어 세상에 그의 나라의 복과 화를 전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로 세상의 비천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로 세상의 부요한 자들에게 그들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셔서 스스로 교만하고 부요한 자들을 심판하고 그의 나라를 완성하시고 그의 나라를 온전히 상속 받도록 하기까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나라를 선물 받은 우리들이 그의 나라의 복 안에서 복을 누리고 성령을 힘입어 세상에 그의 나라의 복과 화를 전하는 자들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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